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 나의 인생

통념을 거부하면서 예술과 방송을 넘나드는 아티스트. 지나친 해체 또는 지나친 융합이 아니냐는 비판에 “Why not?”이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여성. 개성·자율성·다양성·대중성의 가치를 지닌 한국에서 가장 포스트모더니스트 같은 사람, 낸시 랭을 캠퍼스 잡앤조이 대학생 기자들이 만났다.
내추럴 하이부터 천재설까지, 팝 아티스트 낸시 랭과의 솔직 토크
등장부터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지난 1월 22일 오후. 비마저 오락가락하던 날, 그의 작업실이 있는 양재동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그러나 작업실 앞에서 비비드 컬러의 옷을 입고 격하게 손을 흔들고 있는 그의 모습이 회색 세상에 작은 파문을 만들었다. 흡사 1950년대 흑백 무성 영화에 1970년대 미국 영화의 ‘색깔’이 난입한 듯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면서 인상은 ‘역시’에서 ‘의외네’로 변한다. 도도하고, 까다롭고, 막무가내일 것이라고 알려진(사실 그렇게 알려지진 않았다. 그저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 모습이 없다. 비교적 활기차다는 것 외에는 특이할 것 없는 보통 여성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시’에서 ‘의외네’로 갔던 생각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다시 ‘역시’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도도하고, 까다롭고, 막무가내가 됐다는 것은 아니다. 익히 알려진 그의 당당함과 남다른 발상 때문이었다. 꽤 많은 고관대작과 현인(賢人), 기인(奇人)들을 인터뷰해왔지만 이처럼 당당한 사람은 처음이다.

통념적인 질문을 던질 때마다 큰 눈을 번쩍이며 “왜 그래야 하죠?”라고 되물어 인터뷰 내내 진땀을 흘리게 한다. 한편으로 기자가 느끼는 당황스러움이 그녀의 당돌함 때문이 아니라 그 되물음에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것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나도는 ‘천재설’이 일리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낸시 랭이 보이는 가지각색의 모습처럼 그가 실제로 하는 일도 다양하다. 매년 개인전을 열고 있는 그의 본업은 팝 아티스트. 그러나 방송과 연극을 넘나드는 연예계 활동과 함께 최근에는 뷰티 브랜드 수입·유통 사업도 시작했다. 작품 작업 틈틈이 하는 예능 프로그램 활동이 워낙 활발하고 이슈를 만들다 보니 사람들에게 ‘연예인인가’ 하는 혼란도 부른다.

“아티스트냐 연예인이냐 하는 질문을 8년 넘게 들었어요. 이제는 간단하게 설명해요.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연예인형 아티스트 낸시 랭, 앙!’이라고요. 20년 전 소방차 오빠들이 데뷔했을 때만 해도 가수가 연기하는 건 금기시됐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못하면 바보가 돼요. 모든 게 오버랩되는 시대인데도 유독 아트에 대해서는 ‘예술가는 이렇다’는 식의 어마어마한 고정관념이 있어요. 제가 좀 빨랐던 것 같아요.”
내추럴 하이부터 천재설까지, 팝 아티스트 낸시 랭과의 솔직 토크
시대를 앞서 나간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언행이 굉장히 독특합니다. 평소 모습인가요.

“제 별명이 걸어다니는 팝 아트잖아요. 자체가 작품. 연출은 없어요. 오히려 지금은 많이 차분해진 편이에요. 나이도 먹었고 그만큼 철학과 경험의 깊이가 누적돼서요. 옛날에는 정말 미친 애로 봤어요. 평소 모습이 약을 먹은 것 같다고 내추럴 하이(Natural high)라는 말도 들었어요.”

그런 본인의 비범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무 생각 없어요. 근래에 낸시 랭 천재설이 돌더라고요. 우리나라 대표 지식인 분들, 먹물 쪽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분들이 천재라고 과찬해주셔서 기분 좋아요. 이제야 알아보는구나 싶기도 해요.”

천재설은 아마 변희재 씨와의 토론이 기점이 된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최근 소셜테이너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셨는데, 계기가 있습니까.

