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암호화폐 생태계 ‘흔들’…혹독한 겨울 언제까지
시장에 풀렸던 유동성의 마법은 거짓말처럼 걷혔고, 테라-루나 사태는 생태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최근 급격한 침체기를 겪게 된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이야기다. 폭락장을 맞은 지 불과 2개월여.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마음은 여전히 혼돈 속을 헤매고 있다. 끝모를 겨울을 맞은 암호화폐 시장의 현재를 다시 한번 점검해본다.


#1.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은 최근 폭락장을 맞은 암호화폐 시장에 대해 “무(nothing)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암호화폐를 사거나 거래하는 것은 거의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는 수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오랜 사업 파트너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함께 강경한 암호화폐 반대론을 펼쳐 온 인물이다. 지난 2월에도 “당장 암호화폐가 금지되기를 바란다”고 언급한 바 있다.

#2.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은 암호화폐 산업에 대해 “일종의 포스트모던 피라미드 사기로 진화했다”는 견해를 내놨다. 그는 “암호화폐 업계가 실물경제에서 많이 쓰이는 상품을 내놓는 데 성공한 적은 없지만, 마케팅 자체에서 눈부시게 성공을 거두면서 첨단적이고 훌륭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금’으로 불렸던 암호화폐 시장이 다시 한번 혹한기를 맞게 됐다. 암호화폐 시장의 대장 격인 비트코인, 이더리움마저 최고점 대비 70% 이상 하락하며 한때 인플레이션 헤지(회피) 수단으로 꼽혔던 과거를 무색케 만들었다. 암호화폐 시장이 위축되며 약세장으로 들어서는 ‘크립토 윈터(crypto winter: 암호화폐 겨울)’가 본격화되는 시점이다.
[special] 암호화폐 생태계 ‘흔들’…혹독한 겨울 언제까지
유동성 축소와 루나 사태가 쏘아 올린 2022 크립토 윈터올해 암호화폐 하락세의 배경에는 다름 아닌 유동성 축소가 자리한다. 코로나19 기간 글로벌 자산 시장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암호화폐의 상승장을 형성했다면, 최근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과 양적 긴축 기조를 본격화하면서 이 흐름이 꺾였다. 물론 시장에 넘쳐 흐르던 유동성이 사라지고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짙어지면서, 암호화폐뿐만 아니라 투자 시장 전반이 주춤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암호화폐의 경우 그 변동 폭이 주식, 금 등 여타 투자 대상과 비교해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다. 지난해 말 글로벌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2조2000억 달러에 달했지만 가상자산 전체 시가총액은 1조 달러(7월 19일 기준)로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

특히 스테이블 코인(법정화폐와 가치가 고정된 코인) ‘테라’와 자매 코인 ‘루나’의 폭락 사태는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끝없이 추락시키는 결정타가 됐다. 글로벌 금융 업계와 중앙은행도 테라-루나 사태 이후 암호화폐 시장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서 “자산이 뒷받침되지도 않으면서 20%의 수익률을 제공한다고 약속하는 것은 다단계 피라미드 사기”라며 최근의 테라-루나 사태와 코인 폭락을 염두에 둔 발언을 내놨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또한 최근 암화화폐에 대해 “아무 가치와 근거가 없으며, 안전의 닻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 자산이 없다”면서 “평생 모은 돈으로 암호화폐에 투기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 암호화폐에 대해 긍정론을 펼쳤던 스콧 마이너드 구겐하임 파트너스 최고투자책임자(CIO)도 최근 시장 상황을 2000년대 초반의 닷컴 버블과 비교하며 “대부분의 암호화폐는 화폐가 아니라 쓰레기”라고 진단했다.

시장의 리스크를 인식한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심리도 크게 경직된 상태다. 암호화폐 데이터 분석 업체 크립토컴페어에 따르면 지난 6월 한 달 동안 암호화폐 현물 거래량은 전월에 비해 28% 떨어진 1조4100억 달러로 나타났다. 암호화폐 데이터 제공 업체 얼터너티브가 산출한 공포·탐욕지수(투자심리지수)는 테라-루나 사태 이후 한 자릿수에서 30을 오가며 ‘극도의 공포’ 혹은 ‘공포’ 단계를 유지해 왔다. 이 지수가 0점에 근접할수록 투자자들이 비관적일 정도로 극도의 투자 공포를 느낀다는 뜻이고, 100점에 근접할수록 투자를 낙관한다는 뜻이다. 7월 중 비트코인 등 대장 종목이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큰 추세로 봤을 때 투자 심리가 유의미한 개선세로 돌아섰다고 확신하기엔 미지수다.

