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시대]고령화 한국, 증여 고민 늘었다
[한경 머니= 한용섭 기자] 사전증여가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증여세 신고세액은 최근 5년간 49.8%나 상승했으며, 2015년에 처음으로 2조 원대를 돌파했다. 증여의 급증은 저금리와 고령화를 동시에 겪고 있는 한국 부모 세대들의 고민을 보여준다.

대형 마트의 할인 상품도 아니고 최근 서울 강남 요지의 한 재건축 아파트에서 큰 평수(165㎡, 215㎡)의 아파트를 분양받게 되면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덤으로 주는 일명 ‘원 플러스 원 아파트’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하나 더 분양받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자산가들의 속마음을 읽은 노림수였다.

저성장과 저금리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역설적이게도 지난해 상속·증여세가 역대 최고점을 찍은 대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또한 고령화된 부모 세대의 속마음이 수치상으로 드러난 걸까.

국세청이 지난 7월 5일 발간한 <2016년 1차 국세통계 조기 공개> 자료에 따르면 상속세 신고세액은 2조1896억 원(피상속인 수 5452명), 증여세 신고세액은 2조3628억 원(신고인원 9만8045명)으로 나란히 2조 원대를 넘어섰다.

상속세는 피상속인(사망자) 수가 전년에 비해 13.7% 늘며 2014년보다 신고세액이 5368억 원(32.5%) 늘어났다고 쳐도 ‘필수가 아닌 선택’ 사항인 증여세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린 대목은 눈길을 끈다.

증여세 신고세액은 2011년 1조5774억 원(7만9030명), 2012년 1조6392억 원(7만7789명), 2013년 1조7026억 원(8만993명), 2014년 1조8788억 원(8만8972명)으로 완만한 상승을 보이다가 지난해 2조3628억 원(9만8045명)으로 25.8% 급상승했고, 최근 5년(2011~2015년)을 보면 무려 49.8%가 오른 수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증가율은 최근 10년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5년간(2010~2014년) 상속·증여 소득만 172조2860억 원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해당 기간 총 상속재산가액은 54조9540억 원이었으며, 총 증여재산가액은 117조3320억 원에 달했다.

◆증여세 사상 최대 왜?

최근 상속·증여가 급상승한 데는 경기 둔화로 인해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이 활력을 잃으며 부모 세대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진 측면이 크다. 또한 고령화를 겪고 있는 부모 세대의 고민도 더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을 전후해 고도성장을 이뤘는데 당시 창업자들의 나이를 30대로 가정했을 때 현재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나이는 단순 계산만 해도 60~70대의 고령이다. 대기업 CEO의 고령화도 심각해 기업 경영 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500대 기업 CEO 586명을 조사한 결과 평균 연령이 59.3세로 전년도에 비해 0.4세 많아졌다.

앞서 산업화와 고령화를 겪은 일본만 보더라도 고령화 문제는 경제 전반에 큰 리스크가 되고 있다. 일본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일본 중소기업 CEO의 중간 나이는 1995년 47세에서 2015년 66세로 20년 사이 19세나 높아졌다.

이들 기업 중 상당수가 후계자를 제대로 찾지 못해 휴폐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시장조사 업체 데이코쿠데이터뱅크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휴폐업 건수는 총 2만3914건으로 도산 건수의 약 3배에 달한다.

기업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경우도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촉박해졌고, 이들 세대의 자녀에 해당하는 에코 세대(1979~1992년생)가 최근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어 자녀의 주택 구입 등 증여를 고민할 시기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상당수 금융권의 프라이빗뱅크(PB) 담당자들은 “자산가들의 최대 고민은 증여다”라고 말한다. 자식들을 대신해 70대 부모가 PB센터를 직접 방문해 빌딩 구입을 문의하고, 향후 부동산에 대한 증여를 상담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상혁 KEB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 세무팀장은 “증여세의 경우 신고만 해도 산출세액에서 10% 증여세액공제를 적용받고, 증여 후 10년이 지나면 상속세 계산 시 합산되지 않기 때문에 절세 차원에서 증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시는 것 같다”며 “일부 자산가들 중에서는 증여세에 대한 공제가 과거 양도소득세처럼 혜택이 없어지거나 축소될 수 있다고 보고 증여를 서두르시는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증여는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준비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다고 너무 어린 자녀에게 증여하는 것보다는 직장을 갖고 어느 정도 돈을 관리할 수 있을 때 증여하는 게 맞다”며 “자녀의 결혼이나 주택 구입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증여재산 공제 금액인 5000만 원이나 가장 낮은 증여세율 구간(10%)에서 1억5000만 원 정도 증여해 종자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증여시대]고령화 한국, 증여 고민 늘었다
◆상속 vs 증여 선택은?

상속세와 증여세 모두 최고세율은 50%로 동일하다. 과세표준 1억 원 이하는 10%, 1억 원 초과 5억 원 이하는 20%, 5억 원 초과 10억 원 이하는 30%, 10억 원 초과 30억 원 이하는 40%, 30억 원 초과는 50%의 누진세율을 적용받는다.

