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제도와 시설
해외에는 장애인의 문화 향유를 돕는 접근성 매니저가 보편화되어 있어
”물리적 접근성 뿐 아니라 인식의 접근성도 중요”
그는 "영화를 보려고 장애인 석을 예매하고 갔는데, 막상 영화관에 도착하니 휠체어로 상영관까지 접근을 할 수가 없어 씁쓸하게 환불하고 돌아갔던 경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15평 이상의 건물에는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와 같은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법적 규제가 있지만, 이런 규제는 새로 지어지는 문화 시설에만 적용된다. 아르코미술관과 같은 기존의 문화 시설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결국 기존의 문화 시설에서 진행되는 공연과 전시에서 장애인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위유진 씨는 시설에 대한 접근성 뿐 아니라 예매 과정에서도 장애인은 일반인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강조했다.
위 씨는 "장애인 이용객은 온라인 예매가 잘 안되고 보통 전화로 예매를 해야 한다. 그런데 저처럼 난청이 있거나 언어장애가 있으신 분들은 예매 자체가 안 된다"라고 말하며 문화생활 접근성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반면 미국의 장애인법(ADA)에는 구체적인 ‘장애인석 티켓 판매 지침’이 있다. 해당 지침에는 장애인석 티켓을 다른 티켓과 동일한 방식 및 조건으로 판매할 것, 장애인석의 위치, 시야, 가격 등의 정보를 충분히 제공할 것, 모든 공연장, 티켓 배급업체, 제3자 티켓 판매업체는 직원에게 ‘장애인석 안내 방법’을 교육할 것과 같은 내용이 있다.
국내 대부분의 시설은 장애인의 시선이 아닌 일반인들의 시선에서 만들어져있다. 그러다보니 장애인의 ‘불편’, 나아가 장애인의 ‘존재’ 역시 비가시화된다. 장애인의 ‘존재’를 포용하지 않는 환경은 ‘불편’을 낳고, 이 ‘불편’은 다시 장벽을 만드는 악순환이다.
나경민 무의 사무국장은 “한국은 물리적으로 보이는 장벽뿐만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장벽 역시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은 오랫동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과 문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장애인의 문화 향유 접근성 문제는 본질적으로 인식의 접근성 문제로 수렴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분리되기 시작했던 교육 환경에서 벗어나, 유아 교육, 초등 교육부터 장애인과 어울릴 수 있는 사회·문화·교육, 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장애인의 권리 당연한 것이 돼야 합니다”
김미정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나경민 무의 사무국장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된 워크숍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당시 미술관이 근처의 혜화역에서 장애인 단체의 이동권 관련 시위가 진행됐어요. 그분들이 장애인들의 이동권과 생존과 관련된 얘기를 하는 걸 보고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전시로 풀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단순히 장애인 작가의 작품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편하게 미술관을 이용할 수 있는 장치나 제도적인 개선에 대해 생각해 봤고 그러다 무의를 만나워크숍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워크숍을 통해 미술관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미술관과 협동조합 무의가 함께 직접 혜화역에서 휠체어를 타고 혜화역에서 아르코미술관의 전시까지 이동하며 그들의 눈으로 바라봤는데, 문제가 많더라고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에 경사로 같은 물리적인 부분들을 추가로 설치하고, 엘레베이터 접근성을 높이고, 전시장에 가벽을 없애는 등 휠체어가 회전하고 이동하기 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국내 문화 시설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잘 마련돼 있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제도나 시설은 보통 비장애인들이 결정하고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장애인 석이 있는지 여부만 판단하고 법적 규제만 채우려고 하다 보니 '그들이 실제로 그 자리까지 접근이 가능한 지'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에요. 최근에는 한 야구장에서 예매 과정에 휠체어 석을 선택하는 옵션이 없다는 제보가 들어와서 저희가 직접 구단해 연락해 시정하기도 했어요." 해외의 경우에는 장애인을 위한 제도가 잘 마련돼 있나요?
"우선 해외의 문화 시설과의 가장 큰 차이는 '접근성 매니저'라는 직책의 존재 여부라고 생각해요. 장애인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을 보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접근성 매니저가 1:1로 마크해서 안내해 휠체어가 이용할 수 있는 길로 안내하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모나리자 전시 공간 같은 곳에도 휠체어를 직접 끌고 가 보여주며 장애인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많이 힘쓰는 걸 볼 수 있어요. 하지만 한국에는 접근성 매니저라는 직책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장애인들은 접근성 매니저 없이는 문화생활을 즐기기 힘든 게 현실이고요."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는 소수자를 위해 공연 업계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리적 접근성 개선도 중요한 문제지만,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며 어울리는 인식의 접근성이 개선되는 것이 가장 우선시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해외에서는 학교 재학 때부터 장애인과 한 반에서 함께 생활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한국 교육은 '개별반', '특수반'을 장애인을 분리하기 때문에 어울리기 힘들고, 결국 주요 시설의 접근성 같은 문제에 장애인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것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인식의 개선이 우선시 되면 그들의 권리도 당연한 것이 되고, 공연 업계도 소수자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시설 및 프로그램을 리빌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이정빈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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