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성산 일출봉, 섭지코지쯤은 가봐야 ‘제주도 좀 가봤구나’ 한다면 당신은 이미 구식. 요즘 제주에서 가장 핫한 곳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승지가 아니다. 올레길. 제주 구석구석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을 수 있는 도보여행 코스가 제주행 비행기 티켓 구하기를 어렵게 만들 정도다. 잠시 한눈팔면 도태돼버리는 살벌한 사회를 벗어나 삶을 돌아보며 묵묵히 걷는 트레일 여행이 국내에서도 각광받기 시작한 예다.

해외여행도 마찬가지. 가이드가 든 깃발을 따라 떼 지어 다니며 먹고 마시고 노는 여행을 벗어난 지는 이미 오래다. 지친 몸과 정신을 위한 휴양 여행이 다음이라면, 요즘엔 사서 고생하더라도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트레일 여행이 대세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해외 배낭여행. 기왕 짊어질 배낭이라면 ‘나 이렇게 걸은 사람이야’라며 어깨에 힘 좀 줄 수 있는 코스를 선택해보자.




미국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Pacific Crest Trail : PCT)
[판타스틱한 여름방학 보내기] 너흰 둘레길 걷니? 난 순례길 걸어! 세계의 트레일 코스 걷기
하이킹을 꿈꾸는 자라면 누구나 도전하고 싶은 코스. 하지만 종주는커녕 몸 상하기 십상인 악마의 코스이기도 하다. 26세의 이혼녀이자 직장에서 잘린 셰릴 스트레이드란 미국 여성이 발톱 6개가 빠지며 걸었던 종주기를 쓴 책 ‘와일드(wild)’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PCT가 악마의 코스로 불리는 건 총길이 4285k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길이 때문이다.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출발해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주를 관통해 캐나다 국경지대에서 끝나는 코스다.

미국 서부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길. 보통 6개월간의 도보여행 동안 눈 덮인 고산과 뜨거운 사막, 평원, 화산지대 등 인간이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환경을 거쳐야 한다. 뜻하지 않은 화재 등으로 몇 개월에 걸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국립공원 등 연방산림청에서 관리하는 구간을 통과할 때는 허가(permit)를 따로 받아야 한다. 종주를 마치면 PCT 홈페이지(www.pcta.org)에서 증명서를 발급해주고 홈페이지에도 이름이 등재된다.

지역별 퍼밋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보통 2500~5000달러의 비용이 소요된다.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한다는 존 뮤어 트레일 코스도 PCT의 일부다. 무사히 종주를 마친 사람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은 대부분 “나를 알게 됐다”와 “강해졌다”라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Camino de Santiago)
[판타스틱한 여름방학 보내기] 너흰 둘레길 걷니? 난 순례길 걸어! 세계의 트레일 코스 걷기
프랑스 남부의 국경 마을인 생장피데포르에서 시작해 스페인 북서쪽 도시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끝나는 총길이 800km의 길.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스페인 식 이름이 산티아고)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이르는 길이다. 본래 가톨릭 신자들의 성지 순례 코스였지만, 오늘날은 세계적인 트레일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몽파르나스역에서 기차를 타고 생장피데포르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크레덴시알’이라 부르는 순례자용 여권을 만들면서 대장정이 시작된다. 4~5월, 9~10월의 봄·가을이 걷기에는 가장 좋다. 우기인 겨울은 눈비가 많아 가장 힘들고, 문을 닫는 알베르게(순례자용 숙소)도 많아 주의해야 한다.

짐은 가벼울수록 좋다. 코스 중간중간 마을이 있고, 마을마다 슈퍼나 약국, 식당 등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용품은 현지에서 조달 가능하다. 비용은 보통 1km당 1유로로 계산한다. 800km면 800유로 정도라는 뜻. 물론 항공료는 제외다.


뉴질랜드
밀포드 트랙
(Milford Track)
뉴질랜드 밀포드사운드/사진=뉴질랜드관광청 제공
뉴질랜드 밀포드사운드/사진=뉴질랜드관광청 제공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 유명한 뉴질랜드. 세계적으로 유명한 청정 환경 중에서도 피요드랜드 국립공원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이다. 이곳의 청정 트레일 코스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밀포드 트랙이다. 총길이 53km의 거리를 4일 안에 걸어야 하는데, 개별 트레커의 경우 캠핑이 금지돼 산장(hut)에서만 묵어야 한다. 산장, 교통 등 여행에 필요한 내용은 사전에 예약해야 이용 가능하다. 예약과 자세한 여행 정보는 홈페이지(booking.doc.govt.nz)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그레이트 오션 워크
(Great Ocean Walk)
[판타스틱한 여름방학 보내기] 너흰 둘레길 걷니? 난 순례길 걸어! 세계의 트레일 코스 걷기
오스트레일리아 남서부 빅토리아주의 아폴로베이에서 출발해 글렌앰플의 12사도상까지 104km에 이르는 해안 도보여행 코스. 청정 해안과 원시림 등 때 묻지 않은 자연과 함께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 혹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길’ 등으로도 불린다. 종주까지는 보통 일주일이 걸리는데, 대부분 해안선이나 관목림 지대를 통과하는 평탄한 지형이다.

거친 숨 헐떡이며 극한을 맛보기보다는 천천히 사색하며 걸을 수 있는 길. 환경 보호가 철저한 오스트레일리아 당국 덕분에 개인 여행보다는 ‘에코투어리즘’ 인증을 받은 현지 여행업체(www.bothfeet.com.au 등)와 가이드가 동행하는 경우가 많다. 자세한 여행 정보는 홈페이지(www.greatoceanwalk.com.au)에서 확인할 수 있다.


스웨덴
쿵스레덴
(Kungsleden)
[판타스틱한 여름방학 보내기] 너흰 둘레길 걷니? 난 순례길 걸어! 세계의 트레일 코스 걷기
산티아고 순례길이 널리 알려지면서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명소가 된 것처럼, 쿵스레덴은 유럽인들에게는 한 번쯤 걸어봐야 하는 트레일 코스다. 스웨덴 북부의 아비스코에서 출발해 남쪽의 헤마반에 이르는 코스로, 총길이가 440km에 이른다. 쿵스레덴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원하는 경우에 제격이다. 늪지대같이 걷기 힘든 곳은 널빤지를 길게 깔아놓아 걷기 쉽게 만든 것도 인상적이다. 크게 4개의 코스로 나뉘어 있는데, 한 코스당 일주일 단위로 생각하면 된다. 1년 중 가장 걷기 좋은 시기는 백야가 있는 6월 중순에서 9월 말까지.


글 장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