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여성의 관점을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 속 진정한 ‘여성영화인’들의 이야기

2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포스터(siwff 홈페이지)
2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포스터(siwff 홈페이지)
“여성영화제는 여성의 정체성과 주체성에 더욱 집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축제죠.”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3년 한국 영화 성인지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개봉한 한국 영화 183편 중 여성 비율은 감독 49명(22.8%), 제작자 77명(24.8%)으로 나타났다.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 상업 영화 35편만을 살펴보면, 여성 감독은 ‘교섭’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2.7%)이 유일했다.

영화평론가인 유지나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는 2018년 “제작, 연출, 촬영 직군에서 남성은 각각 63.5%, 67.7%, 91.3%를 점유하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유 교수에게 약 6년이 지난 현재의 실태를 물어봤다. 그는 “현재 상황도 2018년의 통계와 비슷하며 여성의 비중은 여전히 낮은 상태다”라고 답했다.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국내 활동 중인 여성 영화인이 적은 상황에서 여성 감독이 주인공이 되는 곳,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지난달 28일 성황리에 마쳤다.

올해로 26회째를 맞이한 영화제는 1997년부터 여성영화인의 발굴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여성영화인들의 만남, 한국 여성 감독의 세계 시장 진출 지원을 위해 이어져 오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캐치프레이즈는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다. 변재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조직위원장은 “1회 개막작이 1955년 제작된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인 박남옥 감독의 작품이었는데 그 이후 40년 이상이 흐른 후에도 여성 감독은 7명에 불과했다”며 “이처럼 여성의 눈으로 영화를 제작하기 어려운 현실을 담은 문구다”라고 말했다.

또 올해 영화제의 슬로건은 ‘웃음의 쓸모’로, 웃음이 지닌 다양한 힘에 주목하고 끈질기게 걸어 나가는 모두를 응원하는 지향점을 담았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단순히 유쾌한 박장대소뿐만 아니라 서늘한 냉소, 슬며시 짓는 미소, 헛웃음과 너털웃음 등 모든 종류의 웃음과 함께 한다.
여성 비율 30% 미만인 영화계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담는 곳
유 교수는 “여성영화제는 여성의 정체성과 주체성에 더욱 집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여성감독네트워크는 “감독으로서 새 작품을 만들면 가장 먼저 공개하고 싶은 곳”이라며 “영화를 보며 자극받고 새로운 작업을 상상하는 곳이기도 하다”라고 전했다.

황 프로그래머는 “상영 작품 수와 상금 등 행사 규모로 봤을 때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여성영화제로 평가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영화제로서 다각도에서 소수성과 다양성을 이해하고 젠더 감수성과 성평등 가치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왔다”며 “여성영화인이 영화를 제작하고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돕는 영화제가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스페셜 토크를 진행하는 유혜민, 부지영 감독의 모습이다. 사진=여성감독네트워크 제공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스페셜 토크를 진행하는 유혜민, 부지영 감독의 모습이다. 사진=여성감독네트워크 제공
‘여성 감독의 버팀목과 연결망이 되는 것을 지향하며 만든 조직’
유혜민 영화감독·<카트> 부지영 영화감독
매년 여성영화인의 장이 열리지만, 영화제 밖에서 모여 함께 정보를 나누고 서로를 지지하며 연결하는 여성 감독들도 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여성감독네트워크(WDN)의 유혜민 감독과 부지영 감독을 만났다.

여성감독네트워크는 어떤 단체인지 궁금하다
“여성감독네트워크는 여성 감독들의 작업에 버팀목과 연결망이 되는 것을 지향하며 만든 조직이다. 극, 실험,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 장르와 장/단편에 구분 없이 영화를 만드는 여성 감독이라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매년 교육기관, 영화제 등에서 훌륭한 여성 감독들이 많이 배출되지만, 그들의 활동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감독이라는 직업은 빠르게 결과물이 도출하긴 어렵기도 하고, 여성 감독들이 산업의 선택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서로 지치지 않고 작업할 수 있도록 서로 도우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웃음)”

여성감독네트워크는 정기적으로 모임을 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활동이 이뤄지나
“정기적인 모임은 연 2회 진행하는 ‘초면회원 네트워크파티’와 연 1회 이뤄지는 ‘정기총회’가 있다. 대면으로 만나 회원들의 근황을 확인하고 유대감을 높이며 여성감독네트워크의 사업들을 소개한다. 일상적인 사업으로는 다양한 소모임과 원데이 워크숍이 월 1회 이뤄지고 있다. 또 ‘여성 감독 작업노트’라는 스터디를 회원과 비회원을 대상으로 연 3회 연다. 이 밖에도 WDN 상영회를 개최하며 누구나 구독할 수 있는 뉴스레터도 발행하고 있다.”

단편영화와 장편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무엇이 다르나
“단편영화는 대학의 영화과나 문화센터 또는 개인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디지털 장비가 대중화돼서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만들 수 있다. 제작 후에는 단편영화 전문 배급사나 영화제 등을 통해 공개된다. 장편은 아무래도 극장 개봉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전문 제작사에서 일정 이상의 제작비와 제작 기간을 들여 만들어진다.”

여성 감독으로서 작업할 때 겪는 난항은 무엇인가
“성별에 상관없이 영화를 만드는 일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다만 여성 감독이기 때문에 ‘특정 주제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혹은 ‘특정 소재에 한정해서만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는 시선이 있다.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시선의 벽이 여성 제작자들에게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투자나 지원 등 여러 기회의 측면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한 마디 부탁한다
“이번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제안으로 WDN 큐레이션을 통해 회원 감독들의 단편을 상영했다. 여성영화제는 회원 감독에게 상영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여성영화제는 늘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다양한 영화들을 공개해왔다. 앞으로 여성 감독들의 작품이 관객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가 되면 좋겠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서지원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