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시스템 이용자가 보는 진짜 대치동

'대치동 삽니다' [어쩌다 워킹맘]
대치동에서 아이를 키우면서(정확히는 반경 4km 거리인 옆동네다), 나는 끊임없이 고민했다. 대치동의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활용해 학습적인 아웃풋를 극대화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의 창의력과 사고력을 지키면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것인가. 이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늘 쉽지 않았다.
미취학 아동 사교육의 모든 것 ‘영어’
아이의 영어 학습은 6세 때 시작되었다. 영어유치원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는 언어를 학습이 아닌 소통의 도구로 받아들이기를 바랐고, 국가와 언어의 장벽 없이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지길 원했다.

다행히도 아이는 호기심이 많고 배우는 것을 좋아했으며, 우리가 선택한 영어유치원의 분위기는 워킹맘 프렌들리하고 강압적이지 않으면서 활동을 통해 즐겁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영어유치원은 교육열이 높지만 아이들의 정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학습을 중시했다. 아이의 영어 실력은 빠르게 향상되었고,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모국어 발달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7세가 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에세이 라이팅과 성과에 대한 압박이 커졌다. 우리는 특정 학원의 레벨을 목표로 하지 않았기에 레벨 테스트를 위한 준비를 하지 않았고, 덕분에 과열된 경쟁에서 한 발 물러설 수 있었다. (다만, 아웃풋에 연연하지 않겠다면서도 문득문득 들려오는 학원 정보나 다른 곳은 이렇다더라는 말에 불안한 마음을 가진것도 사실이다)

아이는 두 번째 도전에서 우리가 원했던 영어학원에 입학했다.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과학을 배우는 학원을 추천받았기 때문) 테스트는 어려웠고, 학원의 시스템은 매번 숙제와 성적을 공지하며 분반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이 적절한가 하는 고민이 들었지만, 다른 학원으로 옮기는 번거로움 때문에 현 시스템 내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

이 경험을 통해 대치동 사교육의 양면성을 체감했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이면서도 동시에 불안을 조성하고 과도할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효율보다 아이에게 맞는 방식을 택한 수학 사교육
그렇게 발을 들인 대치동의 영어시스템을 경험하며, 셔틀이 다니지 않는 영어학원을 이모님이 라이딩까지 해야하는 지금의 영어 사교육을 수학까지 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했기에 수학의 경우 대치동 시스템 대신, 아이의 수학적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선생님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이 방법은 느리고 비효율적이었지만,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전까지 연산 학습지 외에는 어떤 수학 사교육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나 역시도 문득 아이의 이모님이 "엄마, 황소(유명 대치동 수학학원)를 보내. 어릴 때 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습관이 안 들면 나중에 되면 그거 못 해" 라는 말이나 영어유치원을 다니면서 아이가 보였던 드라마틱한 언어 아웃풋을 떠올리며, 지금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수상을 했다는 다른 아이의 소식을 듣거나 할 때면 어쩌면 아이를 내가 너무 방치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대치동의 명과 암, 중요한 건 무조건적으로 편승하지 않는 것
대치동의 교육 환경은 장점이 있다. 비슷한 학습 태도의 아이들이 모여 자연스러운 동기부여가 되고, 다양한 학습 선택지가 존재한다. 학원의 분반 시스템을 경험하며 아이가 더 꼼꼼하게 숙제를 챙기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미디어에 대치동이 마치 악의 근원처럼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부모들의 불안이 투영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학원이 아이들의 레벨을 나누고, 부모들은 그 기준에 맞추어 아이를 끌어올리려 한다. 그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거나 못하는 이들은 대치동을 비판하면서도 뒤처질까 다시 또 불안하게 느낀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이용하는 사용자다. 대치동 시스템 안에 있지만 그 시류에 무조건적으로 편승하지 않는 것. 사실 이곳에서도 초등 의대입시반 등을 보며 과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적어도 내 주변에는 훨씬 더 많다.
아이의 잠재력을 믿고 아이만의 속도를 기다려주는 일
AI 시대에 단순한 지식 학습이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하며 관찰하고 상상력을 펼칠 시간적, 물리적 여백이 아이에겐 필요하다. 사고력은 즐겁고 여유로울 때 자란다.
그렇지만 학습에 재능이 없는 것 같아도 사교육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내 아이만 뒤쳐지는 것이 아닐까 싶은 부모의 불안과 조금이라도 아이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려는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파고드는 사교육 시장은 언제나 공포를 조성해왔다.

대한민국의 교육환경이 지나치게 경쟁적이라며 행복한 유년을 위해 이민을 고민하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마주한다. 다만 경쟁 자체로부터 아이를 분리시켜 행복한 유년시절을 만들어주는 것에는 의문이 있다. 기본적으로 어떤 집단이든 경쟁 자체가 없는 사회는 없고 남들과 비교해서 똑같은 길로 가는 것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국가나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결단과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곳 대치동에서 대학입시까지 치른 케이스를 듣고 있으면 대치동의 사교육은 과열돼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보충하고 학습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데 효율적인 시스템인 것만은 분명하다.

핵심은 과열된 공포 마케팅에 휘둘리지 않고, 아이에 맞는 속도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다. 물론, 그 기다림 속에서 중심 잡힌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
아이를 잘 알고 믿으며 기다리는 것이 사교육에 내던지는 것보다 어렵고 비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온전히 자기를 믿어 준다면, 대치동의 사교육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의 재능은 결국 발현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박소현 님은 올해 8살 아이의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이다.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기자, 아나운서를 거쳐 현재 브랜드 빌딩 비즈니스 스타트업 블랭크코퍼레이션 커뮤니케이션 담당 프로로 제 2의 인생을 설계 중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