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창업자의 컨디션이 곧 기업의 색깔인 스타트업

우울증에 빠진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위험한 이유 [강홍민의 HR Insight]
[한경잡앤조이=강홍민 기자] “이건 꼭 좀 써주세요. 제 주변 스타트업 대표들, 사는 게 말이 아닙니다. 정신과 몰래 다니는 사람들도 많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투자도 받고, 사람도 늘어나서 좋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넥스트(next)가 없어요.”

“넥스트가 없다뇨?”

“스타트업은 뭘 자꾸 만들어 내야 하는데···그게 없어요. 근데 사람은 많이 뽑아놨지, 지금 비즈니스 모델로는 얼마 못갈 게 뻔하지... 그래서 자꾸 업계 경력 있는 인물들을 C레벨로 영입하는 거예요. 연봉에 스톡옵션에 새로운 걸 할 수 있는 판까지 깔아주니, 그 사람들만 좋은 거죠. 실패해도 큰 부담 없으니까요. C자 달고 가장 스트레스 받는 사람이 아마 CEO일 거예요.”

“창업자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하죠.”

“근데 문제는 창업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스트레스가 줄어들지 않는데, 해결방법은 잘 모른다는 거예요. 병원을 찾는 대표들이 있긴 하지만 병원 가는 자체를 스트레스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아요.”

코로나19 전부터 창업열기가 증폭되면서 취업과 창업 사이 고민하던 청년들이 창업시장에 대거 뛰어들었다. 뛰어난 인재들이 창업을 선택하면서 그로 인해 세상에 없던 기술과 서비스가 탄생했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으로 국한되었던 취업시장에서 ‘스타트업’이라는 새로운 취업 카테고리가 생겨나기도 했다. 창업 생태계가 활성화 되면서 시장의 긍정적 영향을 가져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단기간 내 빠른 성장에는 꼭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 중 하나가 창업자들의 우울증이다.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10명 중 9명은 창업 대물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엔 그 말이 고깝게 들렸다.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투자를 받고, 뷰(View)가 좋은 사무실에다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만드는 스타트업 대표들을 내심 동경했을지도 모른다. 이 삼 십대의 젊은 대표들이 이룬 성공의 결실이 아마 나에게는 더 또렷이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성공의 뒷면을 조금 들여다보니 그들이 만들려는 새로운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보였다. 객관적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자의 시선이 아니더라도 스타트업 CEO의 자리는 늘 스트레스가 만연한 위치였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새로운 아이템만큼이나 창업자의 마인드와 멘탈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스트레스와 위기에도 견뎌낼 수 있는 그런 멘탈을 가진 창업자인지 말이다. 자칫 창업자의 멘탈이 무너지게 되면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 하더라도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작은 조직일수록 대표의 멘탈은 팀, 그리고 회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틀리면 사면초가에 빠지는 CEO
대게 스타트업을 설립하는 청년 CEO는 사회 경험이 부족하다. 대학 졸업 후 짧은 직장생활을 경험한 뒤 창업에 뛰어들거나 그마저도 경험이 없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사회 경험이 없는 채로 창업자가 되다 보니 모든 것이 새로운 것들이다. 물론 부딪히면서 배우는 건 평생 잊지 못한다는 인생 선배들의 조언도 맞는 말이지만 CEO의 자리에서 실수는 뼈아픈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더군다나 사회에서 받을 스트레스를 CEO라는 위치에서 직면한 이들은 스트레스 내성 자체가 생길 시간이 없다는 점이 더욱 문제점으로 꼽힌다.

올해로 창업 6년차를 맞은 O대표는 하루하루가 전쟁터에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O대표는 대학시절 창업동아리에서 시작한 아이템으로 졸업 후 본격적으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마음 맞는 동기, 후배들과 함께 창업한 그의 출발은 호기로웠다. 정부지원사업을 통해 창업자금과 사무실을 지원받으면서 조금씩 키워나갔다. 창업멤버로는 일손이 부족해 식구도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직원이 늘어나면서부터 의견대립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잦아졌다. 비즈니스 모델도 생각보다 여의치 않았다. 몇 번의 피봇팅을 거치면서 창업멤버들이 한 두 명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의 두통은 아마 그때부터였나 보다.

“언제부턴가 약을 먹어도 두통이 없어지지 않았어요. 그러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더니 약간의 우울증도 생긴 것 같고요. 가끔 전쟁터 가운데 혼자 서 있는 느낌을 받는데, 더 답답한 건 속 시원히 말할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매출이나 투자, 직원 관리 챙겨야할 게 많은데, 그 중 하나라도 삐끗하면 큰일 날 것 같은 느낌이 너무 싫어요.”

창업 3년차 △대표는 창업한 그 해 우울증 신호가 찾아왔다. 처음엔 창업 스트레스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걸 느꼈다. 정신과 상담을 고민했지만 투자 IR피칭과 겹치면서 치료시기를 놓쳐 버렸다. 몇 개월이 지난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대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생각이 들 무렵, 회사는 사업성과나 팀 분위기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 길로 병원을 찾았고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어요. 처음엔 (우울증을)누구한테라도 털어 놓고 싶은데, 소문날까 두려웠어요. 투자를 받을 시기였는데, 투자자 귀에라도 들어가면 그 날로 접어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꾹 참고 있었죠.”
우울증에 빠진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위험한 이유 [강홍민의 HR Insight]
24시간 뇌 사용하는 창업자들, 운동으로 뇌 쉬게 해줘야 해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우울증 약 또는 상담치료를 받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문제는 적극적 치료 및 예방을 하는 이들보다 그냥 방치하고 묵혀두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우울증은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자 생각보다 쉽게 치료 가능하다. 다만, 우울증이 무서운 이유는 많은 이들이 우울증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24시간 머릿속이 복잡한 창업자들에게 우울증은 한번쯤 찾아오는 사춘기로 치부되기도 한다.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창업자들이 일과 삶을 분리하지 못하는 부분을 지적했다.

김지용 원장은 “스타트업 특성상 일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고, 일에 대한 생각과 계획, 그리고 걱정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바쁠수록 복잡한 생각은 잠시 꺼두는 걸 권했다. 김 원장은 “뇌는 컴퓨터와 같아서 무리한 운행은 결국 고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생각이란 건 원래 의지대로 컨트롤이 안 되기 때문에 생각을 끊어주는 도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뇌를 잠시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김 원장은 운동이라고 단언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은 어려운 이 ‘운동’은 잠시 뇌를 비워낼 수 있는 새로운 해결책이라고 김 원장은 설명했다. 그는 “운동은 잠시라도 뇌를 비워낼 수 있고, 동시에 세로토닌과 도파민 등 뇌 건강에 필수인 호르몬들까지 재충전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라며 “남는 시간에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패턴에 규칙적으로 넣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창업자에게 스트레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하지만 뗄 수 없다고 그대로 손님을 방치하면 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찾아올 수 있다. 불청객이 안 오길 기도하는 것보다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해 보인다. 왜냐하면 스타트업일수록 창업자의 컨디션이 곧 회사의 색깔이니까.


강홍민 기자는 패션, 헬스케어, 대중문화, 기업HR, 스타트업 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한 15년차 기자다. 스포츠, 영화, 음악, 방송, 창업 등 다양한 경험을 두루 거친 그는 세상의 수많은 직업들과 트렌디하게 변화하는 기업문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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