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사인증여란 증여자의 사망으로 인해 효력이 발생하는 증여로 상속 분쟁에 종종 등장하는 소재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사인증여 제도에 대해 소개한다.
유언과 사인증여, 효력의 조건은
민법이 정한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의 다섯 종류의 방식과 달리 유언서가 작성되면 법은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법원도 “민법 제1065조 내지 제1070조가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므로,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대법원 2006. 9. 8. 선고 2006다25103, 25110 판결)라고 판시했습니다.

최근 유명인의 유언서를 둘러싸고 그 효력 여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더군요. 그리고 유언으로서는 효력을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사인증여는 가능하다는 논의도 기사 말미에서 보았습니다.

저는 가정법원에서 상속 분쟁 재판을 하면서부터 사인증여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이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많은 분들이 사인증여에 대해 잘 모르고 계시더군요.

사인증여란 말 그대로 증여를 하는 것이지만 그 효력이 증여자의 사망으로 인해 발생하는 계약입니다. 보통 증여자가 생전에 무상으로 재산의 수여를 약속하고 증여자의 사망으로 인해 그 약속의 효력이 발생하는 계약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계약은 청약과 승낙이라는 서로 대립되는 의사표시가 합치됨으로써 성립합니다.

한편 유언은 유언자의 사망과 동시에 일정한 법률효과를 발생시킬 목적으로 일정한 방식에 따라서 하는 상대방 없는 단독 행위이고, 유언으로 상속인 또는 제3자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것을 유증이라 하는데 유증은 유언에 의한 것이라서 단독 행위입니다.

유증을 둘러싸고는 빈번하게 소송이 제기되지만 사인증여가 문제된 사례는 아주 적습니다. 하지만 사인증여는 우리 일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의 재판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A씨는 친구 2명과 B씨가 있는 자리에서 본인이 사망하면 특정 부동산을 B씨에게 주겠다는 말을 했고, B씨는 이를 승낙했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제안에 따라 유언공증을 했는데 나중에 증인의 자격이 문제가 돼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이 무효가 됐습니다.

하지만 사실관계는 A씨가 사망하면 부동산을 B씨에게 주겠다는 것이고 이것은 전형적인 사인증여인 것이죠. ‘동경고판(東京高判) 소화 60. 6. 26.’ 판결은 위 사안에서 유언은 무효이지만 위 공정증서는 위 증여 사실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 사인증여의 성립을 인정했습니다.

위 사안의 내용은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 생전에 이 집을 줄 수 없지만 내가 죽으면 00에게 주겠다’라는 내용을 유언으로만 남길 수 있다고 알았지만 실은 유언대용신탁계약으로 사용하고 있고, 이처럼 특정인과 사이에 증여계약으로도 그 목적을 관철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인증여를 인정한 사례가 여럿 있는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한 여성이 남편과 혼인해 아들 둘을 낳고 살았는데 남편은 사망하고 아들들은 모두 한국전쟁 중 전사했습니다. 그 후 전몰군경 유족으로서 국가로부터 지급받은 연금을 모아서 그 마을에 살다가 타지로 이사 가는 사람으로부터 토지를 매수하고, 시숙과 그 아들을 데려와 그 토지를 경작케 하며 같이 살다가 자신이 사망하면 그의 재산을 모두 시숙의 아들인 본인의 시조카에게 주기로 포괄적인 사인증여를 하고 사망한 사안에서 시조카의 상속인(시조카도 그 토지를 둘러싸고 소가 제기됐을 때는 이미 사망)에게 그 토지의 소유권을 인정한 내용입니다.

이 여성이 토지를 시조카에게 주겠다는 유언서를 작성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사망하면 전 재산을 모두 주겠다는 ‘증여계약’을 시조카와 한 이상 시조카가 그 토지를 상속받았다고 인정한 것입니다(대법원 1996. 4. 12. 선고 94다37714, 37721 판결 요약).

또 다른 사건을 더 살펴보겠습니다. C씨는 자신이 입원 중이던 병실에서 2명의 증인이 입회한 가운데 자신의 재산 중 대부분을 장학기금으로 출연하고, 나머지 1억6000만 원을 D·E·F씨에게 각각 증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유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C씨의 유언은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으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고, 이에 D·E·F씨가 사인증여에 해당한다며 위 돈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고, 법원은 사인증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C씨가 유언을 할 때 그 병실에는 D·E씨가 있어 내용을 잘 알았고, F씨는 그 자리에는 없었지만 알게 되자 바로 C씨에게 가서 이런 내용으로 유언을 해 줘서 고맙다고 말을 하며 감사의 뜻을 표시한 사실이 인정됐기 때문입니다(대법원 2005. 11. 25. 선고 2004두93 판결 요약).

반면 사인증여가 인정되지 않은 사례도 있습니다. G씨는 자신의 유고 시 그 소유의 모든 재산을 H씨에게 기부한다는 내용의 자필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자필증서 유언으로서 인정되지 않자 사인증여를 주장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위 사건의 유언장은 은행의 대여금고에서 발견돼 과연 G씨의 사인증여 의사가 H씨에게 발신, 도달됐다고 인정하기 어려워 사인증여가 인정되지 못했습니다. 앞에서 적었지만 사인증여는 계약이고, 계약은 당사자 사이에 의사가 일치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재판에서 문제된 사례를 중심으로 약간 생소할 수도 있는 사인증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나 죽으면 이것은 너 가져라”라는 말을 장난처럼 하면 안 되겠죠? 상대방이 덥석 “고맙습니다” 하면 사인증여 계약이 성립된 것이니까요.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5호(2020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