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에서 발간한 ‘2015 사법연감’에 따르면 이혼한 부부 세 쌍 중 한 쌍은 20년 이상 한 이불을 덮고 자던 부부다. 또 50~60대를 중심으로 꾸준히 재혼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처럼 가족관계의 변화가 잦아지면서 상속 재산을 둘러싼 고민도 늘고 있다.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퇴직한 김 모(56) 씨는 한 달 전 막내딸을 결혼시킨 뒤 최근 아내와 이혼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20년 넘게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았던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라고는 하지만 아내와 재산분할 문제로 얼굴을 붉히게 될 것을 생각하면 그동안 살아온 삶이 덧없을 뿐이다.

중견기업의 박 모(60) 대표는 3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두 아들과 함께 살아왔으나 최근 열다섯 살 연하의 황 모 씨를 만나 사랑을 키우게 됐다. 박 대표는 어렵게 재혼을 결심했지만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는 자식들을 보면서 차후 상속 재산을 놓고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이웃나라 일본에는 ‘나리타공항의 이별’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젊은 부부가 신혼여행을 다녀와 공항에 내리자마자 헤어지는 걸 빗댄 말인데, 최근에는 그 세태를 보고 혀를 찼던 노년의 부부가 막둥이를 결혼시킨 뒤 신혼여행 비행기에 오르는 것까지 배웅하고 나서 이혼한다고 해 붙여진 말이 ‘나리타공항의 이혼’이란다.

중장년 이혼·재혼 나 홀로 증가
우리나라도 일본과 상황이 다르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아시아 국가 중 이혼율이 1위이며, 하루에 300쌍 정도의 부부가 남남이 되고 있다. 특히 중장년(40~60대)의 이혼과 재혼 비율이 급증하고 있는데 다른 연령대와 비교하면 역주행에 가깝다. 특히 중장년의 이혼과 재혼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는데 그것은 바로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에 따라 재산분할과 상속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이다.

통계청에서 지난 2013년 말 이혼, 재혼과 관련해 재미있는 자료를 내놨다. 바로 1982년부터 2012년까지 30년간 우리나라의 이혼과 재혼 현황을 분석한 것이다. 이 자료를 보면 이혼은 1982~2003년 사이 연평균 8.7% 증가하다가 2004~2012년에는 오히려 연평균 4.1% 감소하는 것으로 나온다. 지난 30년간 여자 재혼은 227.6%, 남자 재혼은 93.5% 증가했는데 여자 재혼이 남자 재혼을 추월한 것은 1995년부터다. 남녀 모두의 재혼은 1982~2005년 동안 줄곧 증가했는데 무슨 일인지 2006년부터는 다소 감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대목은 전체 통계와 거꾸로 가고 있는 연령대가 있다는 것이다. 전 연령대에서 이혼이 감소하는 2004년 이후에도 혼인 지속 기간 20년 이상 부부의 이혼 건수는 2005년 다소 주춤하다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15 사법연감’을 보더라도 이 같은 현상은 뚜렷한데 20년 이상 부부의 이혼은 2010년 23.8%, 2011년 24.85%, 2012년 26.4%, 2013년 28.1% 등 매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재혼 또한 장년층에서 뚜렷하게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04년부터 이혼이 감소하며 2년 후인 2006년부터 거의 전 연령대에서 재혼의 감소로 이어졌지만 50대와 60대 이상의 재혼은 2006년 이후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남자의 재혼은 50대가 2009년 22.1%에서 2012년 25.8%로 늘었고, 같은 기간 60대 이상도 8.4%에서 9.8%로 상승했다. 여자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며 전 연령대에서 재혼이 줄어들고 있는 것과 달리 50대(13.0%→17.9%)와 60대 이상(2.8%→3.9%)의 재혼은 나 홀로 증가세를 보였다. 이른바 황혼이혼과 재혼의 증가가 수치로도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이혼, 님이 남이 되는 돈의 전쟁
최근 한 지상파 방송에서 결혼 10년 차 배우 이재은 씨가 가상이혼을 체험하는 모습이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혼은 가상이 아닌 현실이다. 재산분할과 위자료, 자녀들의 양육비 등이 얽혀 있는 이른바 ‘돈의 전쟁’인 것이다.

우선 이혼을 하게 되면 상대 배우자와 재산분할과 위자료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재산분할은 혼인 후에 부부 공동 노력으로 취득한 공동 재산을 이혼하는 사람이 당초 취득한 시기부터 자기 지분인 재산을 환원받는 것을 말한다. 결혼 기간이 길수록 금액이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최근에는 가사노동 등을 인정해 부부가 공동 재산을 절반씩 나눠 갖는 경우가 많다. 재산보다 빚이 더 많은 경우에도 빚을 분담하라는 재산분할이 가능하다. 부부 중 어느 일방이 개인적으로 부담한 채무는 재산분할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원칙이다.

재산분할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특유재산이다. 결혼 전 일방의 명의로 돼 있는 재산이나 상대 배우자가 부모에게서 상속 또는 증여받은 재산 등은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부부간 재산분할 시 증여세는 내야 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 모두 증여세를 낼 필요가 없다. 위자료도 마찬가지다. 다만 조세 회피를 위해 형식적으로 이혼하거나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해 배우자가 사망하기 직전에 위장 이혼을 하고 재산분할이나 위자료를 받는 경우에는 증여세가 부과될 수도 있다.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과거에는 이혼을 하게 되면 부인에게 아파트를 받아 놓으라고 충고했는데 최근 자산가들은 부동산보다는 환가성도 좋고 가치 상승 면에서 매력적인 주식을 선호하는 것이 트렌드다”라고 귀띔했다.

