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스무 살, 뉴 스토리가 시작된다
[big story]
[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어느 날 문득 삶이 낯설어진다. 그러나 회의 졸업이 삶이라는 무대의 퇴장을 의미하진 않는다. 50대는 인생의 전환점이다. 마치 설렘과 기대가 부풀었던 청소년기 진로 탐색의 시기처럼 새로운 나를 만나러 가는 자유 학기의 시작이다.

“생의 전반에 달 위를 걸었던 사람이라면, 생의 후반에는 무엇을 하라고 해야 합니까.”
젊은 의사가 질문했다. 그는 우주 비행사가 은퇴 후 전환을 맞이하는 순간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저명한 라이프스타일 전략 전문가인 리처드 J. 라이더가 답했다.

“우주 비행사든 부자든 관계없이, 자신의 정체성과 목적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생애주기를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고 중년기 이후 쇠퇴하는 스토리로 정의했다. 그러나 이제 많은 라이프 전문가들이 새로운 삶의 단계를 말한다. 은퇴 이전에 새로운 전환기(new life stage)를 거치면서 인생 후반부에 다시 성장하는 그래프다.(서울50플러스재단 ‘앙코르50+포럼’ 중에서)

이 전환기는 세 번째 스무 살을 앞둔 ‘50+’ 시기다. 이 새로운 전환기에 얼마나 뜨겁게 도전하고 탐색하느냐에 따라 인생 후반부의 스토리가 전혀 다른 빛깔로 펼쳐질 수 있다.

“인생은 50부터” 새로운 어른의 시대
일본 새로운 어른 문화연구소의 총괄 프로듀서인 사카모토 세쓰오는 저서 <2020 시니어 트렌드>에서 50대의 90%는 자신을 시니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60대의 90%는 시니어라고 불리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40~60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50대에도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멋진 어른이고 싶다’는 응답이 60%에 이르렀고, ‘몇 살이 되더라도 젊게, 긍정적인 의식을 유지하며 살고 싶다’는 답변이 73.7%에 달했다. 과거에는 50대 이후를 바라보는 시각이 인생의 내리막길이었다. 말 그대로 여생으로 치부됐다. 겉모습을 보면 모두가 똑같아 보이고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 고령자가 돼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회사와 가족이라는 짐을 내려놓은 50+세대는 좀 더 자신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50세를 넘기면 ‘슬슬 인생의 꽃을 피우고 싶다’는 의식이 새롭게 싹튼 것이다.

사카모토 세쓰오는 “현재의 50대 이후는 개성이 사라지는 시대가 아니라 개성의 복권 시대다”라고 설파한다.

희망제작소는 호모 헌드레드 시대를 맞아 새로운 생애주기로 뉴 라이프 사이클(New Life Cycle)을 제안했다. ‘제2성인기’다. 10대 청소년기에 이어 ‘제1성인기’가 20대에서 40대라면, 노년기로 넘어가기 전 50~60대는 ‘제2성인기’라는 것. 세부적으로는 50대는 중년 전환기, 60대는 중년 안정기로 명명했다. 생애 주요 사건으로 은퇴를 경험하는 50대는 ‘노년기로 진입하는 기점이 아니라 정체성, 삶의 목적, 일, 관계 등을 재조정해 고유한 의미를 갖는 새로운 한 시기를 시작하는 전환의 기점에 가깝다’는 시각이다.

희망제작소 관계자는 “중년기는 마치 청소년 시기처럼 앞으로의 삶이 나아갈 방향과 진로를 준비하는 과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전환기에 탐색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이후 40~50년의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세 번째 스무 살, 뉴 스토리가 시작된다

중년의 위기, 삶의 전환을 위한 기회


고위 공직자였던 A씨는 퇴직 후 창업을 했다. 그런데 그야말로 쫄딱 망했다. 그 뒤 외국으로 가서 또 창업을 했다. 가족 입장에서 보면 창업을 한다고 돌아다니는데 돈은 하나도 못 벌고, 심지어 있는 돈까지 가져다가 자꾸 쓰고 다니니 관계가 나빠졌다. 그럼에도 A씨는 말했다. “나 아직 죽지 않았어!”

