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교직 만족도에 교직 이탈 해마다 심화
-악성 학부모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에 신음하는 교사들
-교육 위기 돌파 위해 제도 마련 필요해
-일부 학부모 단체, 교사의 ‘아동 학대 가능성’ 우려도

[한경잡앤조이=이진호 기자/염준호 대학생기자] “교대에 다닐 때에는 제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나는 다르겠지, 나는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죠.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다면 교대에 가겠다고 결심했던 저를 말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푼 꿈을 안고 올해 3월 경남 한 초등학교에 신규 발령받은 4학년 담임교사 A(27) 씨의 말이다. A씨는 발령 이후 한 학부모의 지속적인 악성 민원에 시달려 왔다. 시작은 짧은 전화 상담부터였지만 점차 정도가 심해졌다. 상담은 점점 길어지더니 급기야 해당 학부모는 새벽 6시, 밤 11시 반에도 장문의 문자를 보내며 끊임없이 전화 상담을 요구했다.

상담 내용도 거칠어졌다. 상담 중 학생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자 해당 학부모는 급기야 “네가 결혼도 안 하고,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 부모의 마음을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같은 학교 교감에게 “A씨가 아직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것 같다”며, “부모 마음을 알아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이어진 상담 전화와 각종 민원에 처리하지 못한 업무는 쌓여만 갔고, A씨는 화장실 갈 시간마저 줄여가며 일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결국 A씨는 지난 2일 ‘공황 발작’ 증세를 보여 응급실로 이송됐고, 현재 병원에서 휴식 중이다.
“교대에 가겠다고 결심했던 저를 말리고 싶어요”
교사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지난달 14일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2018년도부터 초·중·고 모두 명예퇴직 교원 수가 정년퇴직 교원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 10%에 불과했던 명예퇴직 비율이 2018년 이후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는 교원 전체 퇴직자 1만1천900명 중 절반 이상(55.4%)이 명예 퇴직자일 정도로 비율은 점점 벌어지는 모양새다.

교사들의 퇴직은 젊은 층에서 더 두드러진다. 지난달 25일 권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1년간 근속연수 5년 미만의 전국 초, 중, 고 퇴직 교원은 589명으로 지난해 303명에 비해 94.4% 늘었다.

아직 학교를 떠나지 않았지만 이직을 생각하는 교사도 10명 중 9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스승의 날을 맞아 조합 교원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최근 1년간 이직 또는 사직에 대해 고민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11,377명의 교원 중 96%가 '고민한 적 있다'고 답했고, 이들 중 25.93%는 '거의 매일 이직을 고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지역 초등교사 김솔(30) 씨는 “교사들끼리 이직이나 퇴직을 늘 이야기한다”며 “이직하신 선생님들도 많이 계시고, 마음의 상처를 입고 퇴직하신 분들도 봤다”고 말했다. 9년차 서울 지역 초등교사 B(32)씨는 “초등교사의 경우 교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곧바로 다른 직종으로의 이직이 쉽지 않다”며 “주변 젊은 교사들은 로스쿨이나 약대 등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러 나가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신고와 학부모 민원에 신음하는 교사들
현장 교사들은 퇴직자 증가 추세에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A씨의 사례와 같은 악성 학부모 민원과 증가한 아동학대 신고로 인한 ‘교직 만족도 하락’이 결정적이라고 말한다.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는 충청 지역 초등교사 C(40)씨는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며 민원 관련 스트레스가 크고,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사례를 접하다 보면 교사라는 직업에 회의감이 드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의 직업 만족도를 “10점 만점에 2점 내외”라고 말했다.

이어 C씨는 “현장에서는 정말 수많은 아동학대 관련 고소가 이루어지지만 대부분 불기소 처분을 받는다”며 “일례로 최근에는 5년차 초등교사가 아동 정서학대로 고소된 사례가 있는데, 그 이유가 교사가 알림장 검사를 안 해 주었고, 학부모 문자에 답장하지 않아 차별당했다고 느꼈다는 이유에서였다”며 ”고소당한 교사 대부분이 경찰서에 한 번도 가본 적 없이 살아오신 분들이기에 법적 절차를 밟는다는 자체가 공포”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공포 심리는 지표에서도 잘 드러난다. 작년 10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교사 6,24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자신도 아동학대로 의심받아 신고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사가 92.9%에 달하고, ‘실제 아동학대 신고, 민원을 받거나 그런 동료 교사를 본 적이 있다’는 응답은 61.7%에 달했다. 그러나 이들 응답자 중 높은 유죄가 확정됐다는 응답은 1.5%에 불과했다. 실제 96.7%의 교사들은 ‘신고 처리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오해로 인한 신고가 있다’고 응답했다.

교사들은 아동학대 소지에 하나도 걸리지 않으려면 어떤 교육 활동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A씨는 “나도 하루에도 벌써 몇 번이나 아동학대를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교육 지도 하나하나에도 불안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편으로 ‘고소당하면 진짜 그만두고 이직을 할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른 반 선생님이 뭐라 하지 않도록 해주세요’와 같은 민원을 받으면 힘이 쭉 빠진다”며 “아동 인권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저런 민원을 받을 때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든다”고 허탈해했다.
“교대에 가겠다고 결심했던 저를 말리고 싶어요”
교육 위기 돌파하기 위해 제도 마련 필요해
기자가 만난 현직 교사들은 하나같이 제도 마련을 바라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교사 한 명이 짊어진 부담이 너무 많기에 제도적으로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거다.

B 교사는 “현재는 전적으로 교사 개인의 카리스마에만 의존하고 있는 교육체계”라며 “카리스마가 없는 교사들도 학급을 안정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근무하는 7년차 교사 D씨는 “지금 상황에서는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학생이 교사를 때리는 상황에서도 맞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고 한탄했다. 이어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교사는 더욱 기피 직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상황에 지난달 11일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해 ‘아동학대 면책권’을 부여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개정안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복지법상 금지 행위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 신설이 골자다.

학부모 단체, 아동학대 악용 가능성 우려도
그러나 일부 시민단체는 이 개정안이 체벌 등 교사의 아동학대 악용 가능성의 여지가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23일 전국혁신학부모네트워크,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등 일부 학부모 단체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동복지법은 아동을 위한 최소한의 보루”라며 “교사의 권위를 위해 아동을 보호하는 법안의 예외를 둘 수 없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아동학대를 조장하는 교원 면책법”이라고 주장했다.

jinho23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