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커피 한 잔

“쫄지 마!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청춘이야!” 딕펑스 DICKPUNKS
솔직히 이들에게서 가난에 몸서리치며 주린 배를 부여잡는 ‘인디’의 냄새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오디션 프로그램 ‘슈스케’ 준우승이라는 딱지도 그렇거니와, 기타 대신 경쾌한 피아노 반주로 멜로디를 이끄는 모습 역시 ‘홍대의 아이돌’이란 별명을 더욱 그럴싸하게 만든다. 설령 형형한 눈빛으로 보낸 ‘홍대 무명 7년’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딕펑스는 유쾌상쾌통쾌한 펑크록의 대세임이 분명하다.
“쫄지 마!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청춘이야!” 딕펑스 DICKPUNKS
대학생 기자 20대 초반에 팀을 결성했어요. 어린 나이에도 각자 어떻게 재능을 찾았고, 자기 길을 결정할 수 있었나요?

딕펑스 며칠 전 SNS에서 만화 한 편을 봤어요. 20대 직장 여성이 주인공이었죠. 퇴근하고 회식에서 술을 먹던 주인공이 결국 엄마에게 전화해 “내가 뭐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말하는 장면으로 끝났죠. 공감이 컸어요. 돌이켜보면 우린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일찍 찾아서 어릴 때부터 공부도 하고, 또 지금 이렇게 밴드 활동도 하고요. 어릴 때는 여러 뮤직비디오를 보며 막연히 ‘멋있다’ 생각했어요. 멤버들 다 비슷해요. 정식으로 음악 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걱정도 많았죠. 우리가 좋아하는 걸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일이다, 돈 벌겠다 생각했다면 못했어요. 근데 진짜 일이 돼버렸네요.



대학생 기자 진짜 직업이 되고, 무명에서 벗어나니 어떤 게 달라지던가요?

딕펑스 느낌 자체가 달라졌죠. 이 일이 수명이 길지 않기 때문에 불안감이 컸어요. 더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기대감이 섞여 있는 거죠. 예전에는 그냥 홍대에서 인디밴드로 활동하고,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면 그만이었어요. 지금은 완전 다르죠. 우선 책임이 정말 커진 것 같아요. 정식 직업이 되다 보니 잘해서 방향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는 두려움도 더 커졌죠. 사실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간 거예요. 어떻게든 우리 이름을, 음악을 확실하게 알려야겠다 싶은 거였죠. 어쨌든 먹고살아야 하잖아요?(웃음)

주위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너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구나”예요. 좋아하는 일이라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에요. 예전에는 막연한 취미 개념이 강했다면 이젠 좀 더 신중해졌다고 생각해요.

대학생 기자 딕펑스로 모이기 전에는 각자 어떤 생활을 했는지 궁금해요.

김재흥 중학교 때 기타에 빠져 있다 어느 순간부터 베이스가 너무 재밌어졌어요. 고등학교 때 계속 학원에 다니다가 대학에 붙자마자 밴드 생활을 시작했죠. 그러다 이 친구들 만났고, 딕펑스에 합류하게 됐어요.

김태현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어요. 우연히도 주위에 밴드가 있어서 보컬로 활동했죠. 그러다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게 됐고요.

박가람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가 해보라고 해서 시작했어요.(웃음) 그러다 대학에 들어갔고, 스무 살 말쯤에 다른 밴드에 있다가 딕펑스를 시작하면서 탈퇴했어요. 처음 같이했던 밴드 멤버들은 다 ‘투잡족’이었어요. 저만 아니었죠.

김현우 어릴 때 예고 진학을 준비하며 피아노를 배웠어요. 그러다 잠깐 드럼을 쳤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다시 피아노로 바꿨죠. 서울예대에 다니며 지금 멤버들에게 “외국엔 유명한 피아노 록밴드가 있다. 우리도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다들 대학교에서 만난 사이예요. 태현이와 가람이만 고등학교 동창이고요.
“쫄지 마!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청춘이야!” 딕펑스 DICKPUNKS
대학생 기자 밴드 이름 딕펑스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요.