<중년의 배신>을 통해 A씨의 사례를 소개한 김용태 한국심리치료상담학회장은 “중장년기 창업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제적인 측면이 크지만, 깊은 곳에는 ‘내가 여전히 쓸모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싶다는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50대 이후의 생활이 마냥 장밋빛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피하고 싶은 잿빛일 수 있다. 직장을 나오면 사회적 지위도 권력도 사라진다. 몸도 예전 같지 않다. 집에 가도 왕따가 되는 것 같다. 50대는 상실의 시대다. 한국 중년의 현실이 이렇다. 김용태 회장은 “남자들은 파워를 추구하는 존재인데 전방위적으로 파워를 잃으니 중년기가 힘들다”며 이렇게 말했다.

“성공에 매달리고 파워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시각이 외부로 향해 있다. 그런 마음으로 살면 중년에 위기가 온다. 사라지는 힘을 근거로 삼았으니 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 내가 나 자체로 살아야 한다. 지위는 얻을 수도 있고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누구보다 내가 나를 사랑해주고 인정해주면 된다. 나로 산다는 것이 정체성이다.”

은퇴 준비는 마음에서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이 중장년 이후 무너지는 이유가 마음이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맥락이다. 마음으로 노후 대비가 된 사람들은 적은 돈을 가지고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많은 돈을 가지고도 불행하게 살게 된다는 얘기다. 중년은 내리막이 아니다. 삶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그는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며 “돈이나 힘을 성공의 지표를 삼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쪽에선 해결책이 없다”고 단언한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람이 행복하려면 일, 관계, 문화생활(취미)의 3박자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잘 노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 흔히 쉬는 것이 노는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오답이다. 100세까지 살 수 있는데 즐기는 문화생활도, 하고 싶은 일도 없다면 인생 후반전의 ‘시간의 사치’를 제대로 누리기 어렵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보자. 떠오르는 게 없다면 심각한 상태다. 그저 생존을 위해 달려온 거다. 일하는 뇌만 돌리다 보면 노는 것도 재미가 없다. 일하려면 교육도 받고 훈련도 하듯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이게 보통 10년이 걸린다.”

중년기에 가족과의 관계 개선도 필수다. 흔히 은퇴 남편을 삼식이(집에서 세끼를 먹는 남편), 바둑이(아내 뒤를 따라다니는 남편)로 보는 인식이 팽배하나, 실제로는 은퇴 남성이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더 컸다.

지난해 서울시의 인생이모작실태 조사에 의하면 ‘배우자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편하지 않다’는 남성 응답자가 10명 중 4명(37%) 꼴이었다. 여성은 10명 중 1~2명(16.7%)에 그쳤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일주일간 연락 및 만남 실태’를 확인한 결과, 은퇴 남성의 5명 중 1꼴로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는 응답이 나왔다.

윤 교수는 “50대 이후에는 점점 관계가 중요해진다. 특히 자신보다 나이 어린 친구를 사귀는 것이 젊게 사는 방법인데, 50대에는 30대와 어울릴 수 있지만 70대가 돼서 50대 친구를 사귀기는 어렵다. 영어 공부를 하듯, 일을 연구하듯 중장년기에 친구 사귀는 노력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생 후반전 일에 대한 탐색도 필수다. 50대 이후에는 한창 때처럼 주도적으로 일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생존 중심의 일이 아니더라도 가치 있고 사회적인 역할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리처드 J. 라이더는 ‘앙코르 50+포럼’에서 ‘나이 들면서 꼭 필요한 3가지’로 Money(돈), Medicine(약), Meaning(의미)을 제시했다.

사실 사람들은 노후를 돈이 충분히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재정 상태를 체크하고, 건강검진을 통해서도 정기적으로 건강도 체크한다. 삶의 의미도 정기적 체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지난 2012년 일본 정부는 고령사회 대책을 개정했다. 여기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고령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고 의욕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도움을 주는 쪽이 되도록 의식을 개혁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인생에서 도움을 주는 존재로의 전환은 큰 의미를 갖는다. 이것이 곧 ‘자신이 주역’인 삶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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