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교수 갑질에 등 터지는 대학 교직원들
[한경잡앤조이=강홍민 기자 / 양정민 대학생 기자] “저희가 이 과목은 4학년 우선 수강신청 과목이라 넣어 드리기가 조금 곤란해요.”2학기 수강신청이 한창이던 8월, 서울 소재 A 대학 사무실은 전화벨 소리로 가득 찼다. 원하는 과목의 수강신청을 하지 못한 학생들이 학과 사무실로 ‘빌넣’을 하기 위해 건 전화 때문이었다. ‘빌넣’이란 수강신청 시스템을 통해 정상적으로 수강신청을 하지 못한 학생들이 교수나 학과 사무실에 메일을 보내 수강신청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도권 소재 A대학에서 교직원으로 근무하는 이지훈(28·가명)씨도 ‘빌넣’(빌어넣기)전화를 수차례 받은 경험이 있다. 이 씨는 “이 무렵엔 수강신청 업무가 전체 업무의 약 70%쯤 된다”며 “학부생들이 다짜고짜 추가 수강신청을 넣어 달라고 무례하게 전화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빌넣’행위는 각 대학 학칙 상 청탁금지법 저촉 우려로 인해 금지하고 있는 상태다. 연세대의 경우 수강신청 안내에 ‘빌넣’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서강대 역시 자체 초과 수강신청 제도를 이용하지 않은 ‘빌넣’을 교칙 상 인정하지 않고 있다. 청탁금지법(5조 1항 10호) 역시 각급 학교의 입학·성적 등의 업무에 관해 법령을 위반해 처리·조작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학교 졸업 의무 지정 과목, 1년에 개설되는 과목 혹은 대학 내 교수들의 인기 강의 편중 현상으로 인해 매 학기마다 ‘빌넣’ 문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대학의 구조를 해결해야 하는 수강신청 문제로 인해 교직원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다. 특히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수강신청이 되지 않을 경우 교직원에게 폭언, 욕설 등 2차 가해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계약 만료로A 대학을 퇴사한 정명석(32*가명) 씨도 수강신청 기간 학생들에게 폭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정 씨는 “학번과 이름을 말하지 않고 ‘내가 등록금을 300만 원을 넘게 냈는데 당신 때문에 수강신청이 망하면 책임질 거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며 “수강신청이나 졸업처럼 학생들이 직접적인 불이익을 당할 위기에 놓이면 감정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학생에 이어 일부 교수들의 갑질에 피해 극심
교직원들의 피해는 이 뿐만이 아니다. 교수에 갑질을 당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B 대학교의 한 단과대 행정실에서 근로장학생을 했던 주현서(20·가명·여)씨도 교직원이 교수에게 갑질을 당하는 상황을 증언했다.
주 씨는 “올해 1학기에 교수님들이 대면 강의를 하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강의 수강 인원을 늘린 뒤 비대면으로 강의를 진행한 경우가 있었다”며 “이 과정에서 수강생 인원을 재배치하고 강의 분반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등 학과 교직원들이 많이 난감했었다”고 전했다.
A 대학 교직원 출신 정명석 씨는 "교수들이 개인적인 화풀이를 교직원들에게 일삼는 경우도 있다"며 "견디다 못해 그만둔 교직원들도 한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 내에는 여전히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교수들이 있다”며 “교수가 상급자고 교직원이 하급자라는 인식이 여전히 비일비재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김병국 대학노조 정책실장은 “교수와 직원과의 관계에서 직원에게 갑질을 하거나 상호 존중이 되지 않는 등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산업협력단처럼 연구비 등 금전 이동이 있는 부서는 언어폭력이나 갑질 문제가 더욱 심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업무 범위 불명확한 근로계약서
교직원들이 학부생이나 교수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환경은 업무의 내용을 불명확하게 작성하는 근로계약서가 원인이다. 근로계약서에 업무 내용을 포괄적으로 또는 모호하게 작성할 경우 업무 범위를 구체적으로 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교직원들은 대다수가 근로계약서 작성 시 업무의 내용 란에 사무행정담당 등 두루뭉술하게 작성되는 측면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근로계약서를 대학 측에서 모두 작성해서 준다고 언급했다.
김병국 대학노조 정책 실장은 “근로계약서가 포괄적으로 작성되면 업무 범위를 넘어서 다른 일을 시킬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학교가 인사권을 남용해서 근로자가 할 수 없는 일을 시킬 수 있는 악용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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