“처음에는 연예계가 굉장히 핫한 곳이라 생각해서 연예계를 넘나드는 연예인형 아티스트를 콘셉트로 가져갔어요. 방송 자체가 제 퍼포먼스 중 하나였죠. 사람들은 왜 방송과 예술을 따로 생각하는지. 아무튼 그러다가 2011년부터는 정치계가 가장 핫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정치계로 포커스를 맞춰 2012년에는 정치 맥락이 있는 활동을 했어요. 총선·대선 투표독려 앙 퍼포먼스라든가 개인전 ‘내정간섭’을 준비해서 알차게 보여줬죠.”

꼭 핫한 곳을 따라가는 이유가 있습니까.

“아니, 당연한 거 아니에요? 패션도 미술도 사람들이 가장 집중될 곳을 캐치해서 거기에 대한 또 다른 의견이나 철학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비단 이쪽뿐 아니라 경영·마케팅도 그런 것 아닌가요.”

대선도 끝나고 핫한 정치 이슈는 끝났는데요, 지금까지 했던 정치 맥락의 활동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누가요? 제가요? 저는 평가할 게 없어요. 즐겁고 신나게 작품 활동을 했다는 게 전부고 평가는 교류하고 보는 사람들이 해주죠. 그 사람들이 얘기하는 피드백이 많아서 행복하고 즐거워요.”
내추럴 하이부터 천재설까지, 팝 아티스트 낸시 랭과의 솔직 토크
내추럴 하이부터 천재설까지, 팝 아티스트 낸시 랭과의 솔직 토크
그동안의 활동에 좋은 피드백만 있는 건 아닙니다. 악플을 보다 보면 힘들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제가 변태라서 그런지 악플 보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져요. 제가 악플 다는 사람은 백수라는 말을 했다가 백수연대가 들고 일어서서 큰 웃음을 주기도 했죠. 솔직히 자기 꿈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자기 계발과 상상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해요. 그런데 남 일 보면서 욕하고 오지랖 넓히는 사람은 루저 같아서 한 말이었어요. 연예인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좋아하는 연예인 기사만 봐도 시간이 훅 갈 텐데 싫어하는 사람 찾아다니면서 악플을 남기는 건 저를 너무 사랑하는, 애증관계 같은 거 아닐까요.”

보통 사람이 생각은 하지만 감히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말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솔직한 편이에요. 직설적이고.”

계속되는 이슈 메이킹에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말도 나오는데요.

“그게 뭐 잘못인가요? 마케팅이 노이즈면 어떻고 비노이즈면 어때요. 마케팅이란 것이 원래 대중에게 알려지려는 목적의 개념이잖아요. 선택과 구매와 수익은 그 다음 얘기죠. 제가 좋아하는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한 말이 있어요.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 그렇다고 전투 자세로 막 유명해지려고 한 건 아니에요. 제 자체가 이렇다 보니 이슈는 저절로 만들어지더라고요.”

노출이나 성적 발언으로 외설 논란도 있습니다.

“사진 작업이나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선보인, 콘셉트가 있는 작업이에요. 그런데 인터넷에는 내용 설명이나 캡션 없이 떠도니까 사진이 작품 스틸 컷인지 뭔지 모르고 접해서 그래요. 불만은 없어요. 시스템이 그런 걸 어쩌겠어요.”

미디어에 공개되는 돌발 행동이 많습니다. 정말 ‘돌발’ 행동인가요, 심사숙고 뒤에 나온 행동인가요.

“돌발이 많아요. 얼마 전 뉴스 인터뷰에서 앵커 어깨에 코코 샤넬을 얹고 같이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어요. 사실 사전에 퍼포먼스 요청이 들어와서 힘들다고 말했는데 전달이 잘 안 됐는지 생방송에서 요청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나온 행동이었죠.”
내추럴 하이부터 천재설까지, 팝 아티스트 낸시 랭과의 솔직 토크
코코 샤넬은 늘 어깨에 얹고 다니시는 고양이를 말씀하시는 거죠. 왜 이름이 코코 샤넬입니까.

