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가 본 중년의 미니멀 라이프

[한경 머니 기고 =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언제부턴가 ‘버킷리스트’가 행복한 삶을 위한 표식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정신없이 바쁘고, 팍팍한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막연하고 거창한 채움보다는 일상의 작은 균열을 볼 수 있는 ‘비움’의 자세다.
[big story]당신의 시간표, 가득 채워야 하나요
알록달록한 간판 밑에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기분 좋은 도시의 소음과 예기치 못한 사건들. 도시의 삶은 풍족함과 새로움으로 가득해야 할 것 같은데, 실상은 별로 그렇지 않다. 버스 안에 붐비는 사람은 짜증스럽기만 하고, 시야를 가득 메우는 현란한 광고판은 눈을 어지럽게 한다.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눈은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시킨다. 그래야 이 거대한 공간에서 버틸 수 있으니까.

늘 밝지만 마음속 채워진 분노
남자는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대인관계도 좋았고 업무 능력도 탁월했다. 늘 밝은 표정으로 적극적으로 일을 해냈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아내와 귀여운 딸이 있었다. 평일에는 직장에서 헌신적으로 일했고, 주말에는 가족을 위해 봉사했다. 아침에는 영어 학원을 다니며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대학 친구도 자주 만나면서 인맥도 잘 유지했다. 부모님을 자주 찾아 뵙는 효자였고, 시간이 나면 봉사활동도 자진해서 하는 바른생활 사나이였다.

도대체 이 남자가 정신과를 찾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남자는 화가 난다고 했다. 아내를 봐도, 자식을 봐도 화가 났다. 지하철에서 비틀거리는 취객에게도 화가 났고, 전단지를 돌리는 아르바이트 학생에게도 화가 났다. 물론 표정은 늘 밝고 건강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러한 분노가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겉으로는 화를 낼 수 없었다. 꾹 참고 하루하루를 버텼다. 밖으로는 절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러더니 남자는 점점 귀가가 늦어졌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걱정이 된 아내와 같이 병원을 찾은 것이다.

“퇴근을 하면 아파트 지하주차장 구석에 차를 세워요. 시동을 끄고 불도 끕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차 안에 혼자 앉아 있어요. 점점 그 시간이 길어져요. 그러다 깜빡 잠이 들 때도 있죠. 하지만 그 시간이 저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에요.”

꽉 채워야 한다는 강박
방학 때 일과표를 만들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컴퍼스를 사용해서 둥근 원을 그리고, 가장자리에 시간을 표시한다.

6시 기상
6시 10분 운동
6시 30분 식사
6시 50분 아침 공부 시작…

이런 식으로 자정까지 빼곡히 들어찬 시간표. 물론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시간표다.

11시 기상
12시 먹다 남은 피자 먹기
13시 그냥 누워서 빈둥대기…

그렇다고 이렇게 시간표를 짜는 학생도 없다. 우리는 모두 지킬 수 없는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며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원하는 것이 80이라면, 목표는 100으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들 과도한 목표를 세우고, 그걸 달성하려고 허덕거린다.

원래부터 무리인 계획이니 패배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들이 무리수를 두고 있으니,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다. 자칫 한눈팔면 멀리 뒤처져 버린다. 그러니 이를 악물고 ‘처음부터 무리였던 방학 일과표’를 지키려고 기를 쓰는 것이다. 강박이 없으면 패배하는 세상이다. 시대적 강박이라고 할 만하다.

강박을 통해 잃은 건 자유
‘모범적인’ 삶이 그의 꿈은 아니었다. 하지만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직장에서 일하려면, 세상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제일 유리했다. 10년째 갚고 있는 대출금은 아직도 10년이 남았다. 대출금을 생각하면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고, 회사를 오래 다니려면 능력을 인정받아야 했다. 좋은 평판을 쌓아야 했고, 부모님도 건강해야 했고, 가족들도 화목해야 했다. 그렇게 삶 전체를 ‘사회가 나에게 기대하는 것’으로 꽉꽉 채워 버린 것이다.

