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암 보험금 분쟁은 보험업계의 오랜 ‘아픈 손가락’이다. 약관 해석을 두고 벌어진 논란은 보험사에 따라 수용 여부가 확연하게 엇갈려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끝나지 않은 암 보험금 분쟁 ‘안갯속’

2015년 유방암 진단을 받은 K씨는 약 4개월간 요양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후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대형 생명보험사인 A사는 ‘암의 치료를 직접 목적으로 하는 입원’이 아니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그런데 만일 K씨가 같은 상황에서 손해보험사에 해당 보험금을 청구한다면? 보험금을 받을 확률은 100%에 가깝다. 그는 금융감독원이 안내한 ‘암 보험 관련 지급 권고’ 대상이다. A사가 아닌 다른 생명보험사에 가입했더라도 같은 병명과 치료로 보험금을 받을 가능성은 2배 가까이 올라간다.


보험 소비자로선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약관 해석 문제에서 출발한 암 입원비 분쟁은 특정 보험사와 금융당국, 소비자 간 힘겨루기로 변질된 양상이다.


약관 개정, 금감원 지급 권고에도 분쟁 여전


‘암 입원비’의 보험금 지급 거절 또는 과소 지급 문제는 보험업계의 ‘뜨거운 감자’다. 2018년 생보업계의 민원 증가율은 2만1607건으로 전년보다 18.8% 치솟았다. 이 중 암 입원보험금(2125건) 민원이 약 10%를 차지한다. 분쟁은 과거 보험사 암 보험 약관 지급기준표에 명시된 ‘암의 치료를 직접 목적’이라는 불명확한 표현에서 비롯됐다. 보험사는 ‘암의 치료를 직접 목적’이라는 부분을 엄격하게 해석해 보험금을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소비자는 암 때문에 입원하는 경우에 포괄적으로 보험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분쟁이 불붙었다.


2014년 4월 보험사들은 분쟁을 줄이려고 약관 조항을 ‘암의 치료를 직접 목적’에서 ‘암의 직접적인 치료 목적’으로 변경했다. 그럼에도 암의 직접적인 치료가 어떤 치료인지 구체적으로 정의되지 않아 논란이 이어지면서 금감원은 ‘암 보험 약관TF’를 구성하고 암 보험 약관 개선을 추진했다. 2018년 개정된 약관의 ‘암의 직접적인 치료 범위’에는 암수술, 항암방사선 치료, 항암화학 치료 등이 포함된다. 면역력 강화 치료나 암 치료로 인해 발생한 후유증 또는 합병증 치료 등은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금감원은 암보험 약관 개정 이전에 가입했던 계약에 대해서는 다음 3가지 기준을 마련해 보험사에 지급을 권고했다. △말기 암 환자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경우 △종합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요양병원에 입원한 경우 △암 수술 직후 요양병원에 입원한 경우 등이다. 이에 대해 보험사별 권고의 수용 여부는 확연하게 차이가 벌어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고용진(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암 입원보험금 관련 생명보험사 분쟁현황’에 따르면, 금감원이 지급 권고 결정을 내린 최근 2년 기준 분쟁 사례(988건) 중 손해보험사는 지급 권고 결정을 100% 수용했다(2019년 7월 기준).


반면 생명보험사 평균 전부 수용률은 55.3% 수준이다. 특히 삼성생명의 전부 수용률은 39.4%다. 한화생명(80.1%), 교보생명(71.5%), 오렌지라이프(70%), 미래에셋생명(77.7%) 등 다른 생명보험사에 비해서도 현격이 낮다.


삼성생명은 2019년 하반기 금융당국의 종합검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암 보험의 요양병원 입원비에 대해 ‘전문의 소견’을 전제로 보험금을 지급키로 한다는 방침이 알려졌지만, 암 환자들과의 갈등은 여전한 상황이다.


