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태 마이지놈박스 대표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유전체 데이터의 이익을 개인이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이지놈박스는 유전체가 큰 가치를 띤 데이터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유전체 데이터를 안전하고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미래. 마이지놈박스가 그리는 유전체 데이터 시장의 청사진이다.
[Special]“개인 맞춤 정밀의료 도래…유전체 데이터 거래 활발할 것”
마이지놈박스는 유전체 시장에서 개인과 서비스 공급자를 연결하는 기술 플랫폼이다. 마크로젠,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가 유전체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바이오 기업이라면, 마이지놈박스는 유전체 데이터를 자원으로 활용하는 정보통신(IT) 회사에 가깝다.

마이지놈박스는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우버’와 같이 유전체 시장에서 개인과 서비스 공급자를 연결하는 ‘개인 유전체 데이터 활용 비즈니스 생태계’를 목표로 한다. 특히 하반기에는 유전체 데이터 시장의 페이스북을 표방한 새로운 소설네트워크서비스(SNS)를 선보일 계획이다.

박영태 마이지놈박스 대표는 “언젠가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은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유전체 데이터 분석을 받게 될 것”이라면서 “결국 미래에는 무궁무진하게 쏟아지는 유전체 데이터를 어디에 보관할지, 누가 그 정보의 소유권을 가져갈 것인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분명히 생긴다”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그때가 되면 우리 같은 플랫폼이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아진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를 만나 유전체 데이터 시장의 가능성에 대해 물어봤다.
[Special]“개인 맞춤 정밀의료 도래…유전체 데이터 거래 활발할 것”
마이지놈박스는 어떤 회사인가.
“한 번 분석 받은 유전체 데이터를 평생 활용할 수 있는 ‘박스’를 만든다는 콘셉트로 탄생한 회사다. 초기에는 유전체 데이터를 안전하게 저장하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이후 다양한 제휴사를 우리 플랫폼과 연결해 유전체 정보 비즈니스 생태계를 만드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쉽게 말해 우버와 같은 동일한 철학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버가 직접 택시기사를 고용하지 않고도 택시를 운영하는 비즈니스 생태계를 만들었듯, 우리도 서비스 제공자들과의 연계를 통해 개인이 자신의 유전체 데이터를 꾸준히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 환경을 만든다. 앞으로는 개인의 유전체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네트워크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도 갖고 있다.”

DNA 기반 SNS로 알려진 ‘진톡(가칭)’이 바로 그 네트워크 서비스인가.
“그렇다. 유전체 정보를 기반으로 친구를 사귀고, 유사한 희귀질환을 가진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서비스다. 이 서비스의 킬링 콘텐츠는 남녀 매칭이다. 유전체 정보를 통해 사람의 성적 매력을 알아보는 콘셉트로, 현재 대부분의 기능이 개발 완료된 상태다. 늦어도 오는 7월에는 론칭할 계획이다. 개인 유전체 정보에 금액을 매겨 올릴 수 있는 기능도 제공된다. 유전체 정보에는 질병뿐만 아니라 머리카락 두께, 눈 색깔 등 외형적 정보도 들어 있다. 개인의 특별한 정보를 보기 위해서는 정해진 금액만큼 돈을 지불해야 한다. 현재 유전체 정보가 가장 많이 쓰이는 분야는 신약 개발이지만, 다양한 산업 생태계에서 유전체를 기반으로 하는 상품화 작업을 준비하는 추세다. 마케터 입장에서도 새로운 접근 방식이 될 수 있다.”