“원래 성별이 없어요. (낸시 랭은 코코 샤넬을 뒤집어 확인시켜 줬다.) 제가 암컷으로 정했죠. 제가 샤넬 브랜드를 좋아하고, 코코 샤넬이 가장 혁신적인 생각과 실행을 했던 디자이너라서 그런 의미로 이름을 코코 샤넬로 붙였어요. 벌써 9년째 같이 다니는 친구죠. 한 번 튜닝도 해줬어요. 하지만 영혼은 살아 있어요. 인형이지만. 목욕도 시켜주고.”

샤넬도 그렇지만, 대놓고 명품을 좋아한다고 하셔서 말이 많았습니다.

“처음에 그렇게 알려졌어요. 그래서 어마어마한 욕을 먹었죠. 당시 모든 기사가 ‘된장녀 아티스트’라고 나왔어요. 전 좋아요. 저로 인해 많은 아티스트가 명품을 착용하기 시작해서. 원래 예술가는 점퍼에 물감 묻히고 시니컬하고 비극적인 이미지였는데 저를 계기로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명품을 좋아하는 게 잘못인가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보세일 수도 있고 명품일 수도 있잖아요. 내가 이 브랜드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과시용으로 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정말 브랜드의 역사와 철학과 디자인을 사랑해서 사는 건 잘못이 아니죠. 차도 집도 마찬가지인데 왜 그런 것에 눈치를 봐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요.”

최근 방송을 통해 가족사를 공개하시기도 했는데요, 유년 시절에는 어떤 아이였습니까.

“천재였어요. 초등학교 때 시를 많이 썼는데, 지금 봐도 정말 천재였구나 싶어요. 어릴 때는 부유하게 자라서 부모님이 뭐든 다 해주셨어요. 심지어 집 앞 백화점에 가면 다 알아봐서 명품 옷도 돈 내지 않고 그냥 골라가기만 해도 될 정도였어요. 집에 동화책, 클래식 CD, 어학기기, 천체 망원경 등 없는 게 없었죠.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었고요. 그냥 주위에 쭉 놓아두고 궁금해서 자발적으로 하게끔 하셨죠.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았어요. 그 덕분에 많은 걸 배웠고요. 피아노, 테니스, 피겨, 태권도. 그림은 방 벽지에 크레파스로 그렸어요. 그래도 부모님이 혼내지 않으셨죠. 벽지를 바꾸셨지. 말도 안 되지만 저한테 행복하고 자유로운 유년 시절이었죠.”
내추럴 하이부터 천재설까지, 팝 아티스트 낸시 랭과의 솔직 토크
팝 아트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고등학교를 필리핀에서 국제학교로 다녔어요. 이때 진로를 정했죠. 원래는 예일대 미대를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부모님은 제가 시집 잘 가기만을 바라셔서 한국으로 불러들이셨죠. 대학원이라도 예일대를 가려고 했는데 이때 집안이 완전 망했어요. 어머니가 암 투병을 시작하셨고 아버지도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요. 돈 벌 줄도 모르는데 갑자기 가장 역할을 맡아야 해서 절망적이었어요.”

힘든 시기, 길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셨습니까.

“엄마 말이 떠올라요. ‘혜령아, 너는 이제 부르주아가 아니다. 회사라도 취직할 생각을 해라.’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회사를 다녀야 한다니. 그런데 제가 촉이나 오감이 좋은 편이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도 작품 활동이나 그림을 할 수 없으면 꿈을 현실로 가져가기 어렵겠더라고요. 그래서 몰래 홍대 미술대학원에 시험 쳐서 들어갔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포기한 건 없나요.

“없어요. 뭘 포기해야 하죠?”
내추럴 하이부터 천재설까지, 팝 아티스트 낸시 랭과의 솔직 토크
예를 들어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역할 갈등이란 게 생길 수 있을 텐데요.

