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이 된 486 운동권의 선택
[화제의 영화 미리보기] 남쪽으로 튀어
최해갑(김윤석)은 한때 한국의 체 게바라로 불릴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던 운동권 대학생이었으나, 지금은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직함을 내걸고 있다. ‘안 다르크’로 불리던 열혈 운동권 출신 아내 안봉희(오연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가는 딸 민주(한예리), 아버지에게 불만 많은 아들 나라(백승환), 사랑스러운 막내 나래(박사랑)는 해갑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남들과 달라도 잘살 수 있다고 믿는 그들은 행복을 찾아 남쪽 섬으로 떠난다. 그러나 평화로운 생활도 잠시, 개발 열풍이 섬을 뒤흔들면서 해갑의 가족은 최대 위기를 맞는다.

오쿠다 히데오의 베스트셀러 ‘남쪽으로 튀어!’가 영화화됐다. 하지만 외국 소설을 억지로 번안했을 때의 이물감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의 1970년대 전공투 세대와 한국의 1980년대 운동권 세대는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다. 이후 버블경제의 화려한 물결 속에 과거의 이념은 스러져가고 너도나도 자본주의의 최전선으로 뛰어들 때, 차마 그 흐름에 끼어들기 싫었던 일부 과거 운동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386세대(이제는 486세대)라 불리며 1990년대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자본주의 발전 양쪽 모두에서 중추적인 캐릭터를 담당했던 그들의 속내는 어떨까. 공지영 등의 ‘후일담’ 소설에서 어둡고 우울하게 그려졌던 과거 운동권들의 이야기는, 적어도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손길 하에선 대책 없이 유쾌하고 할 말 다 하는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대신 ‘과거에 목숨 바쳐 지켰던 그 신념을 현재의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지켜갈 수 있을까’라는 묵직한 질문은 힘 있게 끌고 간다.

임순례 감독은 영화 ‘남쪽으로 튀어’의 클라이맥스인 섬 개발을 둘러싼 대립에서 용산 참사라든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연상케 하는 최근 정치적 상황을 삽입하되, 너무 크게 부각하진 않았다. 사회 참여적 발언 자체를 최해갑이라는 강렬한 캐릭터에 용해시키면서 인간적인 매력을 좀 더 강조한 쪽이다.

많은 양의 에피소드를 소화하기 위해 극의 흐름이 다소 산만해졌고, 매 장면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감정을 조금씩 격앙시키는 구조를 취한지라 그 잔잔한 흐름이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잘사는 법’이 반드시 ‘더 돈을 많이 버는 법’이 아니지 않을까 의문을 던져본 관객이라면, 나라가 하는 일이 맘에 안 들어 국민 거부 선언을 해버리고 싶다는 개인주의적인 생각에 동조해본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통쾌한 소화제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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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K-9478-1.N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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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용언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