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부터 대다수 기업 출·퇴근제에서 유연근무로 근무제도 변경

유연근무 경험한 직장인들, 근무제 회귀에 경험치 못 잊어 ‘이직’ 고려

브라이언 엘리엇 슬랙 퓨처 포럼 경영리더 “유연근무가 조직 생산성 높이고 이직률 감소시켜”


[조직문화가 변하고 있다②] “유연근무가 기업 생산성에 ‘효과적’, 알지만 도입 꺼리는 경영진들…문제는 ‘신뢰’”
코로나19 이후 수많은 변화가 우리의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 중 기업의 조직문화도 변화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기업의 생산성 그리고 인재 확보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조직문화의 변화에 많은 직장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경잡앤조이>에서는 엔데믹 전환으로 달라지는 조직문화, 글로벌 기업이 지향하는 기업문화에 대한 기획을 시리즈로 준비했습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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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잡앤조이=강홍민 기자] 코로나19를 경험한 지 3년이 지났다. 이 시기 동안 코로나19는 우리의 삶 중 많은 것들을 바꿔 놓았다. 평소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마스크 없이는 다닐 수가 없었고, 가족과 주변인들의 결혼식·장례식과 같은 경조사를 참석 하지 못해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조차 없었다.

바이러스는 직장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매일 러시아워 속 출퇴근을 반복했던 이들은 코로나19로 유연근무를 경험하게 됐다. 타의로 주어진 유연한 근무에 처음은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에 차츰 적응해 갔다. 오히려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율 속에 일을 더해야겠다는 무언의 압박을 느낀 직장인들도 있었다. 출근 이후 사무실에서 티타임, 동료들과의 수다, 메신저 등 업무 외적인 루틴이 사라져 오히려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엔데믹으로 접어들면서 기업은 다시 코로나19 이전으로 복귀하려는 모습이다. 바이러스로 인해 유연근무를 경험한 직장인들이 그 경험치를 잊을 수 있을까. 3년이 지난 현재, 일상 속에서 마스크는 점점 사라지지만 우리가 겪은 경험은 오히려 또렷해지고 있다.


업무 집중 시간 더 늘어난 재택근무, 경험치 못 잊는 직장인들
그래픽 디자이너인 직장인 7년차 ㄱ씨 역시 코로나19로 2년 여간 재택근무를 해왔다. ㄱ씨는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시행한다고 했을 때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가장 큰 고민은 PC와 짐이었어요. 사무실에서 쓰는 PC와 집에서 사용하는 게 달랐거든요. 차도 없고 집도 멀어서 회사에서 집까지 PC와 짐을 옮긴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업무 특성상 디자인 방향을 논의하거나 수정사항이 많아서 동료들과 소통하는 일이 많거든요. 과연 재택근무로 이게 가능할까 생각했죠. 내심 며칠 재택근무를 하다가 다시 회사에 나와야겠거니 했어요. 그래서 짐을 옮기는 게 더 걱정이고 귀찮았죠.”

ㄱ씨의 고민과 걱정은 시간이 해결해줬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재택근무가 시행되고 적응기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였다. ㄱ씨는 격주 간격으로 회사를 방문해 업무 미팅을 했다. 유연근무를 하는 동안에도 기존에 하던 것처럼 내·외부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다. 업무 특성상 동료들과의 소통이 잦아 업무에 차질이 있지 않을까라는 ㄱ씨의 걱정은 유능한 스타트업에서 개발한 비대면 플랫폼이 해결해줬다. 코로나19가 미친 업계 상황을 고려하면 오히려 성과 면에서는 우수했다.

동료들과의 소통은 이전보다 줄어든 게 사실이지만 회사에서는 그런 부분을 우려했는지 소소한 이벤트도 진행했다. 이를테면, ‘줌(Zoom) 회식’이었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던 시기에 유행했던 줌 미팅을 통해 ㄱ씨는 평소 보여주지 않았던, 그리고 보지 못했던 동료들의 일상과 마주했다.
[조직문화가 변하고 있다①] 출근 고집하는 CEO vs 떠나는 인재들···기업 성패 좌우하는 '조직문화'
ㄱ씨는 해가 바뀌면서 유연근무의 노하우를 쌓아갔다. 이를테면,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스타일이었던 ㄱ씨는 오전 7시에서 7시 30분 즈음 경제 방송에 주파수를 맞춰 놓은 라디오를 켜는 것부터가 업무의 시작이었다. 업무메일을 확인하고, 급한 요청부터 정리해 일을 하기 시작하면 어느덧 오후 2시 가까이 된다. 다이어트가 일상인 ㄱ씨는 간단히 요기를 하곤 집 근처 커피숍에 들러 테이크아웃을 해 온다. 오후 3시 30분부터 약 3시간을 업무 집중 타임으로 정해둔 ㄱ씨는 이후 밤 10시까지 저녁식사와 필라테스로 하루를 마무리 한다. 자기 전 오늘 했던 일, 내일 할 일을 간단히 체크 후 잠이 드는 이 일상의 루틴은 어느새 ㄱ씨의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우선 출·퇴근으로 하루 2시간 이상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했다. 점심시간을 비롯한 티타임 등 스스로 원하는 시간과 메뉴를 결정할 수 있는 결정권이 주어졌다. 또 당장 급하지 않은, 꼭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회의는 없었다. “ㄱ씨 잠깐만!”으로 시작돼 연설과 물음으로 30분 이상 간의의자에 앉아 있는 상사의 요청도 사라졌다.