개인 유전체 데이터를 자산화하는 과정에서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기술을 접목한다고 들었다. 어떤 방식인가.
“유전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가치 있는 데이터다. 신약 개발이나 차세대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유전체 데이터를 활용하는데, 그동안은 유전체 정보에서 발생한 이익을 개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분석 업체들이 가져갔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개인이 자신의 유전체 정보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측면도 있지만, 결국 데이터의 이익을 개인이 취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NFT가 큰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간암 확률이 높은 유전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간암 관련 변이에 대한 정보만 빼서 NFT화한 뒤 플랫폼에 올려놓을 수 있다. 이후 간암을 치료하기 위한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들이 그 데이터를 구매하는 흐름이 형성된다. 이렇게 데이터가 거래되는 과정에서 위·변조를 할 수 없게 만드는 핵심 기술로 NFT가 쓰인다.”
[Special]“개인 맞춤 정밀의료 도래…유전체 데이터 거래 활발할 것”
개인 유전체 데이터 거래 서비스가 시장에서 수요가 있을까.
“이미 미국에서는 유전체 데이터 거래가 굉장히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는 건별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개념보다는, 특정 업체가 벌크(대용량)로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자신들이 보유한 유전체 데이터베이스(DB)에 특정 기간 동안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계약을 맺고, 제약사가 몇 년간 이 DB를 활용해 신약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케이스도 있다. 그런데 2020년부터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개인이 자신의 유전체 데이터 일부를 기업에 공유해주면, 해당 기업이 자사 주식을 준다거나 블록체인 토큰을 제공하는 등의 서비스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은 어떤가. 미국처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상황인가.
“미국은 언제 어디서 유전체 분석을 받았건, 해당 업체에 ‘내 유전체 데이터를 받고 싶다’고 요청하면 무조건 제공해야 한다. 텍스트 파일 형태로 데이터가 제공되기 때문에 개인 이용자가 다른 플랫폼에 곧바로 자신의 유전체 정보를 업로드한 뒤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다르다. 고객이 데이터를 요청한다고 해도 제공할 의무가 없다. 물론 개인이 유전체 검사를 받으면 분석 업체가 정해진 규격에 맞춰 결과 보고서를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은 존재한다. 이후 개인 동의 하에 제3자에게 유전체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굉장히 폐쇄적으로 운영된다는 문제가 있다. 업체 간 유전체 정보를 주고받기가 굉장히 어려운 환경이다.”

그럼 지금 국내 시장에서 마이지놈박스 서비스를 이용할 때 다양한 유전체 분석 업체의 데이터를 활용하기 어려운 건가.
“관계사인 EDGC와는 시스템상 연결이 돼 있어서 데이터를 넘겨받을 수 있는데, 다른 기업들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우리의 핵심 타깃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국내 시장에서도 2020년부터 규정이 완화되는 흐름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화 서비스를 준비해 오긴 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유전체 데이터를 가진 고객이 더 많은 시장으로 진출하는 게 맞다. 미국은 이미 약 2억 명 정도가 유전체 분석을 받은 시장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유전체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다르기도 하다. 병원비가 굉장히 비싼 나라인 만큼 유전체 정보를 통해 질병을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다는 측면을 굉장히 잘 알고 있다. 유전체 데이터 소유권에 대한 중요성과 가치를 아는 것이다. 반면, 한국 시장은 아직 그레이존에 가깝다. 관련 서비스를 진행할 때 불법이라거나 합법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해외 시장도 발전 단계로 따지면 아직 초기 시장에 가까워 보이던데.
“아직은 그렇다. 미국을 중심으로 2억 명 정도가 유전체 분석을 받았지만, 이 시장이 더 활성화될 시점은 10억 명 정도가 유전체 분석을 받은 이후라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의 경우도 사용자가 2억 명일 때까지는 애플리케이션이 큰 쓸모가 없었다. 당시 앱 개발자들도 ‘언젠가는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쓰게 될 것이고, 어떤 시점을 넘기면 앱을 떼려야 뗄 수 없게 된다’는 생각으로 서비스를 준비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유전체 데이터 시장이 시작 단계라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은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유전체 데이터 분석을 분명히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시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전망한다면.
“유전체 분석은 어느 순간 무료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전 세계 의학 시스템이 ‘개인 맞춤형 정밀의료’라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정밀의료는 선천적 정보(유전체)와 후천적 정보(삶의 방식)를 합쳐, 개인에게 딱 맞는 솔루션을 진단해주는 의료 방식이다. 선천적 요소를 알기 위해서는 무조건 유전체 분석을 받아야 한다. 정밀의료 시장이 커질수록 유전체 분석 시장도 성장할 수밖에 없다. 또 새로운 바이러스와 질병을 연구하는 과정에서도 유전체 데이터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결국 미래에는 무궁무진하게 쏟아지는 유전체 데이터를 어디에 보관할지, 누가 그 정보의 소유권을 가져갈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분명히 생길 것이다. 앞으로는 유전체 분석 사업만으로는 한계가 발생한다. 유전체 분석을 이미 한 번 받은 사람이 중복해서 여러 번 받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 같은 플랫폼이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아진다. 유전체 데이터의 소유권은 개인에게 모두 돌려주고, 클라우드 스토리지 플랫폼에 자신의 정보를 담아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마이지놈박스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비전이 있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진행한 비즈니스는 모두 유전체 데이터를 많이 모으기 위한 것이었다. 일단 다양한 인종의 유전체 데이터 풀(pool)이 되는 것을 1차 목표로 하고 있다. 데이터가 웬만큼 모인 이후에는 이 가치 있는 데이터를 어떻게 자산화해서 개인이 이익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드는지가 그다음 핵심 목표가 될 것 같다. 유전체 정보를 편안하게 쓸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이 데이터를 통해 (개인 이용자와) 함께 이익을 창출하는 플랫폼이 되고 싶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ㅣ사진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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