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섬에서 쉼표를 찍다
[한경머니=정채희 기자 l 사진 서범세 기자] 힘겹게 달려온 당신을 위한 쉼표, 지친 현대인을 위한 휴양지이자 관계를 이어주는 만남의 장. 올여름은 치유의 섬으로 가자.

“탑승 마감합니다. 서두르세요.” 2019년 6월 15일 오전 8시, 인천 옹진군 자월면에 자리한 승봉도 배편(대부고속카페리7호)의 탑승 마감시간. 이른 아침부터 서두른 이들로 자리는 만선이다. 화투를 치는 사람, 매점에서 컵라면과 요깃거리를 사 먹는 사람, 오랜만에 만난 친구끼리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반가움을 나누는 사람 등 배 안은 출항 전부터 저마다의 흥겨움으로 넘실거린다.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경기 안산시 소재)에서 오전 8시 10분 출발한 배는 오전 9시 30분이 돼서야 승봉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은 여행객들, 라면·삼겹살·주류 등 박스째 싼 식음료를 낑낑거리며 들고 내리는 여행자들 등 선착장은 각자의 설렘을 안고 섬에 닻을 내린 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코끝을 찌르는 바다 향, 향긋한 솔내음, 기웃거리는 갈매기, 여행자들을 기다린 섬사람들. 달콤한, 섬의 하루가 시작됐다.
[big story]섬에서 쉼표를 찍다
해양 치유 자원의 보고 ‘섬’

면적 2.22㎢, 해안선 길이 9.5㎞, 주민 133가구 254명이 사는 작은 섬마을, 승봉도. 북쪽으로는 자월도, 서쪽으로는 대이작도를 마주하는 이곳은 1990년대 인기를 끈 TV 드라마 <느낌>, <마지막 승부> 등을 촬영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치유의 섬’으로 알려지며 낚시족, 캠핑족은 물론 남녀노소 모두에게 각광받는 곳으로 유명하다.

육지에서 승봉도로 향하는 배편은 인천항과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 등 2개 코스로 배편당 300여 명의 승객이 탑승한다. 이날 승봉도로 향하는 2개 배편은 모두 만선. 배 시간에 맞춰 마중 나온 픽업버스(펜션 운영) 또한 손님들을 연신 실어 나르기 바쁘다.

“주중에는 전문적으로 낚시하는 분들이 많이 오고, 주말에는 정신없어요. 오늘도 펜션마다 예약이 꽉 찼어요.” 승봉도 원주민이자 A펜션을 운영하는 서재윤 씨는 섬을 찾는 이들이 나날이 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인천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여. 부지런히 움직이면 당일치기도 가능한 거리. 그야말로 도심 속 휴양지인 승봉도를 찾는 발걸음이 급증하고 있다.

어디 승봉도뿐일까. 인천, 신안, 여수, 완도, 통영, 제주 등 섬을 끼고 있는 도시마다 섬을 찾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한국해운조합의 연안여객선 이용 현황 자료를 보면 국내 도서 지역 방문자 수는 2017년 기준으로 도서민 371만5521명, 일반인 1319만4340명이다.

관광객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일반인은 2014년 이후 매년 높은 증가 추세를 기록하고 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이 기간 도서 지역 일반인 방문객(1300만 명) 중 전남권(목포 21%, 완도 18%, 여수 15%)과 경남권(22%)의 섬을 찾은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인천권(8%) 또한 타 지역에 비해 높은 편으로 조사됐다.
[big story]섬에서 쉼표를 찍다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메가 트렌드로 여행이 떠오르면서 매스컴에서 ‘섬’을 다루는 일도 부쩍 늘었다. 이전에는 주로 낚시의 성지로 섬이 그려졌다면 최근 섬을 찾는 이들의 목적은 ‘힐링(치유)’에 더 가깝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도서관광 트렌드 분석을 위해 38개 도서 지역의 방문 목적과 방문 배경을 조사한 결과 경치(17%), 등산(13%), 산행(13%), 힐링(10%), 드라이브(7%) 등이 상위 5개 방문 목적으로 나타났다. 해안 경관 감상이나 휴식 활동을 위한 방문 비중이 꽤나 높다.

정신적 안정과 휴식에 대한 수요 증가, 급격한 고령화 추세로 전 세계적으로 치유 관련 산업이 성장·확대되면서 치료, 건강, 복지 증진의 ‘해양 치유 자원’으로서의 섬을 주목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힐링과 건강에 초점을 맞춘 이른바 ‘웰니스(wellness) 관광객’이다.

