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시(詩)가 최근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며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10·20세대의 시집 구매 급증, 새로운 독자층의 등장
예스24 시/희곡 베스트셀러 (2025.03.21 ~ 2025.03.27 기준)
예스24 시/희곡 베스트셀러 (2025.03.21 ~ 2025.03.27 기준)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3월 21일 ‘세계 시의 날’을 맞아 발표한 시집 판매 동향에 따르면, 한국 시 분야의 판매량은 지난해 46.4% 증가한 데 이어 올해도 33.7% 늘었다. 특히 10·20세대의 시집 구매량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시집은 전통적으로 50대가 가장 많이 구매하는 장르였지만, 최근에는 10·20세대의 구매 비율이 눈에 띄게 늘었다. 2020년 전체 시집 구매자 중 11.7%에 불과했던 10·20세대의 비율은 2025년 19.2%로 증가했다. 올해 1분기 10·20세대의 시집 구매량 역시 전년 대비 64.5% 늘어나,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MZ세대의 ‘핫플’에 들어선 시 전문 서점
시에 대한 젊은 독자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점이 MZ세대의 핫플레이스 거리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서점 ‘위트앤시니컬’은 유희경 시인이 운영하는 시 전문 서점이다. 이곳에서는 오로지 시집만을 판매하며, 시 낭독회, 시 창작 강의, 독서 모임 등 여러 행사가 열려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아지트로 자리 잡았다.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캠퍼스와 한성대학교가 가까워 대학생들의 방문도 잦은 편이다. ‘위트앤시니컬’을 찾은 대학생 A 씨는 “이곳에 약 1,500여 종의 시집이 있다고 들었다. 일반 서점에서는 보기 어려운, 다양한 출판사의 시집을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또한, 서점 내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시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MZ세대 사이에서 부는 시집 열풍.. 시(詩)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또 다른 시 전문 서점 ‘시요’는 “책에 둘러싸여 가장 낭만적인 시, 간을 보내세요.”라는 슬로건 아래 운영되고 있다. 이 서점이 자리한 행궁동은 감각적인 카페와 소품숍, 공방이 모여 있는 곳으로,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힙한 감성’을 즐길 수 있는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행궁동 거리에 시집 전문 서점이 들어섰다는 점은, 시가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책방지기 김고요 시인은 “쌓여 가는 시집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시집 전문 서점을 열었다”며 “시라는 장르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부담 없이 시집을 들춰 보기를 바란다. 나도 그렇게 시를 가까이하게 됐다”고 전했다. ‘시요’의 책장에는 김 시인이 직접 큐레이션 문구를 적은 시집이 가득해, 입문자들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시집을 쉽게 고를 수 있다. 지난 3월 ‘시요’를 방문한 20대 이용자 B 씨는 “예약제로 운영돼 혼자 조용히 책방을 둘러보면서 시를 즐길 수 있었다. 시집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한층 더 가까워진 것 같다”는 후기를 남겼다.

SNS 속 간결한 언어로 ‘숏폼 세대’를 사로잡다
인스타그램 @poemmag
인스타그램 @poemmag
최근 인스타그램에서는 시집 속 문장을 공유하는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직접 필사한 문장을 올리거나 인상적인 시 구절을 큐레이팅해 공유하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포엠매거진(@poemmag), 우시매거진(@ourpoem mag) 같은 시 전문 SNS 매거진도 생겨났다. 특히 포엠매거진은 시집 속 문장을 아카이빙하는 콘텐츠로 큰 인기를 끌며 팔로워 7만 명을 돌파했다. 이들은 인기에 힘입어 기성 출판사와 협업하거나 자체 백일장을 진행하는 등 시를 즐기는 다양한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출판업계에서는 “SNS를 통한 시 공유 문화가 확산되면서 젊은 세대가 시를 더욱 자연스럽게 즐기게 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는 전후 맥락 없이도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고,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SNS의 특성과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박하나 예스24 마케팅본부장은 “시는 일종의 ‘숏폼’ 콘텐츠다. 숏폼에 익숙한 10대에게 시의 짧고 감각적인 언어가 색다른 감성으로 와닿으면서 인기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MZ세대, 독자에서 창작자로.. 베스트셀러 순위도 변화
2025년 시집 베스트셀러 내 10·20세대 인기 도서, 사진제공=예스24
2025년 시집 베스트셀러 내 10·20세대 인기 도서, 사진제공=예스24
한편, 시집을 단지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쓰는 젊은 창작자들도 주목받고 있다. SNS를 기반으로 10·20세대 팬덤을 확보한 젊은 작가들이 눈에 띄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예스24 관계자는 “이전까지는 기성 시인의 작품들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올해는 젊은 작가들의 시집 3권이 10위권 안에 들었다”며 “젊은 작가들의 감성이 10·20세대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들이 인상적인 문장을 SNS에 공유하면서 입소문이 났다”고 밝혔다.

실제로 올해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포함되었다. 1997년생 고선경 작가의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과 『샤워젤과 소다수』가 각각 3위와 5위를 기록했고, 평소 x(구 트위터), 포스타입 등을 통해 독자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진 차정은 작가의 『토마토 컵라면』이 9위에 올랐다. 또한, 해당 도서들의 10·20세대 구매 비율은 각각 45.9%, 51.9%, 60.9%로, MZ세대가 시집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짧지만 강렬한 언어로 감정을 포착하는 시가 MZ세대의 감성과 맞닿으며,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진호 기자/이다윤 대학생기자
jinho23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