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꼬마 빌딩’ 뜨는 이유, 불안감이 키운 유행?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 최근 몇 년 새 일명 ‘꼬마 빌딩’이라고 불리는 50억 원 이하의 작은 상가건물이 부동산 시장의 대세로 떠올랐다. 세계적인 장기 불황과 인구절벽 시대의 불안감 속에서도 안정적인 수익률을 내며 자산가들의 투자 심리를 자극하고 있는 꼬마 빌딩의 투자 열풍을 따라가 봤다.

30년간 운영했던 신발 제조업체를 접고 몇 해 전부터 귀농 생활을 시작한 박인국(가명, 59) 씨는 얼마 전까지 골머리를 앓았다.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 여파로 올 초 5억 원가량 투자한 주식이 곤두박질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게는 현금 20억 원과 시가 6억 원 이상의 아파트를 2채가 남아 있지만 자식들과 손주들의 윤택한 미래를 위해서는 좀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고민 끝에 그는 은행 대출을 끼고 최근 서울 역삼동에 있는 36억 원대 중소형 빌딩을 매입했다.

이미 가격이 오를 대로 올라 큰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변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시세차익과 함께 투자수익률 4.5%대의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올리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초저금리 시대가 몇 년 새 이어지면서 최근 박 씨처럼 50억 원 이하의 꼬마 빌딩에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꼬마 빌딩은 대개 지상 3~5층 규모의 중소형 빌딩으로 금융상품의 기대수익률이 과거처럼 높지 않고, 수익형 부동산의 투자수익률이 웬만한 금융상품의 수익률을 상회한다는 점에서 안전한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산가들 사이에서 30억~50억 원대의 꼬마 빌딩은 없어서 못 살 정도라는 말도 심심찮게 나오는 상황이다. 이는 수치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중소형 빌딩 전문 중개업체 리얼티코리아에 따르면 서울의 2012년 50억 원 이하의 빌딩 거래량은 486건으로 2013년 잠시 주춤한 것을 제외하고 2014년 510건, 2015년 717건으로 꾸준히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200억 원 이상의 빌딩 거래량은 2012년 54건이었던 것이 4년 새 절반가량 줄었다.

올해도 그 흐름은 이어지는 양상이다. 지난 7월 빌딩 거래량은 총 209건(1조2648억 원)으로 이 중 50억 원 이하의 소형 빌딩 거래량은 145건을 기록, 전체의 69.37%를 차지했다. 특히, 50억 원 이하의 빌딩 거래량은 전월(64건) 대비 2.27배로 증가해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갈 곳 잃은 개인투자자들의 뭉칫돈이 빌딩 거래에 몰린 것이다.

이어 50억~100억 원 사이의 빌딩 거래량이 39건으로 조사됐고, 100억~200억 원 16건, 200억 원 이상이 9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서울 강남구에서 거래된 빌딩 총 거래량은 48건으로 전체 거래량의 22.9%를 차지했다.

전체 매수자 중 개인 고객이 73.6%를 차지했으며 법인은 26.4%로 집계됐다. 법인 매수자의 경우 전월 대비 8.4%포인트가 늘어난 수치지만, 50억 원 이하의 소형 빌딩 거래량이 급증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매수가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PB)들은 이처럼 자산가들이 50억 원대 이하의 꼬마 빌딩을 선호하는 이유로 ‘안전자산’이라는 점을 공통적으로 꼽았다. 사실, 최근 수익형 부동산의 평균적인 투자수익률은 4%대를 맴도는 수준이다.

대출이자 등 투자비용을 생각하면 임대수익만으로는 높은 투자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소위 알짜배기 자산가들은 건물보다는 땅 투자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꼬마 빌딩은 주변 상권을 잘 파악해 매입할 경우, 향후 리모델링이나 건물을 신축해 토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건물의 용도 변경을 통해 임대료 상승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산가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아울러 자산가들이 4%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빌딩 투자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소위 ‘레버리지’ 효과 때문이다. 레버리지 효과란 타인으로부터 빌린 자본(대출금)을 지렛대 삼아 자기자본이익률을 높이는 것을 의미하는데, 가령, 자기자본을 100% 투자할 때 수익률이 3%라면 융자를 통해 자기자본 비율을 낮출수록 자본 대비 수익률은 상승하게 된다.

물론 이 시나리오는 임대수익이 금융비용보다는 높아야 하는 것을 가정하기 때문에 저금리야말로 수익형 부동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베이비붐 세대와 그 이상의 연령층에서도 목돈을 현명하게 운용하려는 열기가 더해져 관련 매물 문의가 이어지는 양상이다. 다만, 꼬마 빌딩이 아무리 귀한 몸이라도 마구잡이 식 투자는 자칫 낭패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컨설팅부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자칫 높은 임대료에 혹해서 부동산을 매입하는 분들이 있는데 대개 부풀려진 경우가 많으니 임차내역서를 꼭 확인해야 한다”면서 “의외로 불법건축물도 적지 않기 때문에 자칫 확인하지 않고 구매할 경우, 책임은 최종 소유자에게 주어지는 만큼 꼼꼼히 확인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big story]‘꼬마 빌딩’ 뜨는 이유, 불안감이 키운 유행?
◆식지 않는 강남, 최근엔 강북도 ‘후끈’
그렇다면 투자자들이 군침을 삼키고 있는 꼬마 빌딩 투자 지역은 어디일까. 전문가들은 가장 유망한 투자처로 강남역 주변 중소형 빌딩을 꼽는다. 서울 강남역 주변 빌딩의 경우, 다른 지역에 비해 가격대가 높은 편이지만, 여전히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고 기대하는 자산가들이 많다고 한다.

또한 다른 지역보다 임차 수요가 높기 때문에 자산가들이 안정적인 빌딩 임대 수요를 유지할 수 있고, 임대 수요가 많아 임대료도 비싸게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강남 대신 강북 지역의 꼬마 빌딩 매입을 선택하는 자산가들도 적잖이 늘어나고 있다.

이영진 신한은행 PWM강남대로센터 PB팀장은 “선호도 면에서는 강남이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요즘은 강북으로 눈길을 돌리는 자산가들도 많다”며 “특히, 마포, 연희동, 서울지하철 9호선 등 주로 철길 지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도심 중심부로는 유동인구가 많은 종로나 광화문, 종로 3가, 시청 등도 적잖이 관련 매입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문소임 리얼티코리아 수석연구위원도 “연세대 신촌 상권인 창천동이 뜨겁게 재조명을 받고 있으며, 장기적인 자산 보유 차원에서 자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성수동, 동소문동 일대(성신여대입구역 근방)도 투자 열기가 불고 있다”면서 “특히, 동소문동 일대는 안정적인 유동인구의 흐름뿐만 아니라 우이 경전철 개통 공사가 진행되면서 추후 이 지역으로의 접근성이 더욱 좋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김장섭 JD부자연구소 소장 역시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인구절벽 시대를 앞둔 상황에서 (공급 과잉 문제 등) 아파트나 오피스텔은 더 이상 투자 수단으로서 메리트가 떨어진다”며 “이와 달리, 끊임없이 유동인구가 몰리는 강남 지역이나 광화문, 종로, 홍대 등 강북 내 수익형 부동산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자처가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초저금리 시대,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자산가들 사이 50억 원 이하 중소형 빌딩의 투자 열풍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 | 자료 제공 리얼티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