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활기를 되찾는 봄이 오면 스트라이프로 온 몸을 도배하고 싶다.
어느 순간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눈이 빙글빙글하며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올 현기증이 앞을 가릴지라도 말이다.
[Fashion Item] 나, 어지러워
점잖고 우아할 뿐만 아니라 적절히 시크한 블랙을 찬양하는 에디터가 고백하건대 우중충하고 희끄무레한 무채색에 매서운 바람까지 엉켜붙은 나의 겨울 스타일은 어쩐지 심심하고 고스(goth)해 보이기까지 한다. 발그레한 컬러 한 방이면 해결되련만 막상 거울 앞에 서면 조금은 멋쩍은 것이 사실이다.

기분 탓이든 날씨 탓이든 밋밋한 아이템을 고수하는 당신이라면 다가올 봄을 맞이하여 스트라이프에 한 자리 정도 내어주는 건 어떨까. 새 시즌에는 스트라이프가 트렌드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었던 ‘슈퍼 울트라’ 그래픽 패턴을 타파할 대항마로 떠올랐다.

부담스러운 패턴과는 달리 스트라이프는 조용한 파워를 발휘하며 심심한 스타일에 경박스럽지 않은 활기를 부여할 테니까. 베이식한 스트라이프를 찾는다면 단연 싱글 스트라이프가 해답이다. 일정한 간격의 가장 단순한 막대들이 똑같은 너비의 선으로 나란히 서 있는 꼴을 보자면 온 몸이 배배 꼬이는 듯 기분까지 오묘해진다.

그렇다면 베이식을 넘어 런웨이의 스트라이프는 어떨까. 마이클 코어스의 스트라이프는 우아하고 현실적이었다. 다소 절제되었지만 유연함이 보이는 스트라이프는 강렬한 태양 아래 누워 여유를 만끽하는 젯셋족을 연상케 한다. 레 코팽은 기본적이면서 모두가 공감할 스타일의 마린 룩을 테마로 스포티브한 감성을 자아냈다.

특히 보디 스트라이프(몸판이 3등분으로 이루어진 폭넓은 무늬)로 성글게 짜인 매니시한 니트는 파리지앵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런 루스한 분위기의 줄무늬와 달리 마크 제이콥스의 스트라이프는 미니멀의 핵이었다. 헤어와 메이크업은 과장되었지만 실루엣만큼은 하나로 점철된 느낌이었다. 자칫하면 하품이 나올 것만 같은 똑같은 스타일의 구원투수는 바로 자유분방한 줄무늬였다.

천과 스트라이프의 폭이 동일한 블록 스트라이프, 복잡한 무늬로 신선한 효과를 보여준 멀티 스트라이프, 불규칙적인 패널 스트라이프까지, 미니멀함과 모던함을 가로지르며 경쾌함과 발랄함을 쌓아올린 근사한 옵아트의 신세계가 쏟아져 나왔다. 컬러를 배제하니 라인의 파워가 한층 더 살아났기 때문이다. 돌체 앤 가바나는 모던함을 잃지 않고 기본에 충실했다.

유쾌함이 가미된 세 개의 선을 하나의 그룹으로 늘어놓은 트리플 스트라이프는 보는 이에게 휴식을 가져다주는 듯하다. 에스닉한 무드의 댕글 이어링과 헤어 피스가 눈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이뿐 아니라 가뿐한 시폰, 촘촘하게 짜인 니트, 톡톡한 조직감의 자카드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스트라이프의 경쾌함을 배가시켰다.

스트라이프처럼 다양한 변신을 시도할 수 있는 패턴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러니 이번 시즌은 줄무늬를 눈여겨보자. 세로로 길게 뻗어 내린 버티컬이든 가로로 뎅겅 잘린 스트라이프든 간에 정신없이 어떻게 잘려도 아름다운 줄무늬 향연을 두 팔 벌려 환영해주길.
[Fashion Item] 나, 어지러워
[Fashion Item] 나, 어지러워
진행 이다호(프리랜서)│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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