암 환우 모임인 보암모(보험사에 대응하는 암 환우 모임)의 김근아 공동대표는 “삼성생명이 전문의 소견을 전제로 지급한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고 어떠한 잣대를 내세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민생팀장은 “삼성생명에 대한 금감원의 종합검사가 종료됐는데,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암 보험금 분쟁 없이 받으려면

끝나지 않은 암 보험금 분쟁 ‘안갯속’
국립암센터에 의하면 기대수명까지 살 경우 암 발병 확률은 남자는 38.3%, 여자 33.3%이다(2016년 기준). 우리나라 사망 원인 중 1위가 암이다. 이러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암 보험에 가입하는데, 보험 분쟁이 잇따른다면 보험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금감원은 분쟁을 줄이기 위해 약관을 개정해 ‘암의 직접적인 치료 범위’를 제시하고, 요양병원 암 입원보험금을 별도 분리해 특약을 신설토록 했다. 이로써 암의 직접적인 치료 범위가 제시되면서 분쟁의 여지는 줄었으나, 소비자의 권리는 더욱 축소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종전보다 보험금 지급 범위가 좁혀졌고, 요양병원 암 입원보험금은 별도의 보험료를 내야만 보장을 받게 돼 오히려 개악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보험설계사들은 ‘암 입원 일당’은 가성비가 상대적으로 낮고 불필요한 특약으로 인식된 지 이미 오래라는 반응이다. 암 보장은 크게 진단비와 치료비로 나눠서 보장받는다. 진단비는 진단을 받으면 지급되는 보장이고, 치료는 암 수술, 암 입원 등의 특약으로 나눠서 보장된다. 방주일 메가리치 본부장은 “분쟁의 소지가 큰 암 입원 보장에 대한 보험료를 줄이고, 암 진단만 받으면 지급되는 진단비를 상향시키는 설계가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보험연구원 ‘암 보험 주요 분쟁 사례 연구’에 따르면, 암 입원비 분쟁 외에도 암 진단 확정 방법, 암의 분류 기준, 재발 관련 규정 등 사례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사례에 대해 의사들 사이에서도 판단이 서로 일치하는 않는 경우도 많고, 의학 기술의 발달 등에 따라 약관 작성 시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


보험연구원은 암 보험금 해당 여부의 판단에 공신력 있는 자문의 제도를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보험사의 의료 자문은 대부분 자회사에서 이뤄지는 보험금 지급 거절을 위한 방편으로 악용돼 왔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보험협회를 통한 의료 자문 방안 등이 추진되고 있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보험협회를 통한 의료 자문도 객관적·중립적 자문이라기보다는 보험회사에 유리한 자문이라고 인식할 가능성이 여전히 있어 장기적으로 감독당국을 통한 의료 자문 절차나 보상 자문기구 제도를 마련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암 보험 가입 시 유의사항

❶ 소비자들은 주치의(임상의사)를 통해 진단서를 받게 되지만 현행 암 보험 약관에 의하면 원칙적으로 조직검사 등을 토대로 한 병리과 또는 진단검사의학과 의사의 진단이 우선한다.
❷ 암으로 확정 진단을 받은 시점에 따라 보험액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도 주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보험계약일로부터 90일 동안은 보장이 개시되지 않고, 90일 이후에 암으로 진단받는 경우라 하더라도 통상 보험계약일 이후 1~2년 내에는 보험금의 50%만 지급하는 경우도 많다.
❸ 암과 관련해 입원이나 수술을 한 경우에도 무조건 암 입원비나 암 수술비를 지급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러한 입원이나 수술이 암의 치료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만 보험금 지급 대상에 해당한다.
❹ 암의 종류에 따라 보험금의 액수가 달라질 수 있다. 그 세부적인 내용은 보험회사나 보험 상품에 따라 다양하므로, 소비자로서는 보험 가입 시 약관 등을 통해 해당 내용을 잘 확인할 필요가 있다.

현재 생명보험협회(www.klia.or.kr) 및 손해보험협회(www.knia.or.kr) 홈페이지에서도 보험회사별 암 보험 상품의 비교공시표 및 상품요약서를 제공하고 있다.
자료: 보험연구원 ‘암 보험 주요 분쟁 사례 연구’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6호(2020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