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1905년의 을사늑약과 1910년의 경술국치. 이보다 318년 전인 1592년에는 ‘왜구’의 총검에 전 국토와 백성들이 유린된 임진왜란도 있다. 반대로 2002년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을 함께 개최해 성공리에 치러낸 나라 역시 한국과 일본이다.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거리 못지않게 가까운 나라, 그러나 적대와 선린의 관계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는 나라. 이웃 일본과의 애증 관계는 지금도 독도와 과거사 문제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독도, 감정 대립 대신 논리를 키워야죠”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둥지를 틀고 있는 세종대에는 독도종합연구소가 있다. 이곳의 책임을 맡은 이가 호사카 유지 교수. 이 대학 인문과학대학 교양학부와 정책과학대학원 국제지역학 교수이기도 하다.

이름에서 짐작하듯 그는 일본 출신이다. 한국인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순수 일본인이었지만, 지난 2003년 한국으로 귀화한 이후로는 한국인 아내와 함께 한국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양국의 갈등이 폭발하자 언론도 앞 다투어 사태의 의미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호사카 유지 교수 역시 일본 출신의 독도 전문가로 여론의 관심을 어느 때보다 많이 받고 있다. 일본인 출신 귀화자의 한국·독도 사랑은 애증으로 점철된 한일사를 그 자체로 드러내놓은 듯하다. 세종대 새날관에 자리한 그의 연구실에도 독도 관련 서적, 일본의 고지도, 한일 역사 서적들이 책장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독도, 감정 대립 대신 논리를 키워야죠”
약력
1956년 일본 출생
1979년 도쿄대학교 금속공학과 졸업
1995년 고려대학교 정치학 석사
2000년 고려대학교 정치학 박사
2003년 한국으로 귀화
2006년 세종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
2008년 세종대학교 교양학부 부교수 독도종합연구소장(현)


잡앤조이: 학부는 도쿄대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셨습니다. 대학원은 한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셨네요.

호사카 교수: 아버지가 플라스틱 렌즈를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셨어요. 금형이 굉장히 중요했는데, 제가 가업을 잇기를 원하셨죠. 금속공학을 전공한 이유예요. 수학 성적도 좋았고요. 일본에선 수학 잘하면 무조건 이공계라는 인식이 강하죠.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역사나 철학 같은 인문학을 좋아했어요. 대학 들어가서도 전공보다 역사 공부를 많이 했죠. 대학원에서는 정말 원하는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에 전공을 완전히 바꿨어요.


잡앤조이: 특별히 한국(고려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호사카 교수: 역사보다 정외과를 선택한 이유부터 말씀드릴까요. 역사는 과거를 공부하지만, 정치는 과거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안목을 키울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게 바로 정치죠.

재일교포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 한국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컸어요. 결정적인 계기는 한 잡지 기사 때문이었는데,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짧은 내용이었어요. 일본과 한국의 근현대사 공부를 계속 하며 명성황후 시해, 일제강점기 등 어두운 과거를 많이 알게 됐죠.

일본의 유명한 역사학자가 한국 근현대사를 쓴 책 마지막에 “나는 한국어를 못한다. 그래서 아주 깊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는 내용이 있어요. ‘책 번역 수준이 아니라 회화를 통해 한국인의 마음을 직접 알아봐야 진실을 알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마침 1988년에 일본의 한 작가가 ‘민비 암살’이라는 책을 내놓아 베스트셀러가 되었어요. 제 경우엔 1970년대 후반에 이미 이런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졌던 거죠.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독도, 감정 대립 대신 논리를 키워야죠”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일본을 다시 봐

잡앤조이: 명성황후 시해 사실을 알고 충격을 많이 받으신 것 같아요.

호사카 교수: 일본으로 치면 일왕의 부인이 살해된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일본인 입장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죠. 또 ‘일본인이 왜 다른 나라의 국모를 살해할 정도로 잔인했나’ ‘일본은 왜 다른 나라를 침략했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더군요.