만약 상속재산이 10억 원 이하라면 증여는 불필요한 선택일 수 있다. 10억 원 이하의 재산이라면 일괄공제(5억 원)와 전액공제(5억 원)를 받게 되면 상속세를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증여는 피상속인의 사후 세금 폭탄의 강도를 줄여주기 위해 활용된다. 일종의 사전 플랜인 셈이다. 우선 증여는 신고만 해도 산출세액에서 10%의 증여세액공제를 받기 때문에 세금적인 측면에서 매력적이다. 다만 증여세를 신고하지 않는 경우 신고불성실가산세(20%)와 납부불성실가산세(하루당 0.03%)가 적용되며, 기한 내 신고하는 것과 비교해 40% 이상 세금 차이가 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대목이 부모가 자신의 통장에서 현금을 빼서 자식의 통장에 몰래 입금을 하면 국세청에서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부모가 5억 원의 현금을 자신의 통장에서 찾아서 5명의 자식들에게 1억 원씩 넣어주었다면 과세당국의 고액현금인출자료(CTR) 레이더망에 걸릴 수 있으며, 막대한 세금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증여는 상속세를 줄여주기도 한다. 상속인들에게 증여한 후 10년이 지나면 증여자의 상속재산에 10년 전 증여재산은 포함되지 않는다. 문제는 증여한 후 10년 이내에 증여자가 사망할 경우인데 10년 이내에 상속인들에게 증여한 재산은 상속재산에 포함된다.

경기가 좋지 않아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다면 오히려 증여에는 좋은 타이밍이 될 수도 있다. 증여세는 증여 당시의 가액에 따라 산출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향후 상승한다면 그만큼 세금은 줄고 증여재산은 증대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특히 아파트를 제외한 부동산의 경우 시세보다 낮은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증여세를 매기기 때문에 절세 효과가 더 크다.

소득 분산을 통한 절세 효과도 증여의 장점이다. 개인별로 금융소득이 2000만 원을 초과하거나, 부동산임대소득인 경우에는 금액에 상관없이 종합과세가 이뤄지는데 종합소득세는 과세표준이 1억5000만 원을 초과하면 41.8%의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사전증여를 통해 소득을 분산하면 소득세를 절세할 수 있고, 사전증여를 통해 자녀의 재산 취득에 대한 자금출처도 미리 마련할 수 있다.

증여는 다수의 자녀나 수증자(증여를 받는 자)가 있을 때 효과적이다. 증여세는 증여자가 동일인이면 10년간 증여재산을 합산하게 돼 있는데 배우자와 자녀, 사위나 며느리에게 증여를 할 경우 증여재산 공제[배우자 6억 원, 직계존비속 5000만 원(미성년자 2000만 원), 기타 친족 1000만 원]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증여시대]고령화 한국, 증여 고민 늘었다
◆‘부자 증세’ 태풍 부나

최근 자산가를 중심으로 증여가 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부자 증세 논란은 변수가 될 수 있다. 급격하게 노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에서 증여는 젊은 세대에게 자산을 조기에 이전시켜 사회 전체의 소비와 경제 활성화를 이룰 수 있다는 시각과 불경기 속에 서민들의 지갑은 얇아지는데도 부자들은 증여를 통한 재산 이전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불만이 급기야 법안 전쟁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정부는 지난 7월 28일 2016년 세법 개정안을 발표하며,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에 해당하는 중견기업의 범위를 조세특례제한법상 중견기업으로 개정하고, 국내 거주자가 비거주자에게 특정 국외 자산(해외 금융계좌나 국내 소재 재산을 50% 이상 보유한 외국 법인 주식)을 증여하면 증여자인 거주자에게 납세의무를 부과토록 하는 등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대한 미온적인 보완에 나섰다.

이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상속·증여 신고세액 공제 한도를 축소하고(10%→3%), 미성년자 증여에 대해 증여세율을 높이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세법 개정안을 제시, 부자 증세 논란을 점화시켰다.

현행 증여세를 사전에 신고하면 10% 신고세액공제를 해주는 부분은 다른 공제에 비해 과도하게 상속인과 증여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는 것이 야당 측의 주장이다. 과거에는 증여 현황을 파악하기 힘들어 탈세 방지를 위해 신고세액공제를 부여했지만, 현재는 금융거래정보 등을 통해 과세당국에서 촘촘하게 파악할 수 있는 만큼 불필요해진 공제 혜택이라는 것.

또 연령별 증여 차등과세제(10~50세 기준으로 연령별 세율 구간 마련)를 도입해 미성년자에게 과도한 주식을 증여하는 등 국민 정서에 어긋난 행태에 대해 높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이른바 야당의 부자 증세 주장에 대해 정부와 여당 측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여소야대 국회에서 상속·증여세에 대한 부분적인 손질은 불가피해 보인다는 관측이다.

이 같은 정치권의 증여세 논쟁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정치권이 개인 재산에 대한 세금 문제를 파워게임 양상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앞서 저성장과 고령화를 겪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고령의 부모가 나이 든 자식 세대에게 상속을 하는 ‘노노(老老) 상속’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정책적으로 증여를 권장하는 분위기인데 증여를 정치적 논쟁 거리로 만드는 것은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60세 이상의 부모가 20세 이상의 자녀와 손자에게 재산을 생전에 물려주면 증여받을 당시 냈던 증여세를 상속 시 공제해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더해 부모가 자녀의 주택 구입 자금, 결혼 비용, 교육·육아 자금을 도와주는 데 대해서도 비과세 정책을 펼쳐 호응을 얻고 있다. 이는 노인 세대에 자금이 머물면서 경제와 소비가 침체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세법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소순무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부의 불평등을 정책이 아닌 세금으로 풀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라며 “나라 살림과 관련한 세금과 개인의 재산권인 상속·증여 문제를 종합적인 검토 없이 아이디어 하나 내듯이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권한 남용이 아닌가 싶다”고 강변했다.

이어 그는 “최근 창조경제니 스타트업이니 하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아무래도 젊은이들이 자본을 가지고 투자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경제가 움직이는 것 아니겠냐”며 “조세정책 측면에서는 오히려 증여세를 낮춰 자본이 다시 젊은 세대에게로 돌아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