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보조사에 의존해 이동할 수밖에 없어
-대중교통 이용 시 차별받은 적 많아
-‘힐링’ 여행을 가도 힐링하지 못하는 경우 대다수

[한경잡앤조이=이진호 기자/이은세 대학생기자] 여행권. ‘여행할 권리’는 인간이 가진 권리 중 가장 고귀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대다수는 시각장애인들의 여행권을 존중하지 않는다. 아니,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눈도 안 보이는데, 여행을 갈 수 있겠어?’라는 잘못된 편견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들이 말하는 여행권이란 무엇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경기도 안양시 장애인 지원센터를 찾아갔다.

용기 “저희는요, 서로 다 다른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나는 고도 근시에요.”
용운 “난 색소 망막증을 앓고 있어요.”
예선 “첫 돌 지나고부터 눈에 이상이 생기더니 결국엔 앞이 잘 안 보이게 됐어요.”
종희 “교통사고로 녹내장을 앓게 됐고 망막 박리라는 질환도 생겼어요.”
규종 “나도 사고를 당했어요. 머리 수술을 했었는데, 그때부터 한쪽 눈이 안 보이게 된 거죠.”
영옥 “뇌막염을 앓다가 시신경이 망가져 결국 시력을 잃게 됐어요.”
경기도 안양시 장애인 지원센터에 모인 용기 씨, 용운 씨, 예선 씨, 종희 씨, 규종 씨, 영옥 씨. 한혜빈 씨 제공
경기도 안양시 장애인 지원센터에 모인 용기 씨, 용운 씨, 예선 씨, 종희 씨, 규종 씨, 영옥 씨. 한혜빈 씨 제공
김용기 씨, 장용운 씨, 박예선 씨, 한종희 씨, 황규종 씨, 정영옥 씨가 경기도 안양시 장애인 지원센터에 모여 앉아 자신들이 앓고 있는 병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경기도 안마사협회에 소속돼 동안구 경로당에서 안마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중 종희 씨와 규종 씨는 경기도 안마사협회에 소속돼 동안구 경로당에서 안마사로 근무하고 있다.

혼자 이동하고 싶어도 활동 보조사 없이는 힘들어
용기 “우리가 제일 불편한 건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거예요. 어딜 가고 싶을 땐 항상 생활 이동지원센터나 활동 지원사의 힘을 빌려야 해요. 혼자 길을 걷다 보면 볼라드에 무릎을 박을 때가 많아요. 어찌나 다쳤는지, 이젠 익숙해졌어요.”

이동할 때 가장 힘든 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용기 씨가 해준 이야기. 사실 활동 지원사 없이는 모든 순간이 고비인 이들에겐 놀라운 얘기도 아니다. 길가에 설치된 자동차 진입 억제용 말뚝(볼라드)과 규정에 맞게 설치되지 않은 점자 블록은 시각장애인의 보행권을 침해하고 있다.

규종 “돌에 걸려서 넘어질 때도 있죠. 그리고 점자 블록이 엉뚱하게 설치돼 있어서 쭉 걸어서 가면 될 길을 삥삥 돌아간 적도 있어요.”

영옥 “전동 킥보드가 점자 블록 위에 주차된 경우도 많아요. 거기에 걸려 넘어질 때도 있어요.”

용운 “다들 그래? 난 활동 보조사가 잘만 해주면 그렇게 불편한 건 없었던 거 같아. (웃음)”

대중교통 이용 시에도 차별받은 적 많아
용기 “예전에 조금이라도 더 보였을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곤 했는데, 정류장에 온 버스 번호 확인도 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교통카드를 찍어야 하잖아요. 교통카드 단말기 위치가 버스마다 달라서 매번 더듬거렸던 거 같아요. 지하철도 활동 보조사가 없으면 거의 못 타죠.”

예선 “맞아요. 마을버스를 타면 항상 버벅거리면서 카드를 찍어요. 그럴 때마다 버스 기사가 뒷사람도 있는데 왜 그러냐면서 언성을 높이더라고요.”

영옥 “난 (대중교통 내)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기둥이 있는 게 불편했어요. 굉장히 많이 부딪히거든요.”

이처럼 이동 자체가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에게 ‘여행’은 무엇일까. 이들이 말하는 여행은 그야말로 전도다난(前途多難)이었다.

여행을 가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는 게 현실…
용운 “여행 가본 적 당연히 있죠. 그런데 여행지마다 (시각장애인이 이용하기엔) 화장실이 너무 불편해서 힘들더라고.”

영옥 “여행지에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도우미들 손에 잡혀서 끌려다니는 거지 뭐. 어차피 안 보이는데 뭣 하러 여행가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러나 이들은 “우리는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가고 싶은 여행지를 생각해둔다”고 전했다.

시각장애인에게도 존중받아 마땅한 ‘여행권’이 있다
용기 “여행하니까 제주도 가고 싶네요. 시각장애인들도 제주도 좋은 거 다 알아요. (웃음)”

용운 “난 스위스요. 힐링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마음껏 즐기다가 오고 싶어요.”

자신이 가고 싶은 여행지와 그 이유를 말하고 나서 용기 씨와 용운 씨의 입꼬리는 귀에 걸리듯 한껏 올라가 있었다.

그렇다. 시각장애인들도 남들처럼 힐링하고 싶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여행지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 한다. 활동 보조사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여행을 즐기고 싶은 주체’로써 말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시각장애인은 당연히 여행을 못 가겠지’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이들의 ‘여행권’을 무시하고 있진 않았을까. 이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시각장애인의 여행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명확히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jinho23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