‘이 좋은 사람들이 왜 50년, 100년 전에는 이토록 잔인했을까’ 굉장한 의문이었어요. 단순히 과거사에 대한 관심이 아닌, 제 인생이 걸린 근본적 문제가 되었죠. 평생 규명해야 할 숙제가 된 거예요. 일본이라는 나라를 근본적으로 다시 보기 위해 대학원에서 일본의 식민지 정책(조선·대만·만주)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어요. 1910년 이후 일제강점기를 날것 그대로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영향이 현재 저의 토대를 이루었다고 봐요.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독도, 감정 대립 대신 논리를 키워야죠”
잡앤조이: 일본의 식민지 정책 연구에서 독도로 관심을 넓히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호사카 교수: 1990년 후반, 한 대학 강의실에서 질문을 받았어요.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라고 생각하느냐”였죠. 당시에는 이 문제에 대해 잘 몰랐어요. 일본인들은 그때만 해도 90% 이상이 독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으니까요.

그 학생에게 “공부해서 정확하게 답하겠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양쪽이 주장하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죠. 애초부터 민족주의자도 아니었으니까요. 그 후 잠정적으로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결론을 내렸고 2002년 처음으로 논문도 냈죠.

일본의 주장 안에는 숨긴 자료가 너무 많고 사실 왜곡도 많아 정당성이 없어요. 오히려 한국이 내세우는 내용이 합리적이었죠. 오로지 연구를 통해 내린 결론이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어요. 지금도 항상 양쪽의 주장을 공정하게 듣고 판단하려고 하죠.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독도, 감정 대립 대신 논리를 키워야죠”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독도, 감정 대립 대신 논리를 키워야죠”
잡앤조이: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호사카 교수: 센카쿠 열도와 쿠릴 열도 그리고 독도가 일본의 3대 영토 문제예요. 나머지 두 개를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독도를 포기할 수 없죠. 또 하나는 일본의 해양국가 정책입니다. 일본은 과거 육지 식민지 정책을 버리는 대신 1990년대 들어 해양 영토 확장을 국책으로 정했어요.

그 출발이 독도와 센카쿠죠. 기회가 있으면 조그만 암초라도 섬으로 둔갑시켜 배타적 경제수역 200해리를 적용하는 것이 일본입니다. 국토의 7배가 넘는 해양 영토를 보유한 배경이죠.


잡앤조이: 얼마 전 노다 총리의 기자회견 등 국내 정치용이라는 분석도 있는데요.

호사카 교수: 노다 총리가 말한 망언들은 모두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내용이에요. 특히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가 한국 영토 조항에서 제외됐다. 특히 한국은 독도를 조항에 포함시켜 줄 것을 미국에 요구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는 주장은 대표적인 왜곡이죠.



잡앤조이: 우리의 대응에 문제점은 없나요.

호사카 교수: 일본의 억지 주장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지 한국은 처음 나오는 일본의 주장도 언론에서 잘 보도하지 않아요. 논리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죠. 오히려 일본의 논리에 말려들까봐 관심을 아예 끊는 것 같아요. 사정이 이러니 일본이 “말(논리)로는 반박도 못하면서 힘으로만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선전하는 거예요.

논리는 논리로 확실하게 제압해야 해요. ‘우리 땅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냐’는 주장은 소용없어요. 국제법적으로 봐도, ‘한국의 논리도 있지만, 일본의 불법점거 주장도 일리가 있다’는 인식이 있어요. 이걸 푸는 게 우리의 과제죠.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독도, 감정 대립 대신 논리를 키워야죠”
감정적 대응은 일본에 빌미만 제공해

잡앤조이: 우리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는데요.

호사카 교수: 2008년까지는 ‘조용한 외교’ 노선을 택했죠. 2008년 이후에는 ‘차분하고도 단호한 외교’ 정책으로 바뀌었어요. 2008년에 미국 정부는 독도의 주권국가를 한국에서 ‘미지정 국가’로 바꾼 적도 있어요.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일주일 만에 원상 복귀됐지만, 우리가 감정적으로만 대응하는 사이 일본의 논리가 전 세계를 돌아다닌 결과입니다. 미국도 일본의 로비에 그들의 논리를 받아들였던 거죠.



잡앤조이: 그렇다면 일본의 주장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요.