시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걷히면서 암호화폐 채굴 업체들도 발을 빼는 모습이다. 북미 비트코인 채굴 업체인 코어 사이언티픽은 지난 6월 비트코인 2만3000달러어치를 매도했으며, 캐나다 암호화폐 채굴 업체인 비트팜스도 “시장 변동성을 고려해 일일 비트코인 생산분을 모두 보유하지 않겠다”며 매도세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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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파산하는 암호화폐 업체들…잇딴 인력 감축 움직임암호화폐 생태계도 온전한 상황은 아니다. 테라-루나 폭락은 암호화폐 대출 업체와 중개소가 줄줄이 파산을 선언하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 암호화폐 대출 업체 셀시어스 네트워크는 미국 뉴욕 남부지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셀시우스는 170만 명의 고객을 확보한 미국의 대표 가상자산 플랫폼이다. 테라-루나 사태 이후 암호화폐 시장 폭락의 여파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을 겪었고, 결국 유동성 위기를 막지 못해 파산보호 절차를 밟게 됐다. 셀시우스의 대차대조표상 적자는 11억9000만 달러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싱가포르 암호화폐 헤지펀드 3AC도 루나 코인 투자에 실패한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법원에서 파산명령을 받았다. 3AC에 자금을 대줬던 암호화폐 대출·중개 업체 보이저디지털 또한 뱅크런 위기를 맞아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스티븐 얼릭 보이저디지털 최고경영자(CEO)는 “이 산업의 미래에 대한 믿음은 굳건하지만, 시장의 변동성 지속과 3AC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도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는 인력의 18%를 감축하기로 했다. 또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 제미니도 지난 6월 직원 10%를 감원한 데 이어, 최근 전 직원의 15%를 추가로 정리해고하기로 했다.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거래 플랫폼인 오픈시(OpenSea)는 최대 20%의 인력 감축을 감행하겠다고 밝혔다. 인력 구조조정의 배경은 역시 크립토 윈터다. 데빈 핀저 오픈시 CEO는 “크립토 윈터와 광범위한 거시경제 불안이 겹쳤다. 암호화폐 가격 폭락과 경제 불안이 가중됐다”며 “회사가 장기 침체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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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업계, 꺾이지 않은 낙관론…시장의 향방은이미 다가온 크립토 윈터의 찬 바람을 피할 수 없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2011년과 2014년, 2018년에 이어 다시 대세적 침체가 시작됐다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끝과 바닥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 크립터 윈터의 경우 짧으면 5개월, 길면 1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됐다는 선례를 참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추락한 암호화폐 가격의 바닥이 어디인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스콧 마이너드 CIO는 비트코인이 암호화폐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보면서도 가격에 대해서는 “8000달러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2만 달러 초반 수준(7월 19일 기준)이다.

폭락장이 암호화폐 생태계를 휩쓸고 간 상황이지만 관련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낙관론이 남아 있다. 과거 닷컴 버블이 가라앉았다고 해서 정보기술(IT) 시장 자체가 빅 제로(big zero: 아무 가치가 남지 않는 것)로 소멸하지 않은 것처럼, 암호화폐 시장 또한 장기적 성숙기를 거쳐 제도권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론이 꺾이지 않았다. 이 시기에 진정한 옥석 가리기가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업계에서는 당초 비관적이었던 시장 전망에 비해 크립토 윈터 시기를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빗은 최근 ‘2022년 크립토 윈터, 언제까지’ 보고서를 통해 “현재 겪고 있는 네 번째 크립토 윈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이라는 매크로 요인에 기인했다는 면에서 2018년 말~2019년 초 경험한 세 번째 크립토 윈터와 매우 유사하다”며 “과거 크립토 윈터의 경험, 현재 시장에 반영된 인플레와 Fed의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치, 그리고 지정학적 역학관계의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크립토 윈터 구간을 벗어나는 시기는 올해 4분기로 판단했다”고 했다. 이 보고서는 암호화폐 시장의 펀더멘탈이 건재하다는 진단을 전제로 작성됐다.

반면 글로벌 암호화폐 전문가의 70%는 크립토 윈터가 올해 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핀볼드와 여론조사 업체 핀더(Finder)가 글로벌 암호화폐 및 웹 3.0 전문가 5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46%는 내년까지 지속된다고 답했고, 24%는 2024년 혹은 그 이후 몇 년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장기적 회복을 전제로 하는 친(親)암호화폐 쪽의 전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경제 전문가는 “지금의 암호화폐 하락을 단순한 사이클로 보는 시각이 많아지면, 현재 가격을 ‘바닥’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시장에 들어가는 투자자가 또 양산될 것”이라며 “무책임한 장밋빛 전망을 던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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