“욕심이 많아서 다 같이 가져가요. 절대 하나를 놓지는 않아요. 싫으니까요. 포기란 아주 무서운 거예요. 강압적으로 못한 게 아니라 스스로 자살하듯 영원히 놔버린 거잖아요. 다만 보류를 할 수는 있겠죠. 같이 가져가보고 5 대 5가 안 되면 1 대 9로 해보고, 고민하며 계획을 세워요. 지혜로운 욕심이랄까. 지금 대학생들도 이런 걸 가졌으면 좋겠어요.”

또 대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제가 항상 말하는 거요. Just be yourself. Dream and go for it(자기 자신이 되세요. 꿈을 향해 나가세요). 가장 함축적인 말 같아요. 특히 우리나라 대학생들한테는요. 그런 친구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말은 쉽지만 저는 아직도 그게 어려워요.

“눈치 보지 말고 나만의 재능과 유니크함을 펼치란 얘기예요. 뭔가 부끄럽게 여겨지고 위축되는 건 내 자신이 원래 그런 게 아니라 주변 환경에서 암암리에 만들어진 강압 때문이에요. 하물며 옷차림도. 조금 다르게 입었다고 주변 사람들이 한마디 하는 것에 상처받지 말고,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자신감을 갖고 노력하고 개발해서 더 멋져져야죠. 내가 못생겼어? 그럼 외모도 가꾸면 되는 거고, 아니면 다른 걸로 커버하는 거예요. 내면적으로 멋있어지든 스타일링으로 하든. 남만 따라하면 한계가 있어요.”

앞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계십니까.

“2013년의 콘셉트를 힐링, 트래블링, 러브로 잡았어요. 작년에 너무 열심히 작품과 일을 해서 좀 충전하고 가려고요. 3월 14일에 오픈하는 제 개인전이랑 시작하는 사업 ‘랭샵’에 주력할 거예요. 더 멀리 보는 꿈이 있다면 전 지구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는 것. 그런 낸시 랭의 인프라로 부와 명성을 한 손에 잡는 것.”

오늘의 인터뷰로 많은 사람들이 낸시 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끝으로 본인이 낸시 랭이란 사람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큐티, 섹시, 키티, 낸시! 앙!”



대학생 기자 인터뷰 후기
김우람(숭실대 벤처중소기업 3)
내추럴 하이부터 천재설까지, 팝 아티스트 낸시 랭과의 솔직 토크
낸시 랭 누나(?)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예쁘다, 그리고 튄다’. 날씨가 흐려서 세상이 회색빛인데도 홀로 색색으로 빛났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낸시 랭 스타일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자신만의 예술이나 퍼포먼스 등 하고 싶은 것을 소신 있게 추진하는 모습이 멋있었고, 자신을 잘 알고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모습은 본받고 싶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다른 스케줄을 하러 바쁘게 가는 낸시 랭 누나와 헤어지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소신 있는 행동을 해나갈 것인지 기대되기도 했다.

“너 자신이 되어라. 꿈꾸고 그것을 실행하라”는 말씀. 이 말을 잊지 말아야겠다. 나도 당당한 내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더 큰 꿈을 꾸고 그것을 현실화해야겠다.



소현정(서울여대 자율전공학부 2)
내추럴 하이부터 천재설까지, 팝 아티스트 낸시 랭과의 솔직 토크
이슈 메이커 낸시 랭 씨를 만나기 전에는 뿜어져 나오는 기에 눌려 제대로 대화조차 못할까봐 다소 겁이 났었다. 하지만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 판단하기는 이르다는 것을 그녀를 만나는 동안에 다시금 느꼈다. 사치라는 단어가 붙은 모습을 당당함으로 표현하고, 밝고 유쾌한 성격 뒤에 그만큼 힘들고 슬픈 시절도 있었음을 알았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악플조차 사랑이라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그 속에 깊은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유보는 할 수 있되 포기는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가장 와 닿는다. 여러 일을 하면서 하나도 놓지 않으려는 낸시 랭의 욕심이 열정과 열망으로 다가와 배우고 새겨들었던 알찬 대화의 시간이었다.


글 함승민 기자│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