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이 결정하고 실행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면, 섹스에 대해서도 그 말은 진리여야 할 것이다. 여름밤 원나잇이 많아지는 이때, ‘어른의 섹스’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때다.
[LOVE] 어른의 섹스
섹스의 양면성, 당신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인생이란 좋은 순간도 나쁜 순간도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 섹스에 대해서도 이건 진리다. 한 친구가 해외 출장을 다녀오더니 이런 고백을 했다. “출장을 떠나기 전엔 그냥 고단하겠다는 생각뿐이었지. 그런데 현지에서 일정이 끝나고 나서 우연히 간 바에서 정말 멋진 남자를 만난 거야. 그날 밤 우리는 순식간에 달아올랐고 결국 내 방에 그가 오는 사태까지 진전이 됐는데, 결정적인 순간 그가 묻더라고. 혹시 콘돔이 있느냐고, 자기는 없다고. 아뿔싸 싶었지. 결국 우리는 5분쯤 고민하다가 거기서 모든 걸 멈추고 말았어. (하필이면 그녀가 출장을 떠난 곳은 콘돔을 사려면 배를 타고 나가야 하는 인도양의 외딴 섬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좋은 순간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가 금세 가버린다는 사실에 나는 충격을 받았지. 그는 정말로 매력적이었거든.” 단 하룻밤의 뜨거운 정사를 얇은 고무의 부재 때문에 놓쳐버리고 말았던 그녀의 애석함이 내게 그대로 전해져 왔다.

하지만 애석함은 애석함이고, ‘콘돔이 없음’을 이유로 결국 끝까지는 가지 않았던 두 남녀의 결정에는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낯선 곳에서 매력적인 이성과 우연히 스파크가 튀어오른 그 시간, 이성보다는 본능에 훨씬 많이 휘둘릴 그 시간에 두 사람은 끝까지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고 결국 약간의 후회는 했을지언정 혹시라도 더 큰 후회를 부를 만한 불미스러운 상황만은 만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친구 역시 애석해하긴 했지만 그래도 거기서 멈춘 건 잘한 일이었다고 추억을 곱씹었다.

즉흥적인 만남이 잦아지는 여름밤, 내 맘에 드는 이성을 유혹하는 방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그 후에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사실 서로 이성적 매력에 이끌려 스파크가 일어난 순간 이성을 작동시킨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일임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중요한 순간에 이성을 작동시키지 않으면 나중에 이성이 마비될 정도로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렇다. 바로 ‘원치 않는 임신’과 ‘성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매년 원치 않는 임신이 몇 건이나 일어나고, 신뢰할 수 없는 상대와의 성관계가 몸에 어떤 타격을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수치적인 자료들이야 이미 널릴 만큼 널려 있으니 따로 강조할 것도 없다. 단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 섹스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거대한 쾌감을 주지만, 딱 그 쾌감만큼 위험 요소를 내재하고 있는 행위라는 것이다. 처음 만난 상대와 콘돔 등의 안전장치 없이 체내에 사정을 했을 때 성병도 임신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운이 좋은 사례일 뿐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트리코모나스, 콘딜로마, 헤르페스, 여성에게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HPV 등 숱한 바이러스의 이름은 낯선 상대(즉 신뢰할 수 없는 상대)와 관계를 가지기 직전 당신이 애써 머릿속에 떠올려야 하는 것들이고, 몸 밖에다 사정하려고 했지만 그게 제대로 되지 않았다거나 분명히 몸 밖에다 사정한 것 같은데 임신을 했다는 주변의 이야기는 두 사람이 본격적인 인터코스를 시작하기 직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콘돔 쓰자’는 말이 그렇게 어려워?
물론 알고 있다.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에서 갑자기 “아앗 그런데 우리 콘돔 써야지?”라고 말을 꺼내는 것이 남자든 여자든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주변의 남자들과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는데, 여자가 준비해두었다는 듯이 갑자기 가방에서 콘돔을 꺼내면 ‘헤퍼 보인다’라거나 ‘고파 보인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고 해서 솔직히 좀 놀랐다.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좀 더 안전한 섹스를 하기 위해 먼저 용기를 낸 그녀들이 그저 섹스에 목이 말랐거나 혹은 아무하고나 쉽게 몸을 섞는 이미지로 비칠 수밖에 없는 걸까? 재미있는 건 콘돔을 미리 준비한 남자에 대해서도 여자들이 가지는 모종의 이중적 태도다. 내 몸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 콘돔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막상 남자 쪽에서 먼저 피임을 이야기하면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 하는 여자를 많이 보았으니까. 물론 분위기를 잡는 도중에 갑자기 “자 우리 이거 써야지”라며 콘돔을 꺼내는 건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 든다. 뭔가 세련되지 않고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할까. 제일 좋은 건 ‘안전하고 즐거운 섹스가 제일 좋은 섹스’라는 생각에 대해 자연스럽게 마음을 포개는 분위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명제에 대해 사회적인 합의가 충분히 되어 있다면야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라도 이런 이야기가 미리 오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섹슈얼한 이슈를 다룬 르포 프로그램을 함께 볼 때, 섹스신이 나오는 미드나 영화를 함께 보면서, 또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이런 섹스 칼럼을 읽으면서 섹스에 대한 대화를 얼마든지 쉽고 담백하게 시작할 수 있다. 평상시에 “난 섹스는 안전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쾌감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위험한 섹스에는 관심이 없어. 내 몸을 막 대하는 사람하고는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라고 말해온 사람에게 “왜 유난을 떨고 그래?”라고 말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중요한 순간에 이성을 작동시키지 않으면 나중에 이성이 마비될 정도로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렇다. 바로 ‘원치 않는 임신’과 ‘성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오늘 밤도 술자리에서 눈이 맞은 남녀들은 서로의 체온을 탐하다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서로의 몸을 탐할지 모른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이 다음 날 혹은 몇 달 뒤 괴로움에 시달리겠지. 술 마시다 분위기에 취해서 하는 돌발적 원나잇이든,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가슴 뛰며 시작하는 잠자리이든 두 사람의 육체가 가장 강렬한 형태로 결합하는 순간에 대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은 생각을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좋았던 순간이 좋은 추억으로 남겨지길 원한다면 이 정도는 기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정말 섹시한 사람 아닐까. 자연스러운 손의 움직임으로 가방 한쪽에서 콘돔을 꺼내는 남자가 진짜 섹시한 남자라고 여기는 여자들이 많은 세상, 여자가 먼저 콘돔을 쓰자고 말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세상이 오긴 와야 할 텐데 말이다.
[LOVE] 어른의 섹스
곽정은
‘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
연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