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산의 이슈탐정소


“오늘 밤 시청에서 만납시다!”
싸이가 나를 호출했다. 요즘 장안에서 가장 뜨거운 남자인 그가 나를 왜 불렀을까. 카페에 앉아 있어도 길을 걸어도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를 가나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강남스타일’만 들으면 나도 모르게 말춤이 나올 지경이었다. 싸이가 만나자고 하면 만날 수밖에.

싸이를 만나기 전에 유튜브에 ‘강남스타일’을 검색했다. 나는 3억5120번째로 그의 마수에 걸려든 사람이었다. 중독성이 강한 뮤직비디오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하다가 겨우 시간에 맞춰 시청광장으로 갔다. 이럴 수가. 싸이는 진정한 어장관리남이었다.

광장에는 8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서 ‘강남스타일’을 외치고 있었다.그런데 정작 싸이는 어디에 있는 거지?

무대는 불길과 연기에 휩싸여 있었고 싸이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 눈에는 싸이가 보이는 걸까? 나는 불타는 무대를 보며 눈을 문질렀다. ‘강남스타일’을 열광적으로 외치는 소리가 귀에서 점점 멀어졌다.

‘오빠 어디 있어요?’ 싸이가 나를 부른 번호로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답이 없었다. 누군가 싸이를 독차지하기 위해 불을 지른 것이 틀림없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범인은 현아였다. 현아는 싸이 옆에서 패왕의 허리돌림으로 여러 사람의 눈을 멀게 하지 않았던가.

그게 아니라면 싸이의 자작극은 아닐까. 무대에 불 지르고 클럽 가서 놀고 있는 거 아냐? 싸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싸이를 직접 보겠다는 일념으로 군중을 비집고 들어가 무대와 가까운 곳으로 전진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드디어 무대가 눈앞에 온 순간이었다.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너무 눈부셨다. 한참 동안 눈앞이 캄캄했다. 물러나서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전광판이 있었다.‘한국 가수 빌보드 차트 점령’이라는 글 옆에 태극 마크가 반짝거렸다. 전광판은 하나만이 아니었다. 무대 주위에서 수천 개의 전광판이 번쩍이고 있었다.

저것들이 범인이었구나. 과열로 화재가 난 것이다. 무대 하나에 전광판이 너무 많이 붙어 있었다. 오줌이라도 눌까. 그러나 오줌 한 줄기로 진정될 불길은 아니었다. 불길은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지겠지만 다 타고 남은 무대 위에 과연 싸이가 있을까? 다시 노랫소리가 들렸다. 나는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없었다.
강남스타일 방화 사건
시사 키워드 다시 읽기

-7월 15일 싸이의 정규 6집 앨범 타이틀곡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 게재됨.

-싸이 특유의 엽기·코믹 코드와 말춤을 담아낸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등 SNS 채널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가며 게재 76일 만인 9월 28일 조회 수 3억 건 돌파(전 세계 최단 기록).

-입소문을 탄 ‘강남스타일’은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인 ‘HOT 100’에서 9월 14일 64위에 오른 뒤, 둘째 주 11위, 셋째 주 2위를 차지함. 이는 한국 가수 역사상 최고 순위.

-‘강남스타일’은 ‘좋아요’를 누른 횟수가 300만 건을 넘어서며 역사상 최다 ‘좋아요’로 기네스북에도 등재.

-싸이는 빌보드 차트 진입을 기념하며 10월 4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8만여 명의 관중 앞에 무료 콘서트 개최. 공연 모습은 유튜브 등 SNS 채널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됨.

-그러나 공연 이후 싸이는 ‘가수 김장훈과의 불화’ ‘예술인 고희정과의 표절 시비’ ‘애국주의 논란’ 등으로 각종 구설에 오름.

-여성가족부는 싸이의 정규 5집 타이틀곡 ‘라이트 나우(Right Now)’에 내렸던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을 철회해 누리꾼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싸이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디아이 역시 주가가 213% 오르는 등 관련주들의 이상 급등 현상도 나타남.




이종산
사건의 여파를 추적하는 이슈탐정소장. 잡글이라면 다 쓰는 잡문쟁이. 한량 생활에는 염증이 나고 샐러리맨이 되기는 두려운 졸업 유예자로 캠퍼스를 어슬렁대고 있다. rolel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