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기획자

연기하는 광고기획자 오경수
[지상 멘토링] “즐길 수 없다면 광고인이 아니다”
“가스비 만만치 않을 텐데~” 코믹하고 능청스러운 연기를 선보이며 광고계 샛별로 떠오른 의문의 중년 남성. 꽤 오랫동안 ‘연극판’에서 내공을 쌓은 배우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연극판이 아닌 ‘광고판’을 종횡무진 누빈 20년 경력의 광고쟁이라고 한다. 연기하는 광고기획자 오경수 씨와 잡앤조이 대학생 기자들이 만났다.

약력
1967년생
現 덴츠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前 제일기획 광고제작본부 차장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 ‘장난스런 KISS’, ‘달자의 봄’ 등 출연



오경수 씨는 대홍기획, 제일기획 등 내로라하는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하며 본인이 제작하는 광고에 크고 작은 역할로 자주 등장했다. 처음에는 단역으로 출연하는 일이 잦았으나, 그의 재능을 알아본 광고주 덕분에 모 보일러 광고의 전속 모델로까지 발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광고를 계기로 많은 사람에게 얼굴을 알리게 됐고, 생각지 못한 드라마 출연까지 하게 되며 광고인 외에 배우라는 직업을 하나 더 갖게 됐다. 현재 그는 광고대행사 덴츠코리아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근무하고 있으며, 곧 방영을 앞두고 있는 드라마와 시트콤에도 캐스팅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상 멘토링] “즐길 수 없다면 광고인이 아니다”
본업이 광고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분이 많을 것 같아요.
광고대행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CF 촬영 때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아요. 촬영 중 급하게 엑스트라가 필요한 경우가 많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대행사 직원들이 알게 모르게 출연을 하죠. 그렇게 단역으로 출연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전속 모델로 발탁된 것은 유일무이한 일이었죠. 저는 광고주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연기까지 함께 하거든요. 광고에 대해 설명한 뒤 “이제 완성된 15초 영상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고서는 음악을 틀고 직접 연기를 하죠. 제작하려는 광고를 더욱 현실감 있게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다 보니 더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광고 제작과 연기, 두 가지 일을 함께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사실 광고에 출연하는 것은 몸담고 있는 분야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드라마 출연까지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그래서 처음 캐스팅 제의가 왔을 때 굉장히 놀랐죠. 당시 회사에는 ‘축 오경수 드라마 출연’이라는 플래카드까지 걸렸었어요.(웃음) 처음에는 회사에서 많이 배려해준 덕분에 3개월 유급휴가를 받고 드라마 촬영을 했었는데, 이후에도 계속 섭외 연락이 오더라고요. 하지만 계속해서 회사일과 병행하기는 힘들어 고민이 됐어요.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하고 싶은 것을 속이지 말자’였죠. 그래서 연기를 계속 하겠다고 결정했고 회사를 그만뒀어요. 하지만 광고 일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다행스럽게도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방송 일 하는 것을 배려해줘서 광고인과 배우, 두 가지 일을 함께 할 수 있게 됐죠.
[지상 멘토링] “즐길 수 없다면 광고인이 아니다”
현재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광고대행사는 업무에 따라 광고주를 관리하고 광고 전략의 기초를 짜는 기획 파트(AE), 소비자 조사·통계 등을 담당하는 마케팅 파트(AP), 그리고 실질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제작 파트 등으로 나뉘어요. 저는 제작 파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쉽게 말해 제작본부 수석장을 맡고 있어요. 업무가 나눠져 있긴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각 파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편이에요. 누구나 아이디어를 낼 수 있고 전략을 짤 수 있죠. 콜라보레이션도 중요해지고, 여러 분야에 대해 두루 아는 것이 필요해지고 있어요.

광고인이라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나요?
열심히 놀아야죠.(웃음) 아이디어는 경험이 쌓여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면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아이디어로 변형되죠.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 늘 많은 경험을 해보라고 권하고 있어요. 또 아이디어의 힌트가 될 만한 것들을 무심코 지나쳐서는 안 돼요. 책을 읽다가도 나를 감동시키는 문장을 체크해두고, 길을 가다가도 아이디어의 힌트와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기억해두죠. 술을 마시다가도 좋은 아이디어가 될 만한 것이 있으면 꼭 메모해둬요.
[지상 멘토링] “즐길 수 없다면 광고인이 아니다”
“아주 작은 아이디어의 단서라도 있다면 그것을 계속해서 파고들어야 하죠.
그런 부분을 즐길 수 있는 마인드가 기본인 것 같아요. ”



일을 하다 보면 슬럼프가 올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3번 정도 겪었는데, 정말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에요. 하루에 100개씩도 내던 아이디어가 한 개도 떠오르지 않거든요. 작가들이 “한 글자도 못 쓰겠다”고 하는 심정이 이해가 가요.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니 계속 집에도 못 들어가고 가정에도 소홀해지니 더 힘들더라고요. 각자 극복하는 노하우가 있겠지만 저는 아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편이에요. 한번은 계획 없이 중고 스쿠터를 사서 텐트와 냄비 하나만 들고 20일 동안 전국 여행을 떠난 적도 있어요. 그렇게 한 번 다녀오면 마음이 정리되더라고요. 슬럼프는 성장하기 위한 시간인 것 같아요. 일종의 성장통이죠. 잘 이겨내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어요.
[지상 멘토링] “즐길 수 없다면 광고인이 아니다”
성격이 굉장히 유쾌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제작한 광고들도 재미있는 게 많아요.
저는 평소에 ‘개그콘서트’나 만화 보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주로 유머러스하거나 코믹한 아이디어를 내는 편이에요. 포트폴리오를 보면 60~70% 정도가 유머러스한 광고죠. 시니컬하거나 도도한 친구들은 럭셔리한 광고를 잘 만들어요. 자신의 성향에 따라 아이디어를 내는 방향이 달라지죠.

