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 은행과 자산규모 대등…수익성 회복은 더뎌

‘기사회생’ NH농협은행, 하반기 성적표는?
[한경 머니=공인호 기자] 지난해 조선·해운 부실 사태로 몸살을 앓았던 NH농협은행이 ‘빅배스(big bath)’ 덕에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모습이다. 하지만 수익성 및 건전성 지표는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어서 연말 성적표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NH농협은행이 올해 상반기에만 360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 3290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극적 반전을 이룬 셈이다. 지난해 실적 악화는 STX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등 해운·조선업의 지속된 부실 여파 탓이 컸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2013년 이후 조선·해운 업체로부터 발생한 농협은행의 누적손실액(대손상각 및 대손충당금 전입액)이 2조4504억 원이라는 집계도 나왔었다.

이에 농협은행은 지난해 상반기 ‘빅배스’ 과정에서 1조3209억 원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했다. 빅배스는 대규모 부실 자산을 특정 회계연도에 모두 반영하는 회계 기법으로 통상 최고경영자(CEO)의 연임이나 경영진 교체 시기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단행되는 경우가 많다. 충당금 규모가 커질수록 순이익은 줄어드는 구조지만, 다음 회계연도에서는 뚜렷한 기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흑자 전환했지만…경쟁사 격차 여전
올해 농협은행은 외형상으로는 극적 반전에 성공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금융감독원의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농협은행의 총자산은 255조 원으로 300조 원 안팎인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과 비교해 15~20% 안팎의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이익 창출력 측면에서는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뚜렷한 이익 개선세를 나타낸 올 상반기 실적만 놓고 보더라도 1조 원이 넘는 순이익을 기록한 국민은행(1조2000억 원)과 신한은행(1조1000억 원)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농협중앙회에 지급하는 1000억 원 안팎의 농업지원사업비(옛 명칭사용료)를 포함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지난 4월 연임에 성공한 김용환 NH농협금융 회장이 유독 ‘은행·카드 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주문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앞서 김 회장은 ‘2020 혁신 방안’을 발표하며 농협금융을 2020년까지 KB·신한금융의 뒤를 잇는 3대 금융그룹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미 농협금융의 총자산은 지난 3월 말 기준 467조 원으로 KB금융, 신한금융에 이어 3위지만 순이익은 경쟁사 대비 한참 뒤처져 있다. 올 상반기 실적만 놓고 봐도 경쟁사의 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기사회생’ NH농협은행, 하반기 성적표는?
지난 2012년 신경(信經)분리 구조 개편 당시만 하더라도 금융권에서는 농협금융의 등장을 놓고 시장을 뒤흔들 ‘공룡 탄생’이라는 관전평이 나왔다. 덩치만 놓고 보면 국내 4대 금융지주(KB·신한·우리·하나금융)에 맞먹는 데다, 공제보험의 절대 강자인 농협생명의 민영 시장 진출은 물론 농협은행의 탄탄한 네트워크(지점망)의 강점이 부각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하지만 농협은행은 기업 구조조정 여파의 직격탄을 맞으며 ‘종이 공룡’ 신세를 면치 못했고 비(非)은행 부문 역시 객식구인 NH투자증권(옛 우리투자증권)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여기에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의 크고 작은 갈등은 번번이 경영 불안을 야기시켰다.

특히 농협은행의 실적 부진은 급속도로 불어난 기업대출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3월 말 기준 농협은행의 기업대출은 104조 원으로 110조 원대인 경쟁사들과의 격차를 크게 좁혔다. 그러나 고정이하여신으로 분류된 기업대출은 농협은행이 2조3200억 원으로 신한은행(1조90억 원)의 2배를 넘어선다. 고정이하여신은 사실상 부실채권(NPL)으로 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수치다.

이로 인해 같은 기간 고정이하여신 비율도 1.35%로 은행권 유일의 1%대를 기록 중이다. 그나마도 지난해 같은 기간(2.15%)과 비교해 큰 폭으로 개선된 수치다. 이 기간 4대 은행의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0.68%(신한은행)~0.85%(우리은행)를 나타내고 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농협의 신경분리 이후 기업대출이 큰 폭으로 늘었는데 이 과정에서 조선·해운 업황 악화가 부실채권 증가로 이어졌다”며 “최근 수년간 리스크 관리 능력을 대폭 강화하면서 자산건전성도 점차 개선되는 추세다”라고 설명했다.

이경섭號 체질 개선 ‘박차’…비용 통제는 ‘난제’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농협은행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이경섭 은행장은 상반기 실적 발표 이후 올해 목표 순이익을 5000억 원으로 제시했다. 상반기 기대 이상의 실적을 기록하자 기존 목표치인 4750억 원에서 올려 잡은 것이다.

여기에 이 행장 역시 농협은행을 2020년까지 국내 3대 은행으로 도약시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며 김 회장의 청사진에도 적극 부응하는 모습이다. 더욱이 올 연말 임기 만료를 앞둔 이 행장으로서는 연말 실적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농협은행의 경영지표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적 측면에서는 무엇보다 대손충당금적립률(NPL coverage ratio)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손충당금적립률은 부실 흡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지난해 대규모 빅배스에도 불구하고 국민은행(104.7%)의 절반 수준인 58.6%에 그친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95%), 하나은행(91.5%), 우리은행(87.1%)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올 연말까지 추가 적립이 불가피한 상태다. 이 때문에 농협은행은 금융당국의 경영실태 평가에서도 ‘취약’ 판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80% 이상을 ‘적정’ 수준으로 보고 있다.
‘기사회생’ NH농협은행, 하반기 성적표는?
여기에 케이·카카오뱅크 출현 등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도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비대면 채널 확산에 대비해 인력과 점포 축소 등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지만, 농협은행은 ‘농업협동조합’이라는 특수성이 비용 통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실제 농협은행의 3월 말 기준 전국 영업점 수는 1162개로 소매금융의 전통 강자인 국민은행(1062개)을 역전했으며, 신한은행(867개), 우리은행(929개), 하나은행(935개)과 비교해도 최대 35% 가까이 많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농협은행의 경우 그룹 차원의 리스크 관리 능력을 강화하고 실적 측면에서도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여전히 계속되는 농협은행의 정체성 논란과 인력·조직 측면에서의 경직성은 단기간에 해결하기에는 쉽지 않은 과제다”라고 꼬집었다.

공인호 기자 ba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