이들은 치유 효과가 입증된 해수, 해염, 머드, 해풍, 해사, 해양생물자원 등 해양 치유 자원의 보고인 섬을 힐링처로 삼아 찾는다. 갯벌과 해조류 등 바다 자원은 물론 해수와 기후를 활용해 질병을 예방하고 환자들의 재활을 돕는 것으로, 노르딕 워킹과 해변 요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산림 치유, 숲 치유에 비하면 해양 치유 개념이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을 필두로 해양 치유 시장이 급성장 중이다. 연평균 6.8%의 성장률을 보이는 웰니스 관광산업(2015년 글로벌 기준 638조 원)의 무려 37%가 해양 관광지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블루오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해양 치유 자원의 강국 독일은 북해 연안의 섬을 중심으로 해양 치유 시설 클러스터를 형성했으며, 시장규모는 연간 45조 원, 고용 인력만 45만 명에 이른다.

프랑스는 해양 요법을 대중적인 치료법으로 활용하며 사회보험으로 지원하는 등 나라에서 전폭적으로 산업 확대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도 2017년 10월 정부가 경남 고성군, 경북 울진군, 전남 완도군, 충남 태안군을 해양 치유 산업의 협력 지방자치단체로 선정하면서 이제 막 해양 자원을 활용한 치유 관광 산업의 닻을 올린 상황이다.

국내 유일의 섬학교를 운영하며 82개월간 섬을 찾아다닌 강제윤 교장(시인, 섬 여행가)은 “빼어난 자연경관과 잃어버린 고향의 원형, 토속적인 먹거리는 도시인들이 추구하는 힐링(치유)의 트렌드와 부합된다”며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오지이자 휴양지인 섬이 주목받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유희의 공간으로도 섬만큼 활용도가 높은 곳이 없다. 세종대 관광산업연구소가 조사한 여행 시 취미·운동 활동 계획에 따르면 여행 중 취미 활동 1위는 ‘낚시(40%)’다. 이어 등산(31%), 해양 스포츠(28%), 골프(17%) 순으로 나타났다. 이 모든 취미 활동을 다 수용하는 곳이 바로 섬이다. 특히 서핑, 스킨스쿠버(수중레저), 카누·카약 등 최근 뜨는 해양레저관광 수요처로서 제격이다. 섬에서 스킨스쿠버를 즐기는 정영환 씨는 “한국의 장엄하고 매력적인 바다 환경, 머리끝까지 온몸을 감싸는 알싸한 수온의 맛이 섬을 찾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휴(休)테크가 부(富)테크, 섬 투자 각광

휴식처 개념이 강해지면서, 섬은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에서 나아가 미래 가치로서도 재조명 받고 있다. 섬과 육지를 이어주는 교통 편의성 계획이 많아짐에 따라 개발 계획 또는 휴식처로서 섬 투자를 주목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가치가 오르면 값이 뛰는 것은 당연지사. 최근 수년간 중국인이 사랑하는 휴양지 제주는 물론 강화도의 땅값이 급등하며 섬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강, 바다, 호수 등을 바라볼 수 있는 ‘물’ 조망권에 도서 개발 계획까지 더해지면서 관광·휴양 수요가 섬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휴(休)테크가 가져온 부(富)테크’다.

부동산중개업 관계자는 “지가가 다른 곳보다 낮아 육지와의 거리감이 좁혀지면 지가 상승 폭이 훨씬 높다”면서도 “대부분의 섬이 개발제한구역에 지정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수도, 전기발전기 등의 문제로 많은 제약 사항을 동반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섬에 대한 관심을 입증하듯 오는 8월 8일 역사적인 ‘섬의 날’도 제정된다. ‘섬의 날’은 국민들이 섬의 중요성을 함께 느끼고 섬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문화를 다 같이 즐기기 위한 날이다.

오랫동안 소외당했던 섬 주민들이 자긍심을 회복하고 섬의 새로운 발전을 기획하는 것은 물론 관광자원으로 섬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섬은 국민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자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이라며 “섬의 날 제정과 체계적인 발전 계획을 통해 섬이 가진 잠재력을 깨워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big story]섬에서 쉼표를 찍다
한국의 섬이 궁금해요!

우리나라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섬이 많은 ‘다도해(多島海)’의 나라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국내 섬(도서)은 3348개소다. 이 중 유인도서는 472개소(14.09%), 무인도서는 2876개소(85.91%)다. 전체 도서 면적은 3853㎢으로 전 국토의 약 3.9%를 차지한다. 이 중 유인도서 면적은 전체 도서 면적의 98.0%다.

시도별로 보면 전남 지역에 위치한 도서 수가 가장 많으며 면적으로도 전체 도서 면적의 절반을 차지한다. 전남 지역의 도서 면적은 1829㎢로 전체 도서 면적의 48.1%에 달해 약 절반에 이른다. 이어 경남 지역의 도서 면적이 931㎢로 24.5%를 차지하고 있다.

도서 수로도 전남 지역과 경남 지역의 도서 수는 각 2011개(60.2%)와 564개(16.9%)로 전체의 77.1%를 차지해 전국의 도서 4개 중 3개가 전남과 경남에 자리 잡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유인도서는 제주특별자치도를 제외하고, 거제도(경남 거제시 소재)가 있으며, 무인도서는 선미도(인천 옹진군 소재)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0호(2019년 0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