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는 2월 중 주요 저항선을 상향 돌파했고, 유럽 증시는 2021년 말 이후 하락 폭의 80% 이상을 회복하며 9개월래 최고치까지 상승했다. 주요국의 헤드라인 물가 상승률이 정점을 통과함에 따라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설 수 있게 됐고, 유로존 경기는 에너지 대란을 피하면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중국이 예상보다 리오프닝을 앞당기며 글로벌 경제의 경착륙 우려가 완화된 점도 위험자산의 강세를 뒷받침하는 요인 중 하나로 부각된다. 하지만 미국의 주요 경제지표가 경기 위축 국면에 진입하는 등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근원물가 상승률이 미국에서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유럽에서는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업들의 이익 전망치는 아직 큰 폭으로 하향 조정되지 않은 반면, 기업 실적은 마진율의 악화로 점차 부진을 보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일각에서 연초 이후 주식 시장의 랠리를 정크 랠리(junk rally), 데드 캣 바운스(dead cat bounce: 하락장에서의 일시적 반등) 등으로 지칭하며 경계심을 유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투자 심리 회복에도 경계심 여전…방어력 높이는 자산은
투자자들은 불안 요소가 남아 있는 베어마켓(약세장)에서의 반등 구간을 위험자산의 추가 매수 기회가 아닌 포트폴리오의 조정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시점에 채권은 포트폴리오의 기반을 강화해 방어력을 높이는 역할뿐 아니라 가장 매력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자산이다.
과거 주요 자산군에서 나타났던 성과 추이는 미래의 성과에 대한 가이드를 제공하기도 한다. 최근 150년간 미국 10년물 국채의 연간 수익률 분포는 2.5~5% 구간을 중심으로 정규 분포의 형태를 보인다.
그리고 연간 -10% 이상의 손실을 기록한 해는 지난해를 포함해 150년 동안 단 네 차례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이 단행됐던 시기이며, 특히 1994년에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1년간 3%에서 6%로 오르면서 채권 시장의 대학살을 야기했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채권이 이렇듯 역사적으로 큰 폭의 손실을 겪은 이후 그다음 해에 빠른 회복력을 시현하면서 높은 수준의 성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지난해 글로벌 주요 중앙은행들이 동시에 유례없이 가파른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채권 시장은 다시 한번 대학살을 경험했다.
따라서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채권은 올해 회복을 넘어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다면 어떤 채권으로 포트폴리오의 방어력과 기대수익을 제고할 수 있을까.
채권은 매수 시점에 미래 현금흐름이 확정되기 때문에 매수 가격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채권 자산은 발행 국가나 신용등급, 만기 구조 등에 관계 없이 매우 매력적인 가격대에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신용 위험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시각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하이일드 채권은 재무 구조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저신용등급의 기업들이 발행한 채권인 만큼 누적된 긴축의 영향으로 인한 부채 부담의 증대, 감익 가능성, 부도율 상승 우려 등 여러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물론 하이일드 채권의 인컴(수익) 수준은 매력적이지만, 경기 침체의 여파가 추가적으로 가격에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 투자등급 채권의 평균 가격은 액면가를 하회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탓에 발행 기업들의 부도 위험을 감내하면서 하이일드 채권에 투자할 유인이 그리 높지 않다고 판단한다.
현재 투자등급 회사채의 금리(일드)는 2008년 이전 긴축 사이클 이래 경험한 적이 없는 레벨에 근접해 있으며, Fed의 금리 인상 기조는 올해 상반기에 정점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시점은 투자등급 회사채를 통해 높은 수준의 인컴을 장기간 고정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기회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우량 채권, 예상치 못한 금리 충격 상쇄 가능
미 Fed가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긴축 속도를 조절하며 금리 정점에 대한 인식이 강화됐고, 국채 금리는 빠른 하락세(채권 가격 상승)를 보였다. 그러나 제롬 파월 Fed 의장은 회의 이후 진행된 기자회견을 통해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세 둔화)이 시작됐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최종금리 인상 전망과 관련해 시장과 Fed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지 않음을 시사했다.
이는 물가 안정이 확인되는 현시점에 과도한 긴축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경제지표에 따라 정책을 점검하며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따라서 향후 Fed과 시장의 시각차가 축소되고 Fed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재평가되면서 국채 금리가 상승세(채권 가격 하락)를 보일 수는 있지만 당분간 이번 긴축 사이클의 마지막 금리 인상 시점까지는 금리가 박스권 흐름을 이어 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금리가 등락을 반복하며 횡보세를 지속하는 시기에 우량 채권이 제공하는 인컴은 투자의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더욱이 현재 우량 채권의 금리는 예상치 못한 금리 충격에 따른 채권 가격의 변동성을 상쇄시킬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긴축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채권을 활용한 자본 차익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역사적으로 미국 국채 금리는 Fed의 긴축 종반부에 정점을 확인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후 시장이 먼저 인하 가능성을 반영하기 시작하면서 채권 금리는 하락(채권 가격 상승)하게 된다.
따라서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경우, 듀레이션(채권 가격의 금리 민감도)을 늘리는 전략을 활용해 자본 차익을 꾀할 수 있다. 또한 Fed의 긴축이 경기 침체로 이어질 경우 장기 금리는 더욱 빠른 속도로 하락할 것이며, 이때 듀레이션이 긴 우량 신용등급의 국공채를 활용하면 자본 차익과 함께 돌발 악재의 영향력을 낮출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달러의 약세 전환 가능성을 고려할 때, 달러 채권은 포트폴리오의 기대수익을 제고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 특히 듀레이션이 짧은 우량 채권을 통해 안정적으로 달러 자산을 운용하는 동시에 매력적인 인컴을 수취할 수 있다.
2023년을 시작할 때의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시장참여자들의 투자 심리가 빠르게 개선되며, 특히 주식 시장이 한 달 이상 랠리를 시현했다. 이에 FOMO(Fear Of Missing Out: 다른 사람은 모두 누리는 좋은 기회를 놓칠까 봐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를 느끼고 위험자산에 대한 비중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조바심이 커질 수 있다.
미국 고용 시장은 여전히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반면, 선행지표들은 경기 하방 리스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등 금융 시장의 다양한 불안 요소들이 잔존한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현시점에 투자자들은 오히려 채권에 대한 투자 비중을 높이면서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난해 대학살을 경험한 채권 자산 금리의 매력은 올해 채권이 포트폴리오의 변동성 방어뿐 아니라 절대 수익 관점에서도 훌륭한 투자처가 될 수 있음을 반증한다.
글 변효정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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