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웅의 스펙 뛰어넘기


취업을 미루는 가장 흔한 방법은 ‘내가 원하는 회사’에 가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나를 원하는 회사’를 거부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좋은 직장만이 자존감을 높이는 길이 아니다. 시간을 끌수록 좋은 직장을 찾을 가능성은 낮아진다. 지금 현실은 절박하다.


대학을 졸업한 지 2년 남짓 된 취업준비생이 우리 회사를 통해 취업컨설팅을 받은 적이 있다. 뛰어난 스펙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차분하고 성실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면접을 보는 족족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는 마지막 관문에서 실패하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심성 좋고 의지도 있으며 그런대로 실력을 갖춘 사람이 왜 계속 좌절하는지 우리도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해 몹시 답답했다.

얼마 후 우리는 그가 면접을 본 회사의 인사담당자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도 그 사람을 선호했습니다. 그런데 입사 의지를 묻는 형식적인 질문에 분명하게 대답하지 않더군요. 우리 회사에 취업할 생각도 없으면서 왜 면접 자리에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컨설턴트가 그에게 이유를 물으니, 그 회사에 취업할 작정으로 면접을 보았지만 그것이 현실로 다가올 때 이상한 거부감이 든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좋은 회사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 기회를 날리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하고 취업해서 잘 근무할 수 있을지 겁도 난다고 했다.

이렇게 극단적인 사례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취업을 미루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다. 마땅한 직장이 없거나 입사 전형에서 떨어져 취업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취업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느냐고 의심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취업 현장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일이다.
절박함 속에 새로운 길이 있다
‘미루는 것’이 산만하고 게으른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집중력이 뛰어나고 부지런한 사람들도 잘 미룬다. 특히 중요한 것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적으로 무엇인가를 미루는 이유는 완벽에 대한 집착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취업을 미루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막상 취직했는데 그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적응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이 생기기 때문에 취업을 미루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고 면접 자리에서 자기도 모르게 부적절한 행동이나 답변을 해서 회피하기도 한다.

취업을 미루는 가장 흔한 방법은 ‘내가 원하는 회사’에 가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나를 원하는 회사’를 거부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는 직업 간, 직장 간 소득 격차가 낮고 안전망이 잘 갖추어진 북유럽 같은 이상적인 곳이 아니다. 어디에 취직해서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보수와 근무 여건이 달라진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더 나은 직장을 찾는다.

그러나 이것은 함께 극복해야 하는 동시에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좋은 직장만이 자존감을 높이는 길이 아니다. 시간을 끌수록 좋은 직장을 찾을 가능성은 낮아진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질 뿐만 아니라 나의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는 생각이 들 때 자존감은 회복되며 자신감과 자기 효능감이 생긴다. 그때 비로소 좋은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생각은 행동을 낳는다. 모든 일은 ‘생각’을 실천한 ‘행동’의 결과다. ‘하다 안 되면…’이라는 생각은 다른 출구를 준비하게 한다. 대학원, 어학연수, 고시공부, 아르바이트 다 좋다. 하지만 그 길을 선택한 자신의 속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에 턱없이 부족한 자신을 방어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안전한 둥지에 더 머물고 싶을 만큼 사회가 두려운 것은 아닌지, 여전히 부모가 물어다 주는 먹이로 먹고살 만하다는 헛된 믿음 때문은 아닌지 진지하게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세계경제는 위기에 빠져 있다. 경제가 고속 성장하고 이에 따라 많은 기회가 주어지던 예전과는 다르다. 대체로 부모님들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부동산이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이들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자식들에게 과도한 교육비를 투자하고 적절하게 노후를 준비하지 않은 부모님 세대는 심각한 현실에 마주하고 있다.
절박함 속에 새로운 길이 있다
이제 더 이상의 미루기는 그쳐야 한다. 보고 싶지 않더라도 세상을 향해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지금 현실은 절박하다. 부모들은 허리가 휘게 뒷바라지하는데 자식들은 그 힘으로 애써 자신의 ‘절박함’을 외면하고 있다. 절박함을 인정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준비라는 핑계로 현실에서 도피하지 말고 절박함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자.


박천웅 스탭스 대표이사
삼성그룹 임원을 역임하고 인재서비스기업 ‘스탭스’ 대표를 맡고 있다. 숙명여대·한국장학재단 취업 멘토, 한국경제신문 필진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