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연금의 ETF 활용법은

[한경 머니 =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 개인들의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관심은 연금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연금저축과 퇴직연금(DC, IRP) 적립금도 ETF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금저축과 퇴직연금에서 ETF를 사고팔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


떨어지는 칼날을 맨손으로 잡을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 떨어질지 가늠하기 힘든 칼날을 괜히 맨손으로 잡았다가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증시 격언에도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말라’는 말이 있다. 주가가 급락할 때 섣불리 매입하지 말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개인투자자들은 맨손으로 떨어지는 칼날을 잡았다.


폭락장에서 공포에 휩싸이지 않고 주식 매수에 나선 것이다. 과거 여러 차례 위기 상황에서 급락했던 증시가 빠르게 회복하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예상이 적중한 듯 보인다.


코로나19 이후 개인 ETF 투자 급증


같은 기간에 ETF 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개인들의 ETF 투자자금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ETF란 거래소에 상장돼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는 인덱스 펀드다.


개인투자자의 ETF 활동 계좌는 올해 1월 말까지만 해도 26만8000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증시가 급락했던 3월부터 활동 계좌 수가 급증하기 시작해 4월 말에 80만 개에 이르렀다. 계좌 수와 함께 잔고도 크게 늘어났다. 2019년 말 5조3000억 원 남짓이었던 개인투자자의 ETF 잔고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올해 3월 말 8조4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후에도 증가세는 이어져 5월 말에는 잔고가 10조 원에 육박하고 있다.

똑똑한 연금의 ETF 활용법은

올해 3600억 원 늘어난 연금 내 ETF 투자


그러면 올해 들어 ETF에 투자된 연금 자산이 얼마나 늘어났을까. 연금저축과 퇴직연금 적립금은 ETF에 투자할 수 있다. 다만 ETF는 증권사에서만 사고팔 수 있기 때문에 은행과 보험사에 연금저축과 퇴직연금 계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증권사로 해당 계좌를 옮겨야 한다. 다만 연금저축과 퇴직연금에서 ETF를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두지 않은 증권사도 있기 때문에 이체 전에 거래가 가능한지 확인해야 한다.


연금자산을 ETF에 투자할 수 있는 주요 6개 증권사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해 연말까지만 하더라도 ETF에 투자된 연금 자산은 4500억 원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올해 5월 말에는 그 금액이 80%나 늘어나 8200억 원이 됐다. 연금과 ETF의 만남이 본격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만남을 주선한 것은 코로나19 사태이지만, 서로가 호감을 갖게 된 데 있어 제로(0)금리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연금저축과 퇴직연금 시장을 합치면 그 규모가 360조 원이 넘는다. 여기에 비하면 ETF에 투자된 자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제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느냐고 타박만 할 일은 아니다. 거꾸로 ETF로 이동할 자금이 그만큼 많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때 자금 이동을 일으키는 에너지원은 제로금리다.


자금 이동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일어날 수 있다. 먼저 연금계좌 내 이동이 있을 수 있다. 현재 연금저축과 퇴직연금 적립금 중 80~90%는 예금과 보험 등 금리형 상품에 맡겨져 있다. 제로금리가 장기간 지속되면 이들 자금이 보다 나은 수익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일반 증권계좌에서 거래되던 ETF 자금 중 일부가 연금계좌로 이동할 가능성도 크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국내 주식 매매차익에 대한 과세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상대적으로 세 부담이 적은 연금계좌 내에서 ETF 거래를 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똑똑한 연금의 ETF 활용법은
글로벌과 테마 ETF에 투자하는 연금가입자


연금가입자들은 어떤 ETF에 투자할 수 있을까. 연금저축과 퇴직연금 가입자 모두 레버리지ETF와 인버스ETF에는 투자할 수 없다. 여기에 퇴직연금 가입자는 몇 가지 제약이 더 따른다. DC와 IRP 계좌 적립금 중 70% 이하만 위험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


주식 비중이 40%가 넘는 ETF는 위험자산에 해당된다. 따라서 주식형 ETF에 적립금 중 70%를 투자했으면, 나머지 30%는 채권형 ETF에 투자하면 된다. 그리고 퇴직연금에서는 파생상품을 활용한 원자재 ETF에도 투자할 수 없다. 금·은·원유 ETF가 여기 해당한다. 올해 5월 기준으로 국내 상장된 ETF가 448개인데, 이 중 개인연금에서는 362개, 퇴직연금에서는 319개 ETF에 투자할 수 있다.


연금가입자는 어떤 ETF에 많이 투자하고 있을까. 연금저축과 퇴직연금 가입자가 많이 가입한 ETF를 각각 10개씩 추려 봤더니, 글로벌 ETF와 테마형 ETF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중에서도 미국, 중국, 베트남 등 글로벌 ETF가 확실히 두드러졌다.


