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BIZ / 정유진 기자의 CEO 직심토크
이영춘 장생도라지 대표

대한민국 산업계 허리 역할을 하는 중견기업의 성공한 최고경영자(CEO). 냉철하기만 할 것 같은 그들에게도 글로 다 풀지 못할 ‘사람’ 이야기는 있는 법. 솔직한 직심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인생과 땀 냄새, 사는 이야기를 담아본다. 이번호 주인공은 진주상공회의소 회장이자 건강식품 전문 기업 장생도라지의 이영춘 대표다.
“바빠도 즐거워...도라지 세계화·지역 발전 도모”
이영춘 대표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테크윈의 안정적인 자리를 물리치고 가업을 이어 성공한 기업인이다. 지난 2021년 진주상공회의소 회장으로 당선되면서 회사 경영뿐만 아니라 진주 지역 중소기업의 권익 향상에 매진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지내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1월 한국경제신문 본사 1층에 마련된 인터뷰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3시에 경남 진주를 출발했다. 역시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기업인의 면모가 돋보였다.
올해 63세에 접어든 나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동안 피부를 지녀 건강식품 전문 기업을 이끌어 나가는 기업인다웠다. 이 회장은 만면에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첫인상이 너무 푸근해 덕담을 건네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다들 힘든 시기라서 표정관리를 해야 하는데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주는 우리 도라지 제품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감사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39년 전 사실 돈이 없어서 상공회의소를 빌려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예식장 비용이 200만 원 정도 들었다”며 “상공회의소 덕에 60만 원으로 식을 치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39년 만에 상공회의소 회장직으로 돌아오니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며 “이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바빠도 즐거워...도라지 세계화·지역 발전 도모”
대를 이어 도라지 제품 개발에 매진
이 회장이 이끄는 장생도라지는 20년 이상 자란 도라지를 지역 특산물로 개발해 다양한 기능성 제품으로 생산·수출하고 있는 농업 벤처기업이다. 이 회장의 부친 이성호 씨가 평생에 걸친 노력으로 대량 재배라는 성과를 일궈냈다. 특히 지역 대학 연구진에 의해 식용으로 사용하는 일반 도라지와는 확연히 다른 농업 특작물로서의 가치가 밝혀져, 1996년 정부 지원으로 도라지를 재배하는 지역 농민들로 영농조합법인을 결성, 가공사업을 시작하면서 첫 발을 내디뎠다.
사업 초기 미숙한 경영으로 독점 소재의 강점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으나 이 회장이 본격 경영을 맡으면서 폭 넓은 산·학·연·관 협력체제를 구축, 창업 6년 만에 기술혁신형 중소기업(INNO-BIZ)으로 선정되고 기술 경쟁력을 갖춘 선도 벤처기업으로 공인받은 강소기업이다.
이 회장의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존경은 대단하다. 그는 “3년생 식물인 도라지의 주요 약리 성분은 사포닌 종류인데, 3년근 이내의 일반 도라지에 비해 20년 이상 자란 장생도라지는 일반 도라지에는 없는 여러 종류의 사포닌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연구 결과에 의해 규명됐다”며 “우리 제품은 아버지 이성호 원장이 일평생을 바쳐 개발한 세계 유일의 우리나라 토종 농산물이며 우리 회사만의 고유 상표로서 현대인의 생활습관성 질환 개선에 탁월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까지 국내특허 32건, 해외특허 10건 등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총 65건의 학술논문 중 34건이 SCI(Science Citation Index: 미국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과학기술 분야 학술잡지에 게재된 논문을 바탕으로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돼 있습니다. 연구사업 수행 실적도 31건으로 연구개발비로만 72억 원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대기업 나와 가시밭길 가업승계…빚더미 회사의 '대변신'
이 회장은 “삼성테크윈 수석 인사과장으로서 6개월 후 부장 승진을 앞두고 있던 시기 보장된 미래 대신 가시밭길이 예상되는 가업승계를 선택했다”며 “당시 부친이 사업하면서 진 빚이 자그마치 28억이었고 이 중 친인척들에게 빌린 돈도 있었는데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평생 제가 지고 가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회상했다.
회사를 이끌며 제일 먼저 추진한 것이 매뉴얼에 입각한 기본에 충실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돈을 빌려서 회사에 썼는데도 빚은 다 아버지가 짊어지고 있고 돈은 회사에 있는 등 법인과 개인 간 경계가 명확하거나 투명하지 않았다”며 “기본 원칙을 정립하고 이에 따른 매뉴얼을 만들어 회사 경영의 표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두 번째로 역점을 둔 것은 임직원의 의식 개혁이다. 이 회장은 “당시 장생도라지 직원이 10여 명 남짓이었는데 그야말로 천방지축, 오합지졸이 따로 없었다”며 “출근시간도 퇴근시간도 따로 없고 식사시간도 제멋대로일 정도여서 이를 바로잡는 게 시급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일까. 아들에게도 엄한 아버지인 이 회장은 “아들이 국립대학을 다녀 상대적으로 등록금이 저렴했지만 한 푼도 지원하지 않았다”며 “한번은 아들이 장학금 타지 못하게 되자 막노동을 해서라도 학비를 해결하라고 독려했다”고 말했다. 이는 아들이 더 큰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아들이 어떤 일이든 스스로 잘해냈을 때에는 그만큼의 보상도 아끼지 않았다.