딕펑스 ‘19금’인데 괜찮으려나. 남자를 상징하는 은어에서 따온 건데요. 시작부터 진지함보다는 취미로 시작한 밴드여서 이름도 별 생각 없이, 솔직히 아무 생각 없이 지었던 거예요. 일명 ‘스터디밴드’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계속 가다 보니 어느 순간 이름을 바꾸고 싶어도 못하게 됐어요. 철없이 지은 이름이죠. 요즘 같은 때 의미를 물어보면 솔직히 좀 곤혹스럽기도 해요. 그래서 영화 ‘딕&제인’의 주인공(짐 캐리) 이름과 ‘펑크’를 합쳤다고 눙치곤 하죠. 아, 딕에 ‘탐정’이란 뜻도 있대요!



대학생 기자 홍대의 인디밴드,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절이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활했나요?

딕펑스 ‘버텼다’는 말이 맞을 듯한데, 사실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돈 못 벌면 일단 힘든 게 사실이죠. 그저 주말마다 모여서 공연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어요. 다행히 멤버 모두 전공을 살려서 레슨도 하며 돈은 벌었죠. 그렇다고 여유 있게 생활한 건 아니고요. 우리보다 힘든 밴드도 많았기에 그런 분들에 비하면 편했던 것도 같아요.

요즘은 멤버 각자가 드라마, 라디오에 행사, 미팅, 인터뷰, 연습, 작곡 등으로 정말 바빠요. 솔직히 몸과 정신 모두 지치긴 하지만 예전에 비해 너무 좋아요. 그전에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같은 걱정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기도 했어요. 지금은 ‘뭐라도 하고 있구나’ 생각하죠.



대학생 기자 ‘슈스케’뿐 아니라 ‘톱밴드’에도 참여했다고 들었어요.

딕펑스 그게 오해가 좀 있어요. ‘톱밴드’ 시즌 1에 원서를 넣은 건 맞아요. 그런데 멤버들과 상의해 안 나가는 걸로 정리했어요. 지원하고 나서 안 나가니 방송 크레딧에 탈락한 밴드 이름으로 소개됐던 거예요. 우린 이미 앨범도 냈던 터라 참가 자격도 안 됐죠. 그러다 보니 오해를 산 것 같아요.

대학생 기자 ‘슈스케’ 녹화, 특히 생방 등 방송 스트레스가 엄청났을 것 같아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었나요?

딕펑스 못 풀어요. 그냥 엎고 가는 거예요. 7주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수도승 같은 금욕주의자로 살았죠. 밥도 다이어트 식단으로 꾸며져 거의 채식이었어요. 아주 가끔 햄버거나 피자를 한 입씩 줬는데, 그때 맛이란…. 매주 합격 통지를 받으면 환희에 찼다가, 또 금방 ‘이젠 또 뭘 하나’ 스트레스에 시달렸어요.



대학생 기자 방송이 끝나고 정말 좋았겠어요.

딕펑스 마지막 방송! 정말 후련했어요. 준우승 기념 기자회견이 끝나고 압수당했던 휴대폰도 돌려받고 차에 타니까 ‘이제 진짜 끝났구나’ 생각이 들었죠. 우승을 놓쳐 아쉽기도 했지만, 그만큼 큰 기쁨과 교차됐어요. 그런데 경연이 끝나고 나서도 3개월 동안 인큐베이팅 기간을 거쳐야 해서 무지무지 바쁘게 지냈어요.



대학생 기자 ‘슈스케’ 이전에도 홍대에선 인기 밴드였는데, 방송 이후 달라진 걸 느끼나요?

딕펑스 모든 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바뀌었죠. 인기를 실감한다기보다는 많은 분이 알아봐주시고, 단독 공연도 기존 규모 10배는 되는 것 같아요.

