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 140호 (2017년 01월)

AI 시대, 자녀 교육의 ABC를 말하다

기사입력 2017.01.04 오전 10:14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놈 촘스키는 저서 <지식인의 책무>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지성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폭로하며, 원인과 동기, 그리고 종종 가려진 의도에 따라 행동을 분석해야 할 위치에 있다.” 이혜정(45)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세계적 석학의 고언을 정확하게 꿰뚫고, 실천하는 지식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다.



2016년 3월 이세돌 9단을 격파한 ‘알파고’의 등장은 우리 사회에 충격과 공포를 몰고 왔다. 혹자는 이세돌 9단의 1승이 기계를 상대로 한 인류의 마지막 승리라고 평하기까지 했다. 인류가 꿈에 그리던 인공지능(AI) 시대의 서막에서 왜 우리는 마냥 반기지 못했던 걸까. 바로 준비가 덜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우려는 ‘교육 분야’에서 쏟아졌다.

알파고로 대변되는 인공지능 시대를 앞두고, 여전히 주입식 교육에 머문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실제로 이미 미국, 영국,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미래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해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언어인 코딩(coding)을 일찍이 공교육화하고 있다. 기계적인 언어, 즉 프로그래밍을 이해하면 개인의 경쟁력을 훨씬 높일 수 있다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시대에 도대체 어떻게 우리 아이들을 교육해야 할까. 이 질문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 연구교수’, ‘미국 미시간대 객원교수’, ‘교육과혁신연구소장’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가진 그의 이름이 처음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4년 10월로 거슬러간다. 그의 저서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가 출간되면서부터다. 책 제목만 보면 으레 ‘서울대 공부벌레들의 공부 비법’이 담긴 책으로 오인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책의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엘리트, 그것도 우리나라 최고의 ‘공부의 신’들만 간다는 서울대 학생들이 대학과 사회가 기대하는 공부가 아닌, 초·중·고교 방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수용적 학습을 고수하고 있었던 것. 이후 몇몇 방송사들은 그의 연구 결과를 다큐멘터리로 검증했고, 화면 속 현실은 더욱 참혹했다. 그 속에서 등장한 알파고의 충격은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교육 시스템을 다시금 짚어보게 했고, 이미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제기해 왔던 이 소장의 목소리가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그가 말하는 한국 공교육의 현실과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AI 시대 자녀 교육 전문가로 알려지면서 전보다 바빠지셨죠.
“하루 일과가 일정하지 않아요. 제주도에 있는 딸을 돌보기 위해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고 있어요. 일주일에 2~3회 이상은 꼭 서울에 오는데 정신없이 바쁘죠. 강의도 하고, 각종 인터뷰, 프로젝트 연구와 칼럼까지 쓰고 있어요. 최근에는 교육기관이나 정치권에서 교육 개혁 관련 자문도 요청하시는데 물리적으로 여의치가 않네요. 가급적 이렇게 하고 밤에는 꼭 내려가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밥시간 맞춰 못 내려갈 때도 종종 있어서 밥을 미리 해놓고 와요.”

딸이 제주도에 간 사연이 궁금하네요.
“저희 가족은 좀 독특한 형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중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은 아빠와 함께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어요. 원래 아들은 저와 함께 미국에서 공부할 예정이었어요. 제가 2012년 5월 미국 미시간대에서 객원교수직을 맡게 됐거든요. 2년 반 동안 미국 생활을 하면서 연구 활동을 하며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를 쓰게 됐어요. 이후 2014년 가을, 미국 버지니아텍대 러닝사이언스(Learning Science) 교수로 임용됐습니다.

제 커리어에 큰 기회였죠. 하지만 변수가 생겼어요. 중학교부터 국제학교인 엔엘씨에스 제주에서 3년간 혼자 기숙사 생활을 하던 딸아이가 (고등학교 시절엔) 엄마가 필요하다고 연락을 한 거죠. 처음엔 딸에게 제 사정을 설명하며 설득했어요. 그러자 딸이 이러더군요. ‘응, 엄마는 엄마의 길을 선택해도 돼요. 단, 엄마는 딸을 잃게 될 거예요’라고요. 결국, 2014년 9월 한국에 돌아온 저는 졸지에 교수에서 딸의 밥을 챙겨주는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됐죠.(웃음)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아이에게 엄마가 곁에 있다는 정서적 안정과 모녀 간 끈끈한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죠.”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늘 의아한 점이 있었어요. 우리나라 대표 ‘공신’이라는 제자들이 매번 공부가 어렵다고 제게 하소연을 했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이 대학에서만큼은 주도적이고, 효율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연구해서 알려주면 도움이 되겠다 싶어 학교 측의 예산을 얻어 실태조사를 시작했죠.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본 대학 내 교육은 정말 형편없었어요. 정말 그렇게 공부해선 안 될 것 같았죠.

