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스즈메의 ‘마법의 열쇠’가 주어진다면? 영화를 현실로 만드는 팬덤 이코노미

동일본 대지진 그 후 12년,
영화를 통해 잊혀진 아픔을 치유하다
아픔을 IP로 승화시키는 日 [영화로 풀어보는 스타트업 이야기]


2011년 3월 11일, 당시 뉴스를 통해 접했던 동일본 대지진의 모습은 큰 충격이었다. 지진 발생 이후,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들어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장면의 충격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자연 재해의 무서움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했던 장면으로 전 세계인들이 공포와 안타까움을 느꼈던 장면이다.

아직도 생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전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큰 규모의 지진이자, 인류 역사상 자연재해에 따른 재산 피해액이 가장 큰 참사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문제까지. 아직도 일본 사회는 동일본 대지진의 흔적이 남아있다.

뼈 아픈 과거일수록 잊혀지지 않게 기억해야 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너의 이름은.>이라는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익숙하다.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으로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이후로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자연 재해나 인구소멸로 폐허가 되는 장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왜 아무도 애도를 하지 않는가’라는 문제 의식을 가졌다고 한다. 아직도 그 상처가 남아있는 동일본 대지진이지만, 일본 인구의 1/3만이 동일본 대지진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이런 관점에서 주인공 스즈메를 중심으로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는 로드무비 형식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되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지역들은 실제로 재난이 발생했던 곳이다. 1일차에 방문한 규슈 미야자키현에서는 2016년에 구마모토 지진이 발생했으며, 2일차 시코쿠 에히메현에서는 산사태(2020), 3일차에 방문한 고베시에서는 효고현 남부 지진이 발생했다. 4일차 방문지인 도쿄에서는 관동 대지진(1923)이, 마지막 5일차 방문지인 이와테현에서는 2011년 동일본 대진이 발생했다.
아픔을 IP로 승화시키는 日 [영화로 풀어보는 스타트업 이야기]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을 기억한다는 취지에 맞춰, 일본 개봉일 역시 11일로 맞췄고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개봉은 2023년 3월로 반영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시대적 아픔을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영화 흥행의 관점에서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2022년 11월 11일 일본 개봉 이후, 전 세계적으로 1억 2,39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2022년 일본에서 네 번째로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이자, 73회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경쟁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만 누적 553만명의 관람객이 관람했으니, 세계적으로 얼마나 큰 인기를 끌었는지 체감할 수 있다.

이번에도 통했다! ‘신카이 마코토’ 팬덤의 힘
앞서 소개한 것처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가장 큰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감독이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 등 세계적으로 큰 흥행 성과를 거두며, 감독에 대한 팬덤이 형성되어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는 일반 관객들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은 믿고 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내외에서 보유한 두터운 팬층이 영화 흥행을 가속화 하는 동력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신카이 마코토 감독
인기 IP와 팬덤의 결합으로 새로운 기회가 창출되고 있는 IP굿즈 시장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인기 IP와 팬덤이 결합하면서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단순히 영화 콘텐츠 뿐만 아니라, 감독 / 배우 / 캐릭터 등 IP와 관련된 모든 것에 관심을 보이는 ‘팬덤 이코노미’가 성장하게 된 것이다.

팬덤 이코노미(Fandom Economy)는 팬덤이 주도하여 이끌어가는 비즈니스 시장을 의미한다. 최근 데뷔 10주년을 맞이한 방탄소년단(BTS)의 팬클럽 ‘아미’가 적극적인 활동으로 방탄소년단을 세계적인 가수로 성장시킨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팬덤 이코노미의 영향이 가장 큰 분야가 바로 IP 굿즈 시장이다. 인기 가수나 콘텐츠의 스토리나 고유의 가치(Value)가 담긴 한정판 굿즈는 발매와 동시에 매진되는 사례는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할 수 있다.

국내외 MD 굿즈 시장의 규모는 꾸준히 확대 중이며, 2021년 한국 콘텐츠 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IP 커머스를 포괄하는 ‘캐릭터, 라이선스 부문’의 글로벌 시장 규모는 393조원에 달한다. K-POP의 인기와 팬덤 문화가 결합한 ‘비공식 굿즈 시장*’의 규모 역시 8,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하니 성장의 기회를 엿보는 스타트업이라면 반드시 도전해야 하는 분야다.

(* 비공식 굿즈 : 굿즈 제작과 공유, 유통이 하나의 팬덤 문화로 발전하면서 팬들이 직접 제작해 판매하는 굿즈를 지칭)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듯, 와디즈와 텀블벅 등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는 인기 IP를 기반으로 한 굿즈 펀딩 성공 사례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출처 : 와디즈)
(출처 : 와디즈)
영화를 통해 느낀 재미와 감동을 IP 굿즈를 통해 실물로 간직하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주인공 스즈메는 우연히 재난을 부르는 문을 열게 된다. 마치 운명처럼 무언가에 이끌리듯 문을 열게 되었으나, ‘문을 열었던 사람’으로서 전국 각지의 재난의 문을 닫아간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결자해지’라는 사자성어가 문득 떠올랐다. 맺은 자가 그것을 푸는 것이고, 문제를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운명처럼 재난의 문을 열었던 스즈메가 철저한 문단속으로 재난의 문을 닫아냈다.
아픔을 IP로 승화시키는 日 [영화로 풀어보는 스타트업 이야기]
전국을 떠돌아 다니며 수많은 난관을 넘어야 했지만, 눈 앞의 문제를 직면하고 하나씩 해결해 가면서 스스로의 아픈 과거를 치유하게 되었다.

스즈메가 영화 속에서 사용했던 ‘마법의 열쇠’는 굿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영화를 통해 아픔을 치유 받고, 감동을 받았던 관람객들도 ‘마법의 열쇠’를 하나씩 가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우리에게도 마법의 열쇠가 필요한 이유는 2023년을 살아가는 우리도 지진처럼 불현듯 찾아오는 삶의 어려움들을 극복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스즈메가 재난의 문을 닫을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문을 열었던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2023년의 상반기를 마무리하는 6월, 새로운 하반기의 문을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독자분들에게도 ‘마법의 열쇠’가 주어지길 바란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