최근 들어 해외투자가 많이 수월해졌지만, 그래도 개인이 투자 대상 기업을 일일이 찾아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전도유망한 기업이 다수 상장돼 있는 글로벌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 투자하면 시간과 노력을 상당 부분 절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고르면,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테슬라와 같은 기업에 자연스레 투자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과 2차전지에 투자하는 테마형 ETF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테마형 ETF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크게 영향력이 발휘하거나 트렌드를 형성할 만한 곳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상품이다. 테마형 ETF의 가장 큰 장점은 이름만 들어도 어떤 기업에 투자하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차전지 ETF를 선택하면 전기자동차에 공급되는 2차전지 생산과 관련된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

똑똑한 연금의 ETF 활용법은

순자산가치와 괴리율을 확인하라


연금저축과 퇴직연금에서 ETF를 사고팔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 ETF는 좌수 단위로 거래된다. 회사의 순자산총액을 주식 수로 나누면 주당 순자산가치(NAV)를 구할 수 있듯, ETF의 순자산총액을 발행된 좌수로 나누면 좌당 NAV를 구할 수 있는데, 이를 ‘기준가격’이라고 한다. 이 기준가격에 ETF를 사고팔면, 제값을 받고 매매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ETF 거래가 매번 기준가격에서 이뤄지지는 않는다. 매수세가 많을 때는 기준가격보다 비싸게 거래되기도 하고, 반대로 매도세가 강하면 싸게 거래되기도 한다. 이때 기준가격과 시장가격의 차이를 괴리율이라고 한다. 좌당 기준가격이 1만 원인 ETF가 1만100원에 거래되고 있으면, 괴리율이 1%가 되는 셈이다.


ETF 거래를 할 때 어느 정도 괴리율이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수요와 공급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ETF에서 분배금을 지급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주식투자자가 받는 배당처럼 ETF 투자자는 분배금을 수령하는데, 여기에는 배당소득세가 부과된다. ETF 보유자가 배당소득세를 피하려면 분배금 지급이 결정되기 전에 매도해야 하는데, 매수자 입장에서는 본인이 배당소득세를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 낮은 가격에 매수하려 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준가격보다 낮은 가격에서 거래가 이뤄지곤 한다.


ETF가 해외자산에 투자하는 경우 국내와 해외의 시간 차이 때문에 괴리율이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국내 증시가 문을 닫은 시간에 미국 기술주 가격이 크게 상승하거나 하락하면, 이들 주식을 편입한 국내 ETF의 괴리율이 높아진다. 미국 증시가 쉬고 국내 증시는 개장한 날에도 괴리율이 발생할 수 있다.


가격제한폭의 차이로 인해 괴리율이 발생하기도 한다. 주식시장에서 하루 동안 개별종목의 주가가 오르내릴 수 있는 한계를 가격제한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주가 변동으로 인한 시장 혼란을 막기 위해 가격제한폭을 30%로 정하고 있는 데 반해, 미국은 가격제한폭을 두지 않고 있다. 따라서 미국 증시에 상장된 주식이 30% 이상 큰 폭으로 출렁이면, 이를 담은 국내 ETF의 괴리율이 확대된다.


개장 후 5분 내 시장가 거래를 피하라


괴리율 때문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괴리율이 일정한 수준을 넘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유동성공급자(LP)’가 있기 때문이다. ETF 거래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팔려는 사람이 내놓은 매도호가와 사려는 사람이 내놓은 매수호가가 많이 쌓여 있어야 한다. 이때 최우선 매도호가와 최우선 매수호가의 차이를 스프레드라고 하고, 스프레드를 최우선 매수호가로 나눈 값을 스프레드 비율이라 한다. LP는 스프레드 비율이 일정 범위(통상 1% 내외)를 초과하면 5분 이내에 매도와 매수 양쪽에 호가를 제출해야 한다.


LP가 제 역할을 하더라도 괴리율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비정상적인 가격에 ETF를 사고팔지 않으려면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개장 직후 5분(9:00~9:05)과 폐장 직전 10분(15:20~15:30) 사이에 하는 거래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이때는 LP가 호가를 제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소에 거래량이 많은 ETF는 가급적 이 시간을 피해 거래하는 것이 좋다.


이해를 돕기 위해 2018년 12월 27일에 ETF 거래에서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보자. 문제가 된 ETF의 전일 종가는 1만7700원이었다. 문제 발생 당일 9시 2분 17초 당시 최하위 매도호가는 2만150원, 최상위 매수호가는 1만8900원이었다. 이때 누군가가 시장가로 매수 주문을 냈다. 그러자 당시 최하위 매도호가 2만150원에 619주가 거래됐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전일 종가보다 주당 2450원(13.84%)이나 높은 가격에 ETF를 매수한 셈이다.


2분 30초 뒤에는 더 큰 일이 벌어졌다. 조금 전 주가가 급등한 것을 보고 어떤 투자자가 자신이 보유한 3555주를 시장가로 매도했다. 당시 최상위 매수호가는 7115원이었다. 매도자는 시장가격(주당 2만150원) 부근에서 매매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 거래는 주당 7155원에 이뤄졌다. 매도자는 시장가로 주문을 내는 바람에 5000만 원이 넘는 손해를 본 셈이다.
이 같은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LP의 호가 제시 의무가 없는 시간에는 가능하면 거래를 하지 않는 게 좋다.

똑똑한 연금의 ETF 활용법은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3호(2020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