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시계 하면 열에 아홉은 롤렉스를 거론한다.하지만 시계를 알고 나면 롤렉스 이상의 다양한 브랜드와 재미를 만날 수 있다. ‘시계덕후’ 이상문 페니워치 컨시어지 대표가 전하는 시계 수집 노하우와 철학을 들어봤다.

이상문 페니워치 대표 “시계, 예술품처럼 즐깁니다”
[한경 머니 = 문혜원 객원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20년 시계 애호가, 전문가가 되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의 빌딩 숲 사이로 멀리 청와대까지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상문 페니워치 대표의 사무실이 있다. 이 대표가 운영하는 페니워치는 국내에서는 전무했던 시계 컨시어지다. 이곳에서 그는 페니워치 회원에게 전반적인 시계 구입에 대한 컨설팅을 진행한다. 고가의 시계를 구입하는 만큼 소비자의 취향을 듣고, 그에 대한 구입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 고객이 원하는 시계를 구매 대행하기도 한다. 시계를 구입하는 데에 컨설팅까지 필요할까 싶지만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꽤나 만족도가 높은 서비스다.


“국내 시계 시장에서는 실제적인 정보가 많지 않아요. 해외 웹매거진에서나 정보를 찾을 수 있지만 시계의 외형적인 스펙이나 디자인 외에는 얻을 수 있는 게 드물죠. 특히 사용 후기나 리뷰는 정말 희귀해서 제가 경험한 것들이나 간접 경험한 것들에 대한 리뷰를 기록하는데, 고객들이나 애호가들 사이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십니다. 최근에는 시계를 투자 목적으로 구입하는 고객도 많은데 시계 가치가 어떻게 변할지, 가격이 오를 만한 아이템도 선별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가 본격적으로 업에 뛰어든 것은 불과 2년. 그전까지는 그도 수많은 시계 애호가들 중 하나였다. 시계에 대한 그의 사랑은 동호회에서도 남달랐다. 그의 커뮤니티 활동명인 ‘페니’만 들어도 업계에서는 무릎을 탁 칠 정도였다. 시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견문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그는 취미로만 20여 년간 시계를 즐기다가 마흔이 되던 2018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계 컨설팅회사를 열었다. 그는 “나이 마흔은 취미를 일로 즐기기 좋은 때다”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시계는 온전히 즐기기만 하기에는 너무 비싼 취미잖아요. 저는 시계에 더 파고들고 싶었지 어중간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아내가 오히려 저를 독려했어요. 나이 오십에 새로운 일 한다고 도전하지 말고, 하려면 지금 하라고요.”


현재 페니워치의 정기 회원은 24명. 이 중에는 기업의 대표도, 유명한 연예인도 있다. 이들은 분기에 한 번 정기모임을 갖는데 시계 얘기와 정보가 주를 이룬다.


“시계는 아무래도 사치품이란 인식이 크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즐기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희 모임에 오는 사람들은 시계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만 모이죠. 시계에 몇십억을 투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시계 수집에도 노하우가 있다

(위부터) ❶오데마피게의 스타휠❷ F.P.쥬른의 크로노미터 블루❸ 파텍필립의 퍼페추얼 캘린더 3941J
(위부터) ❶오데마피게의 스타휠❷ F.P.쥬른의 크로노미터 블루❸ 파텍필립의 퍼페추얼 캘린더 3941J
파텍필립의 위클리캘린더 5212A. (아래)오데마피게의 로얄오크 15202ST.
파텍필립의 위클리캘린더 5212A. (아래)오데마피게의 로얄오크 15202ST.
취미가 일이 됐을 때의 좋은 점은 취미활동을 하면서도 생업을 이어간다는 점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취미인 ‘시계생활’을 즐긴다. 그는 디자인별로, 무브먼트별로, 브랜드별로 시계를 수집한다. 또 자신이 경험한 시계나 새롭게 출시된 시계에 대한 리뷰를 블로그에 상세히 남기기도 한다.


