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cm에 이르는 훤칠한 키에, 얼굴마저 웬만한 연예인 부럽지 않은 훈남이다. 여기에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장 중 하나인 ‘은행’ 입사에 당당히 성공한 신입사원. 이쯤 되면 소위 일류대 학벌에 화려한 자격증으로 무장한 스펙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실 그의 이력서는 면접 때 만났던 경쟁자들에 비해 빈칸이 많았다. 서류상으로는 무엇 하나 뾰족이 내세울 만한 것 없었던 그가 당당히 KB국민은행의 신입사원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취업문 이렇게 뚫었어요] “스펙 먼저 본다는 건 오해…폭넓은 경험과 스토리로 어필”
신현준 KB국민은행 계장
입사 : 2011년 12월 26일
소속 : KB국민은행 목동역지점 외환팀
학력 : 충남대 경영학과 졸업
학점 : 4.12(입사 당시 4.23)
토익 : 900점
자격증 : 유통관리사
해외연수 : 캐나다 방문학생 1년
동아리 : 토스트마스터스 스피치클럽
수상 및 인턴십 경력 : 없음

서울 양천구 목동역 인근에 자리 잡은 KB국민은행 목동역지점. 지역 교통과 상권의 중심지인 목동오거리에 자리해 찾는 고객도 많고 강도 높은 업무량으로 나름 유명한 곳이다. 지난해 12월 26일 입사 후, 신입행원 교육 기간을 거쳐 올 초부터 정식 근무를 시작한 신현준(27) 계장도 이곳 외환팀에서 제 몫을 해내고 있는 ‘막내’다.

올해 보도를 통해 알려진 KB국민은행의 입사 경쟁률은 무려 180 대 1. 한 사람의 은행원을 뽑는 데 180명의 인원이 ‘채용’이라는 혈전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비단 KB뿐만 아니라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은 높은 연봉 수준과 비교적 안정적인 고용, 높은 복지 수준 덕분에 취업준비생들에게는 ‘로망’이나 다름없다.

인기와 경쟁이 치열한 만큼 입사를 준비하는 이들도 고(高)스펙으로 무장한 경우가 많다. 이른바 ‘금융 3종’ 자격증(펀드투자상담사·증권투자상담사·파생상품투자상담사)은 기본이고 국제재무설계사(CFP), 공인회계사(CPA) 자격까지 갖춘 이가 많다.

“자격증요? 금융과 별 관련 없는 ‘유통관리사’ 자격증이 전부예요. 오히려 입사 후에야 펀드투자상담사 자격증을 땄죠. 은행 입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금융 3종은 사실 자격증 자체보다는 ‘뭘 알고 얼마나 공부했는지’를 말해주는 보상의 개념이죠. 금융 상품에 대한 이해가 남들보다 빠를 수는 있겠지만, 다른 기업에 비해 연수 기간이 8~12주로 긴 은행의 특성상 입사 후 교육으로 기본 업무는 얼마든지 가능해요.”



은행은 입사 후 교육이 더 중요

그렇다면 자격증 핸디캡을 메워줄 다른 스펙이 있는 건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신 계장은 예상했다는 듯 “사실 학벌도 썩 좋은 편은 아니다”고 말했다.

대전이 고향인 그는 충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단지 ‘수학을 정말 못했다’는 이유로 고등학교 3학년 때 이과에서 문과로 진로를 바꿨다고. ‘제너럴리스트’를 양성하는 경영학과에 비해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막연히 금융권 입사를 꿈꿨다.

“1학년 1학기 때는 놀 줄 몰라 공부를 좀 했어요. 2학기부터는 신나게 놀았죠. 1학년 마치고 군대를 갔는데, 제대 후에는 자격증보다는 학점 관리에 신경을 더 많이 썼어요.

‘은행은 성실함이 최고이기 때문에 자격증보다 학점이 더 중요하다’는 과 선배의 조언 덕분이었죠. 입사가 결정된 4학년 1학기까지는 평점이 4.23으로 괜찮은 편이었어요. 학점 관리도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지만 내세울 만한 자격증(스펙)이 없으니 초조하기도 했죠.”

내세울 만한 건 토익 점수 900점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학원에서 공부하며 딴 점수는 아니라고. 과에서 방문학생으로 뽑혀 캐나다에서 1년 동안 공부했고, 살기 위해 토익이 아닌 영어 공부를 했던 게 비교적 좋은 점수를 받게 된 배경이다. 캐나다에 가기 전에는 500점대에 그칠 만큼 영어 실력도 썩 좋진 않았다.

평범, 조금 짜게 보면 평균 이하라고도 할 수 있는 그가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은행 입사에 성공한 데는 나름의 비결이 있었다.