그 무렵 제가 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 논문을 듣던 한 청중이 제게 돌연 이렇게 지적하더군요. ‘당신은 한국 교육 개혁을 말하면서 왜 타국에서, 극소수 전문가들을 상대로 영어로 발표를 하고 있느냐. 그것이 과연 영향력이 있는가. 정말 한국 교육을 개혁하고 싶다면 한국 사회에 알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진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교수는 논문으로 말하는 사람이지만, 그것 외에 지식인으로서 일종의 책무를 느꼈죠. 당장 이 문제를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내기 위해 각종 연구 조사에 박차를 가했죠.”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아직도 학생들이 ‘수용적’ 교육을 받고 있는 현실이죠. 서울대에서도 교수가 한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학생들이 학점을 잘 받는 반면, 창의적인 답변을 제출한 학생들은 학점이 좋지 않았죠. 심지어 교수와 자신의 의견이 다른 것을 학생들이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 환경에서는 아이들이 비판적인 사고나 질문하는 방법, 창의적인 생각조차 하지 않죠.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실현할 수 있을까요.

세계는 점점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생산적 지식과 응용적 지식을 요구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정보만 주입하니 학생들이 죽도록 공부하고도 이렇다 할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죠. 이런 나라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어요. 이미 그 시그널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배가 침몰하기 전 이를 먼저 본능적으로 감지한 쥐들이 탈출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 기득권 계층 상당수가 아이들을 해외나 국제학교, 대안학교 등으로 보내고 있죠. 이유는 간단해요. 우리나라 공교육제도가 위험하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탈출하지 못하는 99%의 아이들을 위해서 사회가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침몰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공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을까요.
“가장 시급한 불은 공교육제도 개혁이죠. 특히, 수용적 학습 능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평가 제도부터 전면 수정해야 합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많은 정보와 지식을 기억하고 종합해 고도의 지적 판단을 하는 전문직들(의사, 법조인, 회계사, 언론인 등)이 직격탄을 맞게 될 수 있어요. 따라서 미래에 아이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직업에 대한 준비 교육이 아니라 현존하지 않는 미래 직업을 발굴하게 만드는 창의적·비판적 사고의 교육이 돼야 합니다. 지금의 수용적 교육으로는 결코 우리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없어요. 물론 시간과 예산, 각종 절차들이 필요하겠지만 사회적 합의와 의지만 있다면 공교육 개혁은 충분히 이룰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자녀 교육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요.

“비판적·창의적 사고 능력은 꾸준한 학습과 노력에 따라 근육처럼 길러진다는 것이 교육계의 중론입니다. 축구를 잘하고 싶은 학생이 박지성 선수의 슛 장면만 3000번 본다고 실력이 늘겠습니까. 3000번 이상 보고, 따라 차보고, 잘못된 부분은 고치고, 다시 차보면서 온전히 자기 것을 만들 수 있잖아요. 비판적·창의적 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와 부모가 길러줘야 해요. 방법은 어렵지 않아요.

아이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질문하는 습관을 만들어주는 것이죠. 한국 학부모님들 상당수가 아이들이 무엇을 물어보면 쉽게 답을 가르쳐주시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게 돼요. 저는 저희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집요할 정도로 아이들의 생각을 물었어요. 가령, ‘엄마, 왜 저 고양이는 털이 까매요?’라고 물어보면 저는 저만의 답을 하면서도 ‘이건 내 생각이고, 너는 왜 그런 것 같니’라고 꼭 되물어요. 그날 밤 딸이 이런 시를 써 놨더군요.
 
‘담 아래에 무얼 훔칠까 검정색 도둑고양이/ 쓰레기 버리러 가신 우리 엄마 깜짝 놀라게 하는 얄미운 도둑고양이/ 그 미움들이 까맣게 쌓였나/검정색 도둑고양이.’ 아이는 그 미움들이 쌓여서 고양이가 까매졌다고 스스로 생각한 거예요. 저는 늘 이런 과정을 요구했어요. 그 속에서 아이들은 남과 다른 사고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기죠. 미래에는 기계처럼 공부 잘하는 것이 성공이 아니에요.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남과 다른 그 무언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이 곧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과 포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지금껏 해 왔던 것처럼 우리나라 교육 변화를 위해 다각도로 이 문제를 알리고 개선시키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글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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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7-01-0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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