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최근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별세 이후 기업 상속과 가업승계를 두고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실 그동안 한진 외에도 예기치 못한 오너의 사망으로 기업 경영에 타격을 받은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성공적인 기업 승계를 위해 어떤 사전증여 및 상속 플랜들이 필요할까.
기업 승계 흔든 상속 리스크, 대책은
가족기업 전문가인 랜스버그 박사는 “승계는 단순히 횃불을 넘기면 되는 일이 아니고, 오랜 시간에 거쳐 만들어지는 과정이다”고 했다. 그만큼 가업승계는 현재 경영자가 그동안 기업을 경영하며 쌓아 온 경험과 리더십을 후계자에게 이전하는 복잡하고 긴 프로세스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들이 여전히 이런 승계 작업을 ‘먼 훗날의 일’로 치부하거나 그 필요성에 대해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화를 입는 일들이 상당수 발생했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기업이 세대교체에 성공하는 확률은 불과 30%밖에 안 된다고 한다. 즉, 70%의 기업이 창업자의 사망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회사 매킨지의 보고서에서도 1975년에는 30년이던 기업 수명이 2005년에는 15년으로 줄어들었고 2020년에는 10년으로 단축될 것으로 예측했다. 왜일까.

우선 우리나라 기업들의 가업승계의 최대 걸림돌은 세금이다. 실제로 오너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가업승계를 하게 될 경우 거액의 상속세 부담 및 납부 재원 마련 곤란, 회사 내부 임직원과의 갈등과 주요 인력 이탈, 외부 주요 거래처의 이탈로 인한 회사 수익력 약화, 가족 간 갈등 등 엄청난 리스크를 떠안은 사례는 많다.

1973년에 설립된 국내 고무 제품 생산업체인 ‘유니더스’는 2015년 말 창업주가 별세하면서 아들이 기업 경영 의지를 밝혔으나, 50억 원 상당의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해 2년 뒤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매각했다. 손톱깎이 제조업체인 ‘쓰리세븐’도 창업주가 2008년 유명을 달리하면서 유족에게 약 150억 원의 상속세가 부과됐는데, 유족은 가업승계 대신 지분 매각을 택했다. 밀폐용기 제조업체 ‘락앤락’, 온라인 화장품 판매 업체인 ‘에이블씨앤씨’ 등의 기업도 상속세 문제로 사모펀드 등에 지분이나 경영권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현재 한진그룹의 기업 승계 난제도 이와 유사하다. 3세 경영 승계 작업 준비를 마치지 못한 상황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갑작스럽게 작고한 한진그룹에서는 오너 일가의 경영권 확보에 제동이 걸린 것. 장남 조원태(44) 대한항공 사장이 그룹을 승계할 것으로 점쳐지지만, 2000억 원 규모로 추산되는 상속세 마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서다.

이는 비단 대기업만의 일은 아니다. 중소기업 역시 기업 승계를 위해서는 대대적인 준비가 필수다. 특히,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세금의 문턱부터 넘어야 하지만 가업승계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상속·증여세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대다수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인 절세 방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업 승계, 사전증여 필수
일반적으로 중·장기적 절세 방안 중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방법은 1세대가 사망하기 오래전부터 2세대에게 가업을 비롯한 부동산, 주식, 현금 등을 증여하는 방법이다. 이 같은 자산들은 미래 가치가 현재 가치보다 높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 증여하는 것이 장래에 상속하는 것보다 조세 부담을 훨씬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되고 있다.

또한 1세대가 2세대에게 회사의 주식을 사전에 물려주는 경우 그 회사가 성장 사업이라면 절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부모가 성장이 기대되는 A기업을 사전에 자식에게 증여한 경우, 자식은 장래에 크게 성장된 A기업의 가치를 기초로 증여세를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시점의 A기업의 가치에 관해 증여세를 신고하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방법은 후계자에 대한 승계 자금 확보 수단으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미션의 핵심은 기업 가치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사업의 향후 전망이 될 것이다.

단, 주의할 점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재산 취득 후 5년 이내에 개발 사업의 허가, 상장·합병, 형질 변경 등으로 인한 재산 가치 상승 금액이 3억 원 이상이거나 해당 재산의 취득가액과 통상적인 가치상승분, 가치상승 기여분 합계액의 30% 이상인 경우에는 그 이익 역시 증여재산으로 본다는 것이다.

신탁과 성견후견제도 활용
2000년부터 이미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고령 상속은 숙명과도 같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8년에 고령사회,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견되는 등 가파르게 고령 인구가 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고령의 부모를 둘러싼 상속 분쟁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2015년 터진 롯데가(家)의 일명 ‘왕자의 난’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90세가 넘은 신격호 회장의 판단·인지 능력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며 아직까지 분쟁의 불씨가 남아 있다.
소순무 한국후견협회장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오너들이 세대교체 시기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승계를 미루고 있다”며 “기업은 일종의 사회적 자산인데 아무런 대비 없이 기업 승계 리스크를 맞이해선 안 된다. 미리미리 자신의 의사라도 밝혀 둬야 한다”며 성견후견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2013년 7월부터 시행된 새로운 성년후견제도는 종래 무능력자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가정법원이 후견인과 후견의 범위를 정하고 감독사무를 담당한다.