“자기만의 장점과 창의력을 살려야 한다”는 게 그가 말하는 취업 성공 노하우. 완전히 똑같은 조건이라면 고스펙이 유리하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는 게 사실이고, 자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KB국민은행의 화두인 ‘글로벌 인재’로 커나가겠다는 걸 강조했어요. 그리고 면접 과정에서도 좋은 점수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취업문 이렇게 뚫었어요] “스펙 먼저 본다는 건 오해…폭넓은 경험과 스토리로 어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답변을 하라

신 계장이 상세히 소개한 KB국민은행 면접은 1차와 2차로 나눠 진행된다. 1차는 인성·세일즈·토론 면접 등이고, 2차는 주로 인성 면접에 치중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세일즈 면접. 주어진 과제는 ‘세차용 타월’ 판매였다.

한 번 써본 적도 없는 물건이었지만 면접관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을 심산으로 ‘홈쇼핑’ 콘셉트를 잡았다. 하지만 “그럼 세차용으로밖에 쓸 수 없겠다”는 면접관의 질문에 ‘아차’ 했다고.

이어진 토론 면접은 분위기를 잘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했다. 얼마나 똑똑하고 논리적인지보다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재미있고 유쾌한 분위기가 이어진 것이 주효했다는 기억이다. 사회자를 잘 만난 것도 큰 행운.

기조발언 후 박수를 유도하고, 토론이 끝난 후에도 면접관까지 다 함께 후련하게 박수를 쳤다. 다른 조에 비해 훨씬 짧은 10분 만에 토론이 끝났지만 면접관과 조원들 모두 부족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은행은 대기업이면서도 지점이 많아 중소기업적인 분위기가 강한 조직이에요. 자연히 조직의 화합, 인성 같은 면을 중요시하죠. 공격적인 토론보다는 협동하는 모습을, 가볍지 않으면서도 즐거운 분위기를 유도하는 게 좋아요.”

면접 전형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인성 면접이었다. 자기소개서 내용 중 ‘국민은행이 개선해야 할 점’을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역시 관련 질문이 나왔다. 신 계장은 두루뭉술한 대답 대신 실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충남대 옆 백마락스타지점의 터치스크린 방식 기계가 불필요하게 큰 것 아니냐”는 지적. “학생 고객이 대부분인 지점답게 작은 번호표 기계만 있어도 이용하기에 무리가 없고 비용도 아낄 수 있다”는 답변이었다.

“VIP 고객이 규정에 위배되는 요청을 할 때 어떻게 대응하겠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미처 예상치 못한 질문에 하나같이 “친절하게 안내(설명)해 드리겠다”고 대답할 때도 신 계장은 달랐다. “규정 때문에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나중에 서류를 구비해오시면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얘기하며 내 명함을 드리겠다”고 대답했다.

남들과 다른 대답은 다음 질문에도 이어졌다. “1억 이상 자산가를 어떻게 유치하겠느냐”는 질문. 역시 ‘친절’이 대세를 이뤘지만 신 계장은 이때도 “한국 사회의 화두는 교육이다. 자산가의 경우 자녀를 외국에 보내는 이가 많은데, 해외 지점이나 글로벌 은행과의 MOU를 통해 저렴한 송금 등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답했다. 면접관과 면접자 모두 만족할 만한 답변이었다.

“2차 면접까지 보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면서 희망이 생기더군요. 기업이 신입사원에게 바라는 건 전문지식보다는 패기와 창의력 그리고 조직과 융화할 수 있는 인성이라고 생각해요. 인성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출발하죠. 당장 스펙에 목숨 걸기보다 좋은 친구와 책을 사귀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신 계장은 금융권 입사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전문지식을 요구한다’는 선입견부터 버리라고 충고한다. 자신도 입사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고.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금융권, 특히 은행은 업무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한 분야만 파지 말고 다양한 공부, 이를테면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것이 자격증 하나 따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스펙만 따지면 제가 어떻게 취업에 성공했겠어요. 자신만의 장점, 능력에 대해 효과적으로 얘기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지레 겁부터 먹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 비전과 목표만 명확히 말한다면 생각보다 높지 않은 문턱이 될 수 있어요.”



“신입사원에게 바라는 건 전문지식보다는 패기와 창의력 그리고 조직과 융화할 수 있는 인성”



KB국민은행 신현준 계장의 면접 秘記

나만의 히든카드를 만들어라. 내 경우에는 뱃살대소였다. 웃음에는 박장대소, 실소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뱃살대소는 배를 두드리며 크게 웃는 웃음을 말한다. 면접자는 물론 면접관들까지 뱃살대소를 하도록 유도하면 해피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 뱃살대소를 써먹은 면접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경우는 없었다.

웃어라. 생각보다 힘든 게 웃는 일이다. 면접 2~3주 전 거울을 보다가 ‘배우를 한다면 악역밖에 못하겠구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부터 하루 10분씩 매일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했다. 썩소가 어느새 환한 웃음으로 바뀌었고 급기야 면접관들에게까지 “인상이 참 좋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글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