이 회장은 “아들이 일반 대학을 나와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마쳤고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해 현재 의사가 됐다”며 “딸아이 역시 임용고시를 통과해 어엿한 선생님이 됐다”며 자식 자랑에 침이 마르지 않았다.
“바빠도 즐거워...도라지 세계화·지역 발전 도모”
도라지 하나로 세계를 제패하다
이 회장의 부친 이성호 옹은 90세가 넘었지만 여전히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 7남매였던 이성호 옹은 유일하게 현재까지 생존해 있다. 도라지를 꾸준히 복용한 덕에 아직까지 무병장수하고 있다.
이 회장은 부친의 사례에 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특히 지난 2002년 이 회장의 둘째 딸이 지리수업 시간에 교과서에 할아버지가 ‘도라지 하나로 세계를 제패했다’고 실려 있다는 사실을 알려와 자긍심도 느끼고 더 큰 책임감도 갖게 됐다.
실제로 이성호·이영춘 부자의 피와 땀이 녹아든 장생도라지는 일본에 대량 수출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장생도라지 제품은 9종 32개 품목이 있으며, 주력 제품이라 할 수 있는 액상·분말·환 제품이 가장 큰 매출을 올리고 있다.
특히 일본 현지 전용 제품으로 개발한 액상 제품인 ‘Extract Royal Premium’은 최근 5년간 1000만 달러 이상의 수출 실적을 올려 외화 획득에 큰 성과를 내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진액스틱이라는 제품으로 리뉴얼된 제품이 매년 200만 달러 이상의 수출고를 올리고 있다.
이 회장은 “일본인들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크고, 건강 소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이라며 “창업 초기인 1999년에 현지 지사를 설립해서 장생도라지를 알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립 연구기관과 대학, 그리고 임상병원이 참여하는 장생도라지연구회의 협력연구 결과를 네 차례에 걸친 국제학술세미나를 통해 현지에서 발표했는데, 현지인들의 높은 관심과 속속 알려지는 체험자들의 이야기가 확산되면서 건강 제품 전문 기업들의 문의가 늘어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최근 서양 문화권 시장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크다. 그는 “현재 미국 교포를 대상으로 소량의 수출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인종을 불문하고 현지인들의 기호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 이를 기반으로 판매를 확대할 계획”이라는 해법을 내놨다.

진주 지역 경제발전의 밑거름 될 것
빚더미에서 시작해 성공을 일군 이 회장은 돈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에서 초월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빈 손도 아닌 마이너스로 시작해 어차피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인데 나머지 역량을 총동원해 진주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우리 지역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회장은 가진 자로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강조했다. 그는 “진주 지역에 부자들은 많은데 사실 사회공헌도는 굉장히 떨어진다”며 “돈 벌 줄 아는 사람들은 많은데 돈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이 사실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 회장은 지역 온기를 살리는 데 불쏘시개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에 기부 챌린지 형식으로 기업인당 최소 50만 원 이상씩의 성금을 모금하자고 독려했다. 이 회장이 솔선수범해서 2000만 원을 내놓자 20일 만에 1억700만 원이라는 거금이 모였다고 한다.
그는 회사를 시스템으로 성공궤도에 안착시켰듯이 진주상공회의소도 지역경제 발전의 밀알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 회장은 “진주상공회의소에 제가 구축해 놓은 시스템이 정착되면 다음에 누가 들어오더라도 이 일을 안 하면 안 되도록 만들어 놓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의 솔선수범은 납세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2014년 제48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 아름다운 납세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긍정적 마인드로 꿈 위해 땀 흘려
이 회장의 좌우명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또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에 가깝다. 이러한 긍정적인 마인드로 바쁜 일정이지만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그는 “부끄럽지만 창업부터 ‘생명과학을 선도해서 국가와 인류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이름도 생소한 수많은 ‘장생도라지’들이 지금도 이렇게 요원한 꿈을 향해 ‘무식한’ 땀을 흘리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풀뿌리 기업들이 이런 노력을 지속할 수 있도록 모든 여건들이 안정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하동 제2사업장의 안정적인 가동 및 신규 수출전략품목 개발과 이를 통한 수출 비중 50% 달성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jinjin@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