“기계식 시계를 취미로 접한 후 제겐 많은 즐거움이 있었어요. 시간이라는 개념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좋았고, 무브먼트의 기계적인 매력, 다이얼과 피니싱의 예술적 표현, 깊은 역사와 흥미로운 변천사들도 그렇죠. 매일 손목에 올리며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실용성도 있는 게 시계인 데다가 투자로서의 가치도 지니죠. 시계를 매개로 만나는 많은 사람들도 빠질 수 없습니다. 시계가 주는 즐거움이 이렇게나 많은데 국내 시장은 천편일률적으로만 흐르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컨시어지를 시작한 후에는 조금 더 사명감이 생겼다.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희귀한 시계도 구입해 수집하는 것이다. 그는 요즘 1990년대 시계에 주목한다. 시계업계에서 1990년대는 쿼츠 파동이 있은 후 다시 기계식 시계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시작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 대기업이 작은 시계회사들을 인수하기 전이어서 시계들마다 특색이 살아 있는 시기가 바로 이때다.


“너무 상업화되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시계업계에서는 낭만이 있던 시기이기도 하죠. 회사별로 특징이 분명한 시계를 만들었거든요. 돈이 될 만한 시계나 이해타산을 고려하지 않았죠. 시계 그 자체를 즐기기에 충분히 매력적 시기였어요.”


그가 인터뷰할 때 착용한 시계도 1990년대 제작된 시계다. 최근 구입한 이 시계는 오데마 피게 스타휠이다. 평범한 시계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간을 표시하는 방법이 독특하다. 길고 짧은 시침과 분침이 시계를 도는 것이 아닌 3개의 숫자판이 맞물려 돌면서 시간과 분을 알리는 것이다. 그는 이렇듯 독창적인 시계에 매료돼 이를 수집하고 알리는 데에도 몰두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시계 시장의 현실과도 맞물린다. 스위스 시계회사에 한국 시장은 세계 10위 안에 들 만큼 큰 시장이지만 시계를 즐기는 문화나 즐길 거리는 턱없이 부족한 편이다. 시계를 찾는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롤렉스만 찾는다. 그저 부를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만 시계를 구입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그는 시계를 보다 깊이 들여다보면 더 다양한 브랜드가 있고, 시계가 주는 다양한 재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독립 시계 브랜드에 주목한다.


“독립 시계 제작자 중 가장 성공한 브랜드가 F.P.쥬른이란 브랜드입니다. 프랑스 사람이 디자인한 시계인데 스위스 제네바를 기반으로 시계를 만들고 있죠. 시계가 굉장히 독창적이면서 품질이 좋은 시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시스템도 잘 갖춰져 사후관리(AS)나 고객만족(CS)도 괜찮은 편입니다. 아쉬운 점은 일본, 홍콩, 베이징 등 아시아의 큰 시장은 다 있지만 국내에는 아직 들어오지 않은 점이죠. 우리가 저변을 넓혀 가야 하는 숙제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그의 컬렉션 중 끝까지 남을 만한 시계는 어떤 걸까. 그는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1931 모델을 꼽았다.


“나온 지 90년 가까이 된 모델이에요. 80주년 기념으로 복각된 모델이긴 한데 리베르소만의 독특한 감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아들도 탐내서 대를 이어 물려주고 싶은 시계이기도 하죠.(웃음)”


시계, 투자에 눈을 뜨다

이상문 페니워치 대표 “시계, 예술품처럼 즐깁니다”
시계가 투자로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은 2014년 11월 소더비 경매에서 시작됐다. 파텍필립 헨리 그레이브스 슈퍼 컴플리케이션 포켓워치가 약 2300만 스위스 프랑, 한화로 270억 원가량에 판매된 것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시계가 미술품과 같은 가치가 있다는 것에 눈을 뜨게 됐다.


“미국의 영화배우인 폴 뉴먼이 찼던 롤렉스 데이토나는 이러한 생각을 대중에게 전파한 시계입니다. 2017년 필립스 경매에서 약 1700만 달러, 한화로 약 200억 원에 판매되면서 큰 이슈가 됐거든요. 이때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시계를 투자 가치가 있는 재화로 규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2017년은 데이토나와 파텍필립 노틸러스 등이 급격하게 프리미엄이 붙기 시작했던 시점이었고 그 광풍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 시점을 기준으로 많은 사람들이 시계를 단순히 취미가 아닌 투자도 겸할 수 있는 예술 작품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19년 11월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8회 온리 워치’ 자선 경매 행사에서는 ‘세계 최고가 시계’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파텍필립의 그랜드 마스터 차임 Ref.6300A-010으로 3100만 스위스 프랑, 한화 약 362억 원에 낙찰돼다. 유명인의 스토리가 없이 시계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가격에 팔린 것이다.