광고업은 업무 강도가 굉장히 높은 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인가요?
광고인으로 살면서 이혼의 위기를 3번 겪었습니다.(웃음) PT 하나를 하려면 밤을 지새우는 일이 다반사죠. 요즘도 집에는 이틀에 한 번 들어가요. 광고 일을 하려면 대리 직급을 달기 전까지 연애와는 멀리 지내야 해요. 최근에도 입사한 지 4개월 된 후배가 애인과 헤어지는 모습을 목격했어요.(웃음) 업무량이 많다 보니 연애도 힘들고, 자연히 결혼도 늦게 하는 편이죠. 하지만 근무 환경은 굉장히 자유로운 편이에요. 복장이나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다 같이 야외로 나가는 일도 많아요. 일반 회사원처럼 책상에만 앉아 있는 일은 별로 없죠. 그리고 무엇보다 일이 힘들더라도 내가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광고로 만들어지면 굉장히 보람 있어요. 그래서 모두들 고생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거죠.
[지상 멘토링] “즐길 수 없다면 광고인이 아니다”
제작한 광고 중 애착이 가는 광고는 어떤 게 있나요?
광고는 단독 작업이 아니라 철저한 팀 작업이죠. 그래서 제가 혼자 만들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참여했던 광고 중 애착이 가는 것은 많아요. 2003년에 전인권, 인순이 씨가 출연했던 디지털 위성방송 광고가 있어요. 광고가 방송된 후 50만 명이었던 가입자 수가 120만 명으로 늘었죠. 전인권 씨나 인순이 씨는 당시에 광고 모델로서 선호도가 낮은 편이었는데, 그 광고 촬영 후 다른 광고에도 많이 출연하게 됐어요. 그리고 2006년 조인성 씨와 고릴라가 함께 출연한 국제전화 광고도 기억에 남아요. 그동안 고릴라가 광고에 등장한 적은 있었지만 유쾌한 이미지로 연출된 적은 없었거든요. 광고의 반응이 좋아 9편이나 시리즈물로 제작됐죠. 그 덕분에 고릴라를 제작했던 4명의 할리우드 팀이 광고 촬영 후 각각 집을 한 채씩 샀다고 해요. 촬영하며 친해져 한국의 ‘소맥’을 알려줬는데 그 맛에 반해 할리우드에 소맥을 전파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죠.(웃음)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광고는 어떤 것인가요?
20년 동안 광고 일을 하면서 거의 모든 상품에 대한 광고를 해봤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안 해본 게 딱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라면 광고예요. 라면 광고는 포맷이 다 비슷하잖아요. 만약에 제가 하게 된다면 지금 하고 있는 광고들과는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어요. 단순히 제품의 맛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인 접근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광고기획자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요?
일을 즐길 수 있는 마인드가 필요한 것 같아요. 광고인을 흔히 형사, 수사관에 비유하거든요. 형사는 아주 작은 단서도 흘려보내지 않고 파고들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사를 이어가잖아요. 광고인들도 비슷해요. 아주 작은 아이디어의 단서라도 있다면 그것을 계속해서 파고들어야 하죠. 그런 부분을 즐길 수 있는 마인드가 기본인 것 같아요.

성격이 집요하다면 도움이 되겠네요.
광고는 팀 작업이에요. 혼자서는 만들 수 없죠. 팀에는 집요한 사람도 있고, 성격이 무딘 사람도 있어요. 그렇게 다양한 사람이 섞여 있어야 박자가 맞아 잘 돌아갈 수 있거든요. 합창단 단원이 모두 노래를 굉장히 잘하면 좋은 화음을 낼 수 없다고 해요. 주연도 있고, 조연도 있어야죠. 때문에 ‘난 성격이 무던해’라며 겁낼 필요는 없어요. 일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다면 누구라도 도전할 수 있는 게 광고 분야죠.

광고인을 꿈꾸는 학생들이 많아요. 조언 한마디 해주신다면?
광고대행사는 광고주를 대신해 광고를 제작하는 곳이에요.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일했으면 좋겠어요. 간혹 광고를 하는 후배 중에 광고주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 상을 받기 위해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있어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광고주의 간절함을 이해할 수 있어야죠. 아직 꿈을 찾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되고 싶은 것’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더 많이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도 사실 광고인을 꿈꾼 적은 없거든요.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이것저것 하다 보니 광고를 하고, 또 연기도 하게 됐죠. 너무 일찍 자신의 진로를 정한 뒤 한 길로만 달리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럼 분명 자신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글 박해나 기자│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