원래 인간은 이렇게 살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선조들은 아주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가보지 못한 곳으로 사냥도 가고, 깊은 산속으로 열매도 따러 갔다. 가끔 그런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그랬다. 항상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사나운 포식자를 만나기도 했겠지만, 운 좋게 달콤한 벌통을 발견하기도 했다. 삶은 늘 뜻밖의 해프닝으로 가득했다. 당장 늑대를 만나 짧은 생을 마칠 수도 있다. 하지만 우연히 멋진 이성을 만나 뜻밖의 사랑이 시작될 수도 있다.
[big story]당신의 시간표, 가득 채워야 하나요
스펙터클한 모험과 진한 로맨스를 두루 갖춘 신나는 영화. 주인공은 밀림과 초원을 누비며 흥미진진한 삶을 즐긴다. 수백 명의 관객들은 주인공의 삶을 통해 자유를 향한 원시적 욕망을 대리 충족한다. 하지만 현실은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 팔걸이에 팔을 제대로 얹지도 못하는 강박적 삶이다. 좁은 공간에 300명이 앉아 영화를 보려면, 기침도 크게 해서는 안 된다. 강박을 통해 얻은 풍요와 안전을 대가로 자유로운 삶을 잃어버린 것이다.

인간은 도시에 맞춰지지 않았다
근면과 성실은 농경사회 이후에 발명된 덕목이다. 사람들은 마을과 도시를 만들어 모여 살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효율성이 치른 대가는 끔찍했다. 평생 좁은 곳에서 복닥거리며 살게 된 것이다.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화됐다. 공장 같은 분만실에서 태어나 곧 작은 요람이 빽빽하게 늘어선 신생아실로 자리를 옮긴다. 유치원, 학교, 직장, 가정, 심지어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삶의 스케줄은 빡빡하게 짜여 있다. 그리고 바둑판처럼 생긴 좁은 납골당에서 마지막 안식을 얻는다.
[big story]당신의 시간표, 가득 채워야 하나요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 교수에 의하면, 인류는 넓고 한적하며 푸른 공간을 좋아하도록 진화했다. 인간이 좋아하는 환경은 다음 세 가지 조건을 갖춘 곳이다. 첫째, 주변에 막힌 곳이 없이 탁 트인 곳, 둘째, 작은 언덕, 절벽 끝, 산꼭대기처럼 멀리 내다볼 수 있는 곳,

셋째, 물과 음식이 있는 호수나 강을 낀 곳이다. 우리의 유전자는 산업사회의 도시 생활을 위해 맞춰지지 않았다. 남자는 종일 비좁은 사무실에서 씨름했지만, 퇴근을 해도 역시 좁은 아파트였다. 퀴퀴한 지하주차장만이 유일하게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비움은 채움의 반대가 아니다
꽉 채워진 삶에 염증을 느낀 현대인들의 비움 찾기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로 떠나기도 하고, 골방을 만들어 빈둥거리는 시간을 가지려고도 한다. 목소리를 높여 저녁이 있어야 한다고, 주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비움’은 그저 분주한 일상에 지쳐 잠시 쓰러진 것에 불과하다. 긴장된 몸은 잠시 쉴 수 있겠지만, 모든 신경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돼 있다. 컴컴한 지하주차장에서 누리는 음침한 자유와 별반 차이가 없다.

이내 ‘비움’의 시간은 꽉꽉 채워진다. ‘#행복한나만의시간’이라고 해시태그를 단 포스팅을 수백 명의 팔로어에게 뿌리고, 100개가 넘는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조급하게 해치워 나간다. 안 그래도 꽉 찬 스케줄 사이에 ‘비움’이라는 이벤트를 억지로 끼워 넣는 것이다. 물론 제주의 민가를 찾아 멍하니 앉아 있으면, 잠시 기분이 좋아지긴 할 것이다. 하지만 1시간도 안 돼 휴대전화를 켜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게 될 것이다. 장담한다.

그러면 진정한 비움은 무엇일까? 비움은 채움의 반대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의외성에 귀를 기울이고, 일상의 가벼운 파열을 즐기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세상은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가득하다. 강박적으로 채워진 시간표와 ‘to do list’를 떼어 버리자. 도시는 우거진 숲이 되고 일상은 모험으로 바뀔 것이다. 지겨운 일상의 작은 균열을 엿보는 순간, 전에 보지 못했던 드넓은 ‘빈’ 공간이 눈앞에 확 펼쳐질 것이다.

박한선 전문의는…
현재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강의하며, 같은 대학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을 지내고 있다. 집필 도서로는
<정신과 사용설명서>,
<재난과 정신건강>, 옮긴 책으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