또한 후견인이 재산 관리뿐만 아니라 치료, 요양, 거주 이전 등 신상에 관한 결정권 행사도 가능하며, 본인들의 자기 결정을 존중하고, 잔존 능력을 활용해 사회 복귀를 촉진하는 정상화의 원칙 등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 성년후견제는 다시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임의후견으로 나눌 수 있다.

성년후견은 질병, 장애,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결여돼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신청하게 되며, 치매 판정을 받았거나 신체에 일정 장애가 있어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할 때는 한정후견, 재산 관리나 회사 경영 등 특정 사무에 한해 후견이 필요한 경우 특정후견, 계약에 의해 후견이 성립되는 경우를 임의후견이라고 한다.

이 중 임의후견은 정신적 제약이 발생한 후에 가정법원을 통해 후견인을 선임하는 것이 아닌, 정신적 제약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후견계약을 통해 후견인을 선임하고 미리 재산 관리, 신상 보호 사항을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제도로 고령 상속 솔루션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임의후견의 후견인 자격에도 제한이 없으므로 배우자, 자녀, 친족뿐 아니라 지인이나 변호사, 법무사 등 법률 전문가를 후견인으로 지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법정후견의 경우, 재산의 보존에 무게를 두기 때문에 탄력적인 재산 관리에 한계가 있고, 법원의 허가를 받는 만큼 많은 시간이 소모되는데 임의후견은 이 같은 단점을 해결해준다.

다만, 임의후견 계약은 공정증서로 체결해야 하며 등기가 필요하다. 후견계약 체결 후 계약의 위·변조를 막고, 계약의 체결·존속에 관한 사항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해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소 협회장은 “우리나라에 약 100만 명에 이르는 의사결정 능력 부족 성인들 중에 후견제도의 도움을 받고 있는 분들은 1%가 채 되지 않는다”며, “치매 고령자와 같은 분들이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존중 받고 살아갈 수 있도록 관련 기본법을 제정하고 법무부는 물론 보건복지부, 지방자치단체가 협심할 수 있는 종합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비록 아직은 다소 생소한 제도이지만 임의후견 계약은 법적으로 계약된 범위 안에서 노후의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고령 상속 시대에 대응하는 좋은 팁으로 활용해보는 것도 좋다.

상속을 위한 유언대용신탁의 활용
불확실한 기업의 미래 리스크를 차단하기 위해 신탁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신탁은 재산 보호라는 목적 외에 재산의 관리와 증식, 다양한 재산 승계 방법의 활용, 절세 효과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된다. 또한 생전에 재산을 자손들에게 이전하면서 자손들이 함부로 재산을 처분하거나 유용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도 쓰인다.

신탁계약은 위탁자의 자유의사대로 그 계약 내용을 매우 유연하게 정할 수가 있고 계약 내용을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 특히 신탁을 할 경우, 도산격리(insolvency protection)가 가능한데 이는 위탁자의 파산재단에도 귀속되지 않고, 수탁자의 파산재단에도 귀속되지 않는다.

가령, A씨가 B씨에게 돈을 수탁했을 경우, 수탁자 B씨가 파산을 당해도 A씨가 수탁한 돈은 B씨의 채권단은 물론 법적으로도 손을 댈 수 없다. 안정적인 상속을 위해 이 신탁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유언신탁, 유언대용신탁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유언대용신탁은 상속을 하는 사람이 예금, 채권, 부동산 등 자산을 금융 회사에 맡기고 금융 회사가 계약에 따라 상속 집행을 책임지는 서비스를 말한다.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체결하면, 생전에는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받음으로써 자산 형성에 도움이 되고, 사후에는 계약에서 정한 자산 배분이 신속하게 정해진다. 금융 회사가 상속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일주일 정도면 상속재산 분배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언대용신탁은 기존의 유언장이 갖고 있는 법적 효력의 한계를 보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상속제도는 크게 법정상속과 유언상속으로 나뉘는데, 아무리 유언을 남기더라도 유언법정주의에 근거해 피상속인이 자신이 원하는 모든 상황을 유언장에 담을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유언대용신탁은 일종의 ‘거래 계약’인 만큼 피상속인이 계약 형식을 통해 자신의 요구 사항을 폭넓게 담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속 절차의 투명성도 확보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미성년자나 장애인이 있는 경우, 특정 기간 동안 재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생활자금을 지급할 수 있는 내용으로 관리해주는 신탁계약을 체결할 수 있으며, 상속을 하는 사람이 사망하기 전까지 상속재산 배분을 변경할 수 있다.

유언대용신탁과 함께 상속 받는 사람을 도와주는 성년후견약정을 맺어 배우자의 안락한 노후를 도울 수도 있다. 고령화·저성장 시대에 ‘유언대용신탁’은 부의 증식, 안정적인 부의 대물림, 사후 가족의 평온한 삶을 위해 고려해볼 만한 제도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8호(2019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