이혼 전 증여와 이혼 후 재산분할 중에 어떤 것이 세금 측면에서 유리할까? 전문가들은 이혼 후 재산분할을 하는 경우에는 증여세가 부과되지 않아 유리하지만 상속세를 고려하는 경우에는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충고한다. 부부가 10년 이내 잇달아 사망할 경우 상속세 산출세액에서 전의 상속세 상당액을 공제해주는 단기 재상속 세액공제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3명의 성인 자녀를 둔 김 모 씨와 한 모 씨 중 김 씨가 130억 원의 재산을 남기고 사망한 뒤 1년 이내에 아내 한 씨도 사망한 경우를 생각해보자. 김 씨의 상속에 대해서는 배우자 및 일괄공제로 총 35억 원이 공제돼 약 43억 원의 상속세(인적공제만 고려)가 발생하게 된다. 또 한 씨의 상속에 대해서는 단기 재상속에 대한 세액공제가 적용돼 상속세가 발생하지 않으니 자녀들이 부담하는 총 상속세액은 43억 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혼을 한 후 한 씨에게 70억 원의 재산분할을 하는 경우 김 씨의 잔여 60억 원의 상속에 대해서는 일괄공제 5억 원만 적용돼 자녀들이 약 23억 원의 상속세를 부담하게 되고, 이후 한 씨의 사망으로 상속이 이뤄질 때에는 한 씨가 재산분할로 받은 70억 원에 대해 약 28억 원의 상속세가 발생해 총 51억 원 상당의 상속세를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이혼한 후 자녀들의 상속 문제는 어떻게 될까? 서울 신사동에 살고 있는 황 모 씨는 최근 이혼 소송을 진행하며 남편과 아이들 3명의 양육권 문제로 치열하게 다퉜다. 이 와중에 황 씨의 걱정 중 하나는 자녀들을 모두 자신이 데려다 키울 경우 후일 남편의 상속 재산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다.

이에 대해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현행법상 계부, 계모와 자녀의 관계는 혈족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혈족의 경우는 이혼을 했더라도 자녀에게 상속권이 주어진다”며 “만약 재혼가정에서 계부나 계모의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받도록 하려면 재혼 후 배우자가 자녀를 입양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늦은 나이에 재혼을 한 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상당 기간 사실혼 관계에 있는 경우가 있다. 당사자들이 생전에 사실혼 관계를 해소한 경우에는 재산분할청구권이 인정될 수 있으나 사실혼 관계가 일방 당사자의 사망으로 인해 종료된 경우 생존한 상대방에게는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고, 재산분할청구권 역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재혼, 사랑 더하고 재산은 나눈다
‘결혼은 3번, 재혼은 30번 숙고하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재혼은 자녀 관계나 재산 상속, 사회적 편견 등을 이겨내야 하는 쉽지 않은 미션이다. 더구나 자녀들이 있는 상황에서 황혼 재혼을 결정하는 경우 상속 재산을 놓고 배우자와 자녀들이 볼썽사나운 신경전을 펼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재혼을 앞두고 상속재산분할로 인한 갈등을 우려한다면 혼전계약서로 불리는 부부재산계약을 맺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혼전계약서는 민법상 부부재산계약 제도를 근거로 작성할 수 있으며, 부부가 혼인 성립 전에 그 재산에 관해 약정한 때에는 이 사항을 등기해 승계인,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미국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아무리 사랑해도 혼전계약서를 쓰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재혼을 통해 사랑은 더하더라도 재산은 명확히 나눠 갈등의 불씨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떠들썩한 2번의 이혼을 거쳤던 그였으니 혼전계약서의 효용(?)은 몸소 체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서상 늦은 나이에 재혼을 하면서 상대편에게 혼전계약서를 내미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재혼에 앞서 상속재산분할로 인한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혼전계약서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정서상 혼전계약서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며 “생전에 배우자와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에 대해 유언공증을 통해 명확히 선을 그어 놓는 것도 분쟁을 막는 방법이다”라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혼전계약서와 유언장의 법적 효력은 무엇이 우선할까. 이에 대해서는 법조계조차 다소 이견이 있다.

먼저 혼전계약은 양 당사자 간의 계약이고 유언장은 가족 모두를 아우르는 피상속인 유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유언장이 우선한다는 주장이 있다. 또 다른 주장은 혼전계약은 당사자의 합의가 필요한 계약이고 유언은 개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법률상 단독 행위이기 때문에 혼전계약서에서 일방의 사망 시 재산 분배 부분을 명시했다면 일종의 유언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있다.

아직 확실한 법원의 판례가 나와 있지 않은 만큼 혼인 이후 수정할 수 없는 혼전계약이 유언장의 내용과 부딪힐 경우 골치 아픈 논란이 발생할 소지도 있다. 이혼과 재혼에 대비해 신탁을 활용하는 방법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최수령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는 “부부간에도 믿을 수 없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자신이 죽은 뒤 재혼을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 또 자식들도 상속 재산을 허투루 쓰다가 탕진을 할 수 있다”라며 “부부간에 공동 가정생활을 하고 남은 돈을 신탁 재산으로 묶어 놓고 거기서 수익권을 받다가 본인이 사망하게 되면 그 수익권을 자식에게 물려주게 한다면 이혼이나 재혼에 따른 상속 재산 누수도 방지할 수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