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y 常識
예를 들어보자고. 누가 나한테 돈 좀 빌려달라고 하는 거야. 다행인지 불행인지 돈이 좀 있어서 빌려줄 수는 있어. 근데 말이야. 이 친구가 정해진 기간 안에 돈을 제대로 갚을지 어떨지가 불안한 거야. 한마디로 친구의 ‘신용 상태’가 궁금한 거지. 내일이라도 당장 돈을 갚을 만한 친구면 흔쾌히 빌려주면 되겠지만, 혹시라도 신용이 꽝이라면 선뜻 빌려줄 수 있겠어?개인 간의 작은 거래에도 신용이 이렇게 중요한데 기업, 나아가 국가 단위로까지 범위를 넓힌다면 말해 무엇하겠어. 자선사업가이거나 인류 최고의 박애주의자가 아닌 이상 상대방이 떼먹을 거 각오하고 돈 빌려주는 멍청한 기업가나 정부는 없을 거야. 그런데 이때 기업이나 은행, 국가의 신용도는 누가 결정해주지? 이때 등장하는 이들이 바로 ‘신용평가사’야.
신용평가는 말 그대로 해당 기관(국가)의 신용도를 평가해주는 걸 말해. 여기에 ‘사(社)’ 자가 붙은 걸 보니 ‘신용평가만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가 있나 보다’ 하고 생각한 친구가 있다면 센스쟁이!
![[입사시험에 나와! 족집게 경제상식] 신용평가사 “늬들은 누가 평가해주니??”](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AD.25673485.1.jpg)
거래 당사자인 기업, 국가 등의 신용평가가 주요 활동인 기업을 신용평가(회)사, 줄여서 신평사라고도 해. 우리나라에도 한국신용평가, 한국신용정보, 서울신용평가정보 같은 회사들이 있어. 그럼 인터내셔널하게 시야를 넓혀볼까?
‘세계 3대 신평사’란 말 들어봤어? 말 그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3개의 신용평가사를 말하는 거야. 미국계 기업인 ‘무디스(Moody’s)’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그리고 미·영계(대주주는 프랑스계 기업)인 ‘피치(Fitch IBCA)’가 바로 그 주인공이야. 무디스의 경우 1900년에 문을 열었으니 100년을 훌쩍 넘기는 역사를 자랑하지. S&P와 피치도 여러 인수합병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역시 설립한 지 100년이 넘는 기업이야.
이 3대 신평사는 모두 오랜 역사만큼이나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대단해. 예를 들어 ‘무디스가 한국 몇몇 은행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했다’는 기사가 뜨면 해당 은행들의 주가가 오르고 자금 조달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식이지. 시장에서 이들의 신용도를 증명하는 가장 손쉽고 강력한 수단이 신평사의 평가등급인 거야.
국가라고 이들의 평가에서 예외가 될 순 없어. 2008년 남유럽발 재정위기를 생각해봐. 그리스 같은 나라들의 채권이 휴지 조각이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이들 신평사가 매기는 국가 신용등급이야. 한 나라의 경제를 쥐고 흔들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일개 사기업이 갖게 된 거야. 투자 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일종의 거대 경제권력으로 부상한 거지.
정확한 신용평가를 통해 시장 참여자들의 안전한 투자를 유도한다는 의도 자체는 전혀 나무랄 게 없어. 그런데 문제가 없는 것도 아냐. 우선 이들 모두 사기업이란 본질적 한계를 벗어날 순 없어. 무디스의 이사진이 자기가 평가해야 할 기업의 임원을 겸직하고 있다고 생각해봐. 과연 공정한 평가가 이뤄질까? 어처구니없는 건 이런 예가 사실이라는 거야.
또 이들의 평가 과정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어. 2007년에 미국 하원이 S&P 관계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을 폭로해 파문이 일기도 했지. “그 평가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어.” “우리는 설사 ‘소’가 만든 상품일지라도 등급을 매겨야 해.” 하원에서 공개된 내용이야.
이들이 필요 이상으로 등급을 낮게 매겨 곤란을 겪는 나라들이 불만을 쏟아내는 것도 다반사야. 안 그래도 어려운데 위기를 조장해 더 큰 위기를 불러온다는 불만이지. 우리도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톡톡히 당했던 선례가 있어. 정작 신평사의 신용등급은 F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야. 이들의 신용등급은 대체 누가 평가해주지?
글 장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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