그 무렵, 바이러스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TV에선 재택근무를 폐지하고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바삐 전했다. ㄱ씨의 회사에서도 재택근무를 폐지하고, 3년 전 바이러스가 없던 시절의 근무로 돌아간다는 메일을 전직원에게 전송했다. ㄱ씨는 잠깐의 고민 끝에 근무자가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도 기업으로 이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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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 vs 출·퇴근, 기업-근로자 간 뜨거운 감자···승자는?
엔데믹 이후 재택근무를 동반한 유연근무제, 그리고 출·퇴근제도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특히 IT기업에선 역량 집중을 위해 재택근무 폐지에 나서는 가운데, 근로자들은 재택근무가 더 효율적이라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카카오의 경우 재택근무 폐지로 미비하던 노조 가입률이 월등히 뛰어 과반을 넘었고, 2020년부터 자율원격근무제도를 실시한 야놀자 역시 올 상반기 내 폐지된다는 사측의 입장에 임직원들의 반발, 탈출러시가 시작됐다.

카카오, 야놀자처럼 재택근무를 없애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전사 유연 근무제도를 실시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배달의 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직원 개개인이 업무 계획과 조건 등에 따라 자유롭게 업무시간을 분배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올해 첫 도입한 ‘근무지 자율 선택제’는 재택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자율적으로 근무지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다. ‘워케이션(Work+Vacation의 합성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이 제도는 업무를 실시하는 데 있어 공간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아한형제들을 비롯한 유수의 스타트업에서도 엔데믹으로 접어들면서 재택+유연근무를 선언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유연근무제도가 향후 채용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 이후 직장인들은 이직과 퇴사에 관심이 증폭되면서, 연봉만큼이나 근무환경을 중시하는 풍토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데이터로 증명된 ‘유연근무’의 장점···생산력 높이고 이직률 낮춘다
기업용 메시징 플랫폼 슬랙(Slack)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유연근무는 기업 문화를 조성하고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했다. 이 설문조사는 미국, 호주,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의 1만 명 이상의 사무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실시했는데, 업무시간의 유연성을 가진 직원은 그렇지 않은 직원 대비 생산성이 38%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원격 근무자나 하이브리드 근무자와 같이 업무 공간에 대한 물리적 유연성을 가진 직원은 사무실 근무자 대비 8% 높은 생산성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많은 기업에서 유연근무를 폐지하고 코로나19 이전 출·퇴근 제도로 회귀하려는 이유도 있다. 한 투자사에 재직 중인 ㄴ씨는 “다년간의 재택·유연근무로 직원들이 일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고, 코로나19로 특수를 누린 기업의 경우 엔데믹으로 접어들면서 매출 하락을 보이는 등 직원들의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직문화가 변하고 있다①] 출근 고집하는 CEO vs 떠나는 인재들···기업 성패 좌우하는 '조직문화'
하지만 경영진들의 걱정과는 달리 유연근무가 높은 생산성을 가져다준다는 연구결과는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슬랙의 조사에 따르면, 업무시간의 유연성을 가진 근로자들은 그렇지 못한 근로자 대비 39% 높은 생산성을 보였으며, 64% 높은 업무 집중력을 보였다. 여기에 업무시간의 유연성이 부족한 경우, 직원 유지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근무자들의 이직이 잦아진다는 결과다. 시간적인 유연근무가 어려운 직원들의 경우, 다음 해 이직할 가능성이 2.5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이언 엘리엇 슬랙 퓨처 포럼 경영리더는 “경제 불확실성과 팬데믹 이전으로 회귀하려는 추세 속에서 기업 리더들이 팀에 가장 잘 맞는 방식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며 “이번 조사결과는 유연성이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고 이직률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기업문화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일상 업무에서 직원들에게 유연성에 대한 선택권을 제공하고, 대면 모임 시에는 그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은 직원들을 연결시키고 신뢰를 쌓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근무제도 역시 코로나19가 불러 온 수많은 변화 중 하나다. 대다수의 기업 CEO들은 코로나19로 계획에 없던 유연근무를 선택했다. 물론 그 기간 동안 성과를 낸 기업이 있는가 하면 피해를 입은 기업들도 존재한다. 그 중 많은 기업들은 매출 하락, 임직원들의 기강 바로잡기를 내세우며 2020년 이전으로 회귀하려한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겪은 ‘경험’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그 경험을 뒤로한 채 기업의 입장만을 급히 통보한 것이 현재 많은 기업에서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모두가 경험한 경험치를 빼고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바이러스보다 더 큰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인공지능(AI)이 발전했다지만 아직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khm@hankyung.com
(사진=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