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시각 장애인의 고용과 현대인의 정신 건강 모두 사로잡은 ‘봄그늘’
[한경잡앤조이=조수빈 기자/김수지 대학생 기자] ‘자유로운 영혼’, ‘어린 왕자’, ‘좋은’ 특이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은 시각 장애인 마음 보듬사다. ‘봄그늘’에서는 고객이 더 편해지는 요소로 별칭을 사용한다. 봄그늘은 서울대 경영대학 소속의 소셜벤처경영학회인 ‘인액터스 SNU’에서 출발한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 협동조합이다. 시각장애인 마음보듬사 ‘자유로운 영혼(50) 씨는 봄그늘에 대해 “나의 메마른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말했다. 시각 장애인 특화직업이 안마사로 제한된 상황에서 마음보듬 블라인드는 그들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됐다. 시각 장애인의 고용률과 현대인의 스트레스에서 출발한 마음보듬 서비스인액터스는 시각 장애인의 열악한 고용률과 현대인에게 만연한 우울감 및 스트레스를 사회 문제로 인식했다. 시각 장애인은 적합한 직무 부재로 인해 고용률이 정안인(정상 시력을 가진 사람)보다 현저히 낮다. 이들의 특화직업도 ‘헬스 키퍼(안마사)’로 한정돼, 악력이 낮다는 등의 이유로 직업을 갖기가 힘들다.
봄그늘의 대표 이주현(서울대 23) 씨는 “이와 동시에 현대인이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낮은 진입장벽의 정신 건강 서비스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현대인들이 기존 심리 상담에서 느끼는 장벽을 모두 허물고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서비스를 기획하고자 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경제적 부담과 심리적 진입장벽, 신원 노출 등의 우려로 우울감을 경험하는 인구 수에 비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상담을 찾는 이는 적다. 이와 관련해 기존 전문 심리 상담 서비스보다 일상적인 심리 상담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를 기획하게 된 것이다.
봄그늘은 어둠에 익숙하고 청각 민감성이 뛰어난 시각장애인들의 역량을 활용한 마음보듬사를 특화직업으로 개발했다. 또한, 마음보듬사를 통해 진행되는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를 개발해 현대인의 우울감을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창구를 제공하고 있다.
마음보듬사는 상담가가 아니다. 마음보듬사는 블라인드 속 공감 대화를 통해 익명성을 보장하고, 감정 해소를 돕는다. 봄그늘에서 현재 일하고 있는 마음보듬사는 총 7명이다. 마음보듬사는 정식 상담가가 아니기에 ‘상담 자격증’이 필요없다. 대신 봄그늘이 전문 상담사와 자체적으로 제작한 마음보듬 커리큘럼으로 초기교육을 이수하고, 여러 차례 실습을 진행해야 한다. ‘마음보듬’이 되는 과정
철저한 익명성 보장을 내세우고 있기에 봄그늘의 모든 고객은 별칭을 사용한다. 마음보듬사도 마찬가지다.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는 강남점과 서울대입구점에서 진행된다.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하면 스태프를 통해 서비스에 대한 소개 및 사전 안내가 이뤄진 후 정시에 맞춰 블라인드 룸으로 들어간다. 이동 시에는 고객이 마음보듬사를 볼 수 없도록 90도 안경을 착용한다.
자리에 착석한 후 50분간 마음보듬사와의 마음보듬 시간이 이어지고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퇴실하게 된다. 퇴실 후에는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봄그늘 측에서 제공한 마음보듬 엽서에 그날의 마음보듬을 정리하고 기록한다. 자유로운 영혼 씨는 “50분간 손님과 인격 대 인격으로 대화한다”며 “블라인드 상황에서 손님이 타인을 인식할 필요가 없으니 손님이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 일이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영혼 씨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역할극을 골랐다. 그는 “시련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올 때도 있는데, 상대방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나에게 풀기도 한다”며 “그럴 때는 내가 그 상대방이 돼 같이 역할극을 해주는데, 이러한 상황극을 통해 손님은 상처가 치유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설명했다.
익명성이 보장된 탓일까. 자유로운 영혼 씨는 손님들은 각자 자신의 비밀스러운 얘기를 쉽게 털어놓는다고 했다. 블라인드 마음보듬의 예약 건수는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서비스 재구매 의사도 92%에 달한다. 실제로 지난 3월 31일을 기준으로 총 서비스 진행 횟수 532회 중 약 58%가 다 회기 구매로 이뤄졌다. 이에 대해 봄그늘 매니저 유혜수(서울대 23) 씨는 “이런 다 회기 구매율의 증가 사실은 블라인드 마음보듬 서비스의 매력도와 시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요소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과 12월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서비스 중단하게 된다. 이후 ‘전화 마음보듬 서비스’도 런칭해 4월 정식 서비스를 내보냈다. 시각 장애인 마음보듬사에게도 ‘마음보듬’을
자유로운 영혼 씨는 정안인이었다. 그는 별칭을 ‘자유로운 영혼’으로 지은 이유로 ‘자신의 욕구’를 설명했다. 그는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장애인이 되면서 부자유한 것들이 생겼다”며 “시각장애인이 되니까 몸은 자유롭지 못했지만, 마음만큼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짓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1년에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자유로운 영혼 씨는 ‘넓은 마을’이라는 시각장애인 SNS를 통해 봄그늘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안인일 때 상담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판정을 받은 이후는 공부를 포기했다. 그는 “비장애인 중에서도 상담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 많기에 장애인이 상담해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SNS에서 알게 된 ‘봄그늘’은 나에게 엄청난 기회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참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해소할 곳이 필요하고 기댈 곳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봄그늘을 찾아달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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