이 대표는 “시계 경매의 방향성은 앞으로 시계를 투자 가치가 있는 재화로서 더 높은 위치에서 보게 할 것이고, 어떤 모델이 가치 있는 모델인지에 대한 질문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시계를 즐기는 5가지 방법


이상문 페니워치 대표는 시계를 ‘즐긴다’고 표현한다. 시계를 보는 것이 아닌,
즐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가 소개하는 5가지 시계 즐기는 법을 소개한다.


➊ 역사로 즐기기
기계식 시계의 역사는 상당히 넓고 깊다. 기계식 손목시계가 처음 선보인 것이 100년 전이지만 회중시계(포켓워치)는 16세기, 괘종시계와 탑시계까지 이야기한다면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기계식 시계의 역사가 길다 보니 시계 브랜드의 역사도 긴 편이다. 예를 들어 1755년에 세워진 바쉐론 콘스탄틴이나 1839년에 세워진 파텍필립 등은 창립 후 단절 없이 현재까지 이어져 온 브랜드들인데 오랜 역사에 다양하고 흥미로운 스토리들이 있다. 단일 시계의 역사 또한 즐길 수 있는 소재가 된다. 1904년에 선보인 까르띠에 산토스, 1931년에 선보인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1953년 출시된 롤렉스 서브마리너 등은 시계 자체의 역사만으로도 커다란 선물 꾸러미가 된다.


➋ 무브먼트로 즐기기
기계식 시계의 심장은 무브먼트다. 칼리버라고 불리기도 하는 무브먼트는 약 200개 정도의 정교한 부품이 맞물려서 움직이고 시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계식 시계의 무브먼트는 크게 2가지로 구분되는데 손으로 크라운을 돌려 태엽을 감는 수동식이 있고, 움직임에 따라 로터가 회전해 자동으로 태엽을 감는 자동식이 있다. 기능에 따라서는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가 있고, 시간을 들려주는 미니트 리피터 무브먼트가 있으며, 일과 요일뿐 아니라 달과 연을 모두 표시해 주는 퍼페추얼 캘린더 무브먼트가 있다. 이외에도 매우 다양한 기능과 형태의 무브먼트 조합이 있어 기계식 애호가에게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무브먼트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데커레이션과 피니싱이 진행되는데, 이 또한 무브먼트를 즐기는 좋은 요소가 된다.


➌ 디자인으로 즐기기
기계식 시계는 전체적인 디자인이 비슷해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매우 다양한 케이스와 다이얼 형태가 있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라운드 형태의 케이스다. 하지만 정사각형, 직사각형, 팔각형, 토노형 등 다양한 케이스가 있으며, 다이얼도 재질과 인덱스 형태, 그리고 배치에 따라 전혀 다른 시계가 된다. 또한 독일의 노모스 글라슈테는 바우하우스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심플하면서도 기능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이 돋보인다. 칼 F. 부케러는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받아 비대칭의 과장되고 입체감 있는 시계를 만든다. 우르베르크와 같은 시계 브랜드는 아방가르드 양식의 조금은 독특하고 실험적인 디자인의 시계가 많다.


➍ 투자 관점으로 즐기기
지난 2~3년간 시계 경매는 상당히 활발해졌고 각종 경매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시계들이 많이 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빈티지 시계뿐 아니라 특정 브랜드의 특정 모델들은 현행 품인데도 불구하고 품귀 현상을 일으키며 상당한 프리미엄이 붙고 있다. 물론 구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지만, 구할 수만 있다면 감가상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면서도 상당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취미이기도 하다.


➎ 모임으로 즐기기
국내에서 시계 취미는 조금은 조심스러운 활동이다. 그래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을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만나기만 하면 그 폭발력은 대단하다. 시계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있기에 직업이 달라도, 연령대가 달라도, 술이 없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모임을 즐길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7호(2020년 0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