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중 61.9%, 전자스캔본 교재를 이용해 본 경험 있어
대학 출판사의 교과서 판매량, 매년 5~10%씩 꾸준히 감소

새 학기가 시작되면 대학생들이 가장 먼저 구입하는 것이 있다. 바로 강의 교재다. 국내 대학 강의 교재는 평균 3~5만 원 정도로 구매 가능하다. 반면 최근 대학생들이 교재를 구입하기 위해 방문하는 곳은 서점이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후 학생들이 실물 교재를 구입하는 것이 아닌 대학 교재의 PDF를 다운로드 받아 전자기기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교수님이 주던데요?”···대학가 불법 교재 유통 만연
불법PDF 거래, 오픈채팅방 이용해 기록 숨겨서울권 소재 대학 10곳의 에브리타임(대학생 익명 커뮤니티)을 조사한 결과, 대학 교재와 외부 교재 PDF를 사고파는 글을 여럿 볼 수 있었다. 그 중 외부 교재를 제외하고 대학 교재 판매 글만 확인한 결과, 한 학기 동안 PDF를 사고 파는 게시물이 평균 10개 이상으로 집계됐다.

한 대학의 게시물은 30개가 훌쩍 넘기도 했다. 학생들은 에브리타임에 특정 과목, 특정 교수의 이름까지 적어 교재를 거래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교재 판매 게시글에 쪽지를 보냈더니 판매자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링크를 보내왔다. 이는 불법 PDF의 거래방식으로 오픈채팅방을 이용해 계좌이체 기록이 남지 않게 하기 위한 수법이었다.
“심지어 교수님이 주던데요?”···대학가 불법 교재 유통 만연
▲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PDF 거래 글 / 에브리타임 쪽지를 통해 받은 오픈채팅방 링크(김세은 대학생 기자)
▲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PDF 거래 글 / 에브리타임 쪽지를 통해 받은 오픈채팅방 링크(김세은 대학생 기자)
한국저작권보호원이 작년 대학생 및 대학원생 2,000명을 대상으로 국내 불법 복제물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1.9%가 “전자스캔본 교재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평균 3개의 과목은 스캔본 교재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확보 경로는 ‘이메일과 USB 등으로 주변 지인들로부터 공유받음’이 44.6%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주요 포털 카페, 블로그, 대학가 자료 공유 사이트 등 커뮤니티가 12.5%, 텔레그램, 트위터,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 SNS가 5.4%였다. 국내 저작권법상 책을 스캔해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행위는 금전적인 목적과 무관하게 위법행위다.
복제업자에게 책을 맡기는 것도 불법에 해당그렇다면, 사적으로 책을 스캔해 PDF 파일로 사용하는 것도 문제가 될까. 타인과의 공유 여부와 무관하게 저작권법상 저작자의 허락 없이 전문 복사 업체에 맡겨 책을 스캔하는 것은 불법이다. 해당 법률에서는 저작물을 개인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사적 복제’는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있다. 한국저작권보호원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현재 국내 저작권법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에 한해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를 허용하고 있다.

다만, 공중의 사용에 제공하기 위해 설치된 복사기기, 스캐너, 사진기 등 문화체육관광부령으로 정하는 복제기기에 의한 복제는 불법으로 명시돼 있다. 즉, 구입한 책을 직접 스캔하는 건 괜찮지만 복제업자에게 복제를 의뢰하는 것은 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사적 복제’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 직접 스캔한 PDF 파일을 온라인에 게시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저작물을 공유하는 건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또한 명백히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사항이다. 이를 어길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대학생들 불법 교재 복사 ‘만연’하지만 법으로 금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교재 불법 복사가 만연했다. 서울권 소재 4년제 대학 공과대학에 재학 중인 ㄱ씨는 “대다수의 전공 서적은 1,000페이지가 넘어간다. 전공과목을 한 학기에 5개만 수강해도 5,000페이지가 넘어가기 때문에 들고 다니기가 부담스럽다”며 PDF 파일을 찾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이어 “전공 특성상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PDF 파일로 시험 직전 여러 번 문제를 푸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 필기도 PDF 파일을 사용해 전자기기로 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고 전했다.

심지어는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로부터 PDF 파일을 받았다는 학생도 있었다. 서울권 소재 4년제 대학 사회과학대에 재학 중인 ㄴ씨는 교수로부터 교재를 복제한 파일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공유 목적이 이익 창출이 아닌 교육이므로 괜찮다는 말과 함께 수업 도중 교수로부터 교재 파일을 받았다고 말했다. ㄴ씨는 “대학교 전공 서적 특성상 책이 무거운 경우가 많아 항상 들고 다니기에 버겁기도 하고 가격도 꽤 비싸다”며 학교 측에서 학생들에게 교재비를 지원해 주거나 학교에 두고 다닐 수 있도록 사물함 및 책꽂이를 비치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PDF 파일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의 모습
▲PDF 파일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의 모습
대학교재 불법 PDF파일, 출판업계 대응책은?대학 교재 불법 PDF 공유 문제에 출판업계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맨큐의 경제학’ 등 다양한 전공 서적을 출판하는 센게이지러닝코리아는 불법 PDF를 공유하는 이들을 상대로 선처하는 대신 에브리타임에 재발방지서약서를 올리도록 했다.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재발방지 서약서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재발방지 서약서
해당 글은 특정 교재를 무단 복제한 불법 PDF 교재를 판매하다가 적발됐음을 알리고 불법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가지고 있던 모든 파일을 삭제했음을 명시했다. 덧붙여 “본 재발방지 서약서를 개인정보 삭제 후 불법행위가 적발된 장소인 ‘에브리타임’에 공개 게시함으로써 유사 불법 PDF 교재 판매자의 주의를 촉구하겠습니다”라며 불법 PDF 공유 관련한 주의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센게이러닝 코리아 관계자는 피해 규모를 묻는 질문에 “폐쇄된 온라인 커뮤니티와 중고 거래 사이트 등에서 불법 PDF가 거래되고 있어 정확한 피해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이로 인해 대학 출판사의 교과서 판매량은 매년 5~10%씩 꾸준히 감소했다”고 말했다.

불법 PDF가 출판사의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이어 전자책 출시 여부에 대해 “출판사는 쉽게 복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전자책이 무단으로 광범위하게 배포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기에, 충분히 디지털 권한 관리(DRM) 보호 장치를 마련한 후에 전자책 서비스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디지털 권한 관리(DRM)란 콘텐츠 생산자나 제공자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기술을 뜻한다. 이를 통해 적절한 권한을 가진 이용자만이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어 관계자는 “에브리타임에 공개 인정을 게시하도록 요청한 것은 학생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윤리적, 법적 영향을 더 잘 인식하게 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라며 “징벌적 조치를 넘어, 대학과 출판사는 저작권에 대한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인식을 제고하고 지적재산권을 존중하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대학생들이 ‘학습 과정의 편리성’을 위해 불법 PDF를 거래가 지속된다면 대학 교재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학생들의 인식뿐만 아니라 저작권에 대한 교육 및 캠페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김세은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