전에는 우리끼리만 있었죠. 방송 이후에는 여러 방송에 출연하다 보니 연예인들을 접할 일이 많아진 게 큰 변화이기도 해요. 고정 프로 출연자들과 만나는 등 인맥이 넓어졌죠. 얼굴이 알려지다 보니 행동도 조심하게 되더군요. 얼마 전에는 마포경찰서에서 ‘4대악 근절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고요. 언제 우리가 경찰서에 가보겠어요.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일,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요.

옛날이 편하긴 했어요. 공연 끝나면 얘기도 많이 나눴는데. 홍대 공연이 줄다 보니 그런 재미도 사라졌네요. 무명일 땐 공연에서 육두문자도 뱉고, 술 먹으면 밖으로 뛰어다니기도 하고, 맥주 한 잔 하면서 공연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집에서 몰래 해요.(웃음)
“쫄지 마!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청춘이야!” 딕펑스 DICKPUNKS
대학생 기자 얼마 전 낸 앨범 타이틀곡이 ‘비바 청춘’이에요. 딕펑스가 생각하는 청춘은 뭔가요?

딕펑스 이번 앨범 내면서 많이 받은 질문이에요. 그러면서 우리도 생각해봤죠.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나이. 미련 없이 갈아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기. 그런 게 청춘 아닐까요?

우리가 청춘이기도 하니, 젊은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우리 나이 때 할 수 있는 얘기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청춘이란 단어를 떠올린 거예요. 나름 성과도 좋았어요. 조용필 선배님에 이어 앨범 판매량 2위에도 올랐고요. 원래 ‘슈스케’ 때도 음원 성적은 신통찮았어요. 경연도 기어올라 갔잖아요.(웃음) 항상 상위권에 랭크되기보다는 천천히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 그게 우리 스타일인 것 같아요. 다음 앨범도 차근차근 준비해야죠. 무조건 떠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대학생 기자 남자 넷이 모인 밴드, 다툼과 갈등도 있지 않나요?

딕펑스 갈등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마음이 잘 맞는 편이죠. 솔직히 7년 동안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어요. 언성이 약간 높아지는 정도랄까. 그만큼 안 친하단 거예요.(웃음) 사실 좋은 건지는 모르겠어요. 4명만 모여서 술을 마셔본 적도 없어요. 뒤풀이도 우리끼리만 한 적 없고요. ‘술 한잔 먹자’ 같은 말은 너무 닭살 돋고 오그라들어요. 집에 있는 누나나 형 같은 관계라고 할까. 음악 얘긴 오히려 커피 마시면서 해요. 아, 4명이서만 술 먹은 적이 딱 한 번 있네요. 치킨집에서 월드컵 보면서.



대학생 기자 네 명 모두 군 미필이라고 들었어요. 앞으로 활동 계획이 궁금해요.

딕펑스 여름에 디지털 싱글을 내고, 가을에도 발라드 곡을 낼 예정이에요. 앨범은 앞으로도 꾸준히 내려고 해요. 군대는 아직 정해진 게 없어요. 확실한 건 네 명 모두 갈 거라는 거죠.
“쫄지 마!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청춘이야!” 딕펑스 DICKPUNKS
대학생 기자 대학생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딕펑스 너 좋아하는 거 해라! ‘너 하는 거 보고 할게’ 대신. 정작 용기는 내지 못하고 ‘부럽다’는 말만 하는 친구들을 보면 솔직히 짜증이 날 때도 있어요. 우리 학교에는 초등학교 교사였다가 그만두고 서른 넘어 왔던 형, 법대 다니다 온 친구, 그런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하고 싶은 거 빨리 하세요. 아니면 평생 그렇게 살아요. 제일 중요한 건 ‘겁먹지 말라’는 거. 그 생각부터 버리는 게 시작이에요. 밴드 생활하면서 “너희 돈은 되느냐”는 비아냥거림도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잘되니 “넌 좋아하는 일 하니까”라고 말하더군요.




글 장진원 기자│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