호사카 교수: 간단해요. 일본이 주장하는 논리를 반박하면 되죠. 논리적 반박 없이 나름의 이유만 설명하는 건 소용없어요. 일본의 비판을 철저하게 극복하는 논리와 자료를 제시해야 해요. 일본의 논리가 잘못되었다면 분쟁의 소지 자체가 사라지는 거죠. 논리 없이 행동만 앞서는 모양새는 일본에 빌미만 제공하는 측면이 커요. 예를 들어 한국 국회의원이 러시아를 통해 쿠릴 열도를 방문하는 건 독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정치적 제스처예요.



잡앤조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어떻게 보시나요.

호사카 교수: 이미 2008년부터 단호한 외교 기조로 바뀐 걸 국민들이 잘 몰라요. 작년 12월에도 위안부 문제의 성의 있는 해결을 촉구했죠. 그런데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바로 독도 카드를 꺼냈어요. 우리가 위안부를 언급하면 독도를 분쟁 지역화하겠다는 맞불 작전이죠.

올해 삼일절에도 일본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어요. 그런데 일본은 독도 문제가 걸린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켰죠. 한국에서 열린 핵안보회의에 노다 총리가 일부러 늦게 와선, 그나마 빨리 돌아가며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는 한국의 오해”라는 둥 망언까지 늘어놓았어요. 대통령과 한국을 무시한 거죠. 정부에선 그동안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쓴 후에 대통령 독도 방문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쓴 거라고 봐요.



잡앤조이: 일본의 내부 정치용으로 독도를 활용하는 게 맞나요.

호사카 교수: 노다 총리는 민주당 인사이지만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해요. 일본의 경우 보수라고 하면 ‘미국과 같이 가려는 사람들’ 정도죠. 망언을 일삼는 이시하라 도쿄도지사나 하시모토 오사카시장도 우파에 가까운 보수 인사이지 소위 말하는 극우 ‘행동우익’과는 거리가 있어요.

민주당 정권 차원에선 떨어진 지지율을 보수 발언을 통해 만회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다가오는 총선에서도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발언 등을 십분 이용하려는 거죠. 우리의 경우 이승만 시절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모두 독도 문제에 잘 대응해왔다고 생각해요.

다만 전 정권을 부정하기 위해 정책의 연속성을 자르는 우를 범해선 안 되죠. 언론도 대학 강연에서 나온 원론적 얘기의 앞뒤를 다 자르고 ‘일왕 사과’만을 부각하는 자극적 특종을 자제해야 해요. 일본은 국익 앞에선 계파나 사람의 문제가 끼어들지 않죠. 제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입니다.



잡앤조이:한국인으로 귀화해 새 삶을 사시는 데 망설임은 없으셨나요.

호사카 교수: 한국과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일제강점기에 관한 사료가 굉장히 많은 한국 땅이 매력적이었던 게 사실이에요. 일본에서는 그런 자료에 접근하기 굉장히 어려웠죠. ‘한국에 남아야겠다’고 생각한 이유예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직접적인 계기였죠. 양국의 유대 관계가 상당히 좋아졌고, 축구 경기를 통해 한국의 위대함을 보게 된 거예요. 한일 관계도 더 좋아질 거라 봤죠. 2002년에 귀화 신청을 해 2003년에 정식으로 한국 사람이 됐어요. 하지만 연구하는 자세나 방법은 철저하게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하려고 노력해요. 그렇지 않으면 제 귀화도 아무 의미가 없죠.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독도, 감정 대립 대신 논리를 키워야죠”
잡앤조이: 끝으로 바람직한 한일 관계에 대한 의견 듣고 싶습니다.

호사카 교수: 일본에서도 인터넷 댓글로 비판하는 사람은 있어도 제 논문이나 결과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은 없어요. 연구 결과를 제대로 평가하는 일본인들도 있죠. 한 비밀 모임의 초대로 독도 관련 강연을 한 적도 있어요. 과거사와 독도 문제 등은 한일 관계에 가시 같은 존재예요. 이 가시를 뽑으려면 진실을 직시하는 태도가 필수죠. 한국도 일본을 감정적으로만 적대시할 게 아니라 우호 관계 구축을 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해요. 사람이 사람을 미워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요. 안중근 선생도 마지막에는 ‘동양평화론’을 주창했죠.


글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