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페이, 한국 상륙...간편결제 시장 '들썩'
오랜 진통 끝에 애플 근거리무선통신(NFC) 결제 서비스 ‘애플페이’가 국내에 상륙한다. 현대카드가 독점권을 포기하면서 금융당국이 국내 서비스 허가를 내준 것이다. NFC 결제 서비스 ‘불모지’, 지급결제 ‘갈라파고스’이던 국내 간편결제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전망이다.

애플페이는 애플이 2014년 공개한 NFC 기반 간편결제 서비스다. 신용카드를 대체하는 토큰을 애플만 접근 가능한 ‘eSE(embedded Secure Element)’에 저장하고, 결제 때 생체인증을 통해 아이폰 내부에 저장된 토큰을 불러 비접촉 방식으로 결제한다. 버스에서 결제단말기에 태그하는 방식을 생각하면 된다.

애플페이 도입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드사들이 2015년경 애플페이 도입을 추진했지만 수수료 문제와 단말기 투자 주체를 놓고 입장이 갈리면서 무기한 연기된 바 있다. 그 사이 미국을 비롯 중국, 동남아시아 등 애플페이는 NFC 기반 사용자 경험을 쌓아 가며 시장점유율을 높여 갔다. 한국에 진출할 경우 종전 간편결제사업자와 한바탕 격전이 예고된다. 특히 삼성전자 삼성페이와 치열한 격전이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글로벌 애플페이 사용자 수는 2016년 말 6700만 명 수준이었지만 △2017년 말 1억3700만 명 △2018년 말 2억9200만 명 △2019년 말 4억4100만 명 △2020년 말 5억700만 명으로 매년 2배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태그 방식의 NFC가 간편결제 시장 새로운 혁신 진영으로 등장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애플, 구글, 은련, NTT도코모 등 미국과 중국, 일본이 모바일결제 시장에서 NFC 기반 결제 인프라를 대거 확장해 ‘NFC 진용’을 형성했다.
애플페이, 한국 상륙...간편결제 시장 '들썩'
간편결제 시장 성장세 뚜렷…MZ세대 이용 늘어

애플페이는 현재 세계 70여 개국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일본, 싱가포르 등 선진국은 물론 최근에는 요르단과 쿠웨이트에서도 서비스가 시작됐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10위권 국가 가운데 애플페이가 도입되지 않은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성장세도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나라 간편결제 1위인 삼성페이도 애플페이 대비 결제 금액 기준 3% 수준에 머물고 있다. 애플페이 처리 금액은 6조3000억 달러로 비자카드(10조 달러)에 이은 2위다.

뒤를 이어 알리페이 6조 달러, 마스터카드 4조7000억 달러, 구글페이 2조5000억 달러 순이다.
이르면 3월 애플페이가 한국에서 결제를 시작할 경우 삼성페이와 경쟁 구도가 형성된다. 이는 스마트폰 기기 점유 이동으로도 나타날 전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국내 간편결제 이용액 중 휴대전화 제조사 비중은 24%에 달한다. 휴대전화 제조사 중 국내에서 간편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삼성전자 삼성페이가 유일하다.

최근 MZ세대가 경제주체로 부상하면서 간편결제 이용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애플페이가 유입되면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비롯해 알파세대(2010년대 초반~2020년대 중반 출생)까지 오프라인 간편결제 시장에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국내 1020세대는 물론 3040세대까지 애플 브랜드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7월 국내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1020세대의 주 사용 스마트폰 브랜드는 아이폰이 52%로 집계돼 과반을 넘었다. 3년 전인 2019년 조사(49%)보다 3%포인트가 증가했다.

애플 선호는 ‘또래집단 문화’다. 아이폰을 사용하는 것을 본 다른 청소년이 자연스럽게 애플 제품을 원하는 ‘애플 생태계’로 유입되는 형태다.

시장도 움직이고 있다. 애플페이가 금융당국 허가를 받기 전에 벌써 NFC 결제 단말기를 설치하겠다는 가맹점이 나타났다. 당초 NFC로 결제할 수 있는 곳은 전국 280만 개 가맹점 가운데 약 3만 개에 불과하다. 이에 애플페이가 도입돼도 부족한 NFC 결제 단말기로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MZ세대와 알파세대를 사로잡기 위해 단말기 설치를 문의하는 가맹점이 속출하고 있다. 실제 패스트푸드, 편의점, 카페, 마트 등 가맹점들이 금융당국 허가 이전에 이미 애플페이 결제 단말기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페이, 한국 상륙...간편결제 시장 '들썩'
스마트폰 시장도 지각변동 불가피?

애플 아이폰 ‘애플페이’ 국내 서비스가 개방됨에 따라 삼성전자가 압도적 점유율을 수성해 온 스마트폰 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예고됐다. 스마트폰 기반 오프라인 간편결제의 편의성을 경험한 국내 이용자가 삼성 갤럭시에서 애플페이가 탑재된 아이폰으로 선택지를 넓히게 될 전망이다.

삼성페이는 2015년 공식 출시 이후 가장 강력한 삼성폰 ‘록인(lock-in)’ 효과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았다. 기존 오프라인 가맹점 카드결제 단말기 대부분에서 호환되는 마그네틱보안전송(MST) 기술을 채택, 빠른 속도로 보급이 이뤄졌다. 다양한 편의 기능과 함께 교통카드까지 연동되면서 외출 시 지갑 없이 스마트폰만 들고 다니는 이용자가 늘었다.

애플페이 국내 서비스는 기존 아이폰 이용자 편의성 증대와 더불어 삼성폰 이용자가 애플로 이동하게 되는 수요를 직접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위협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애플 기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게 나타나고, 강력한 브랜드 충성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경쟁 우위에 있던 차별화 요소의 상실은 뼈아프다는 분석이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 점유율은 70%에 육박한다. 20% 중반에 머물고 있는 애플 입장에서는 애플페이를 필두로 국내 카드사와 함께 적극적인 마케팅 공세에 나서는 방안이 유력하다. 하반기 아이폰 신제품 출시 시점에는 삼성전자 폴더블 스마트폰에 맞서 애플페이 마케팅을 전면에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관건은 결제를 수용하는 결제 단말기 보급이다. 수년에 걸쳐 국내 시장에 완벽하게 안착한 삼성페이의 대중성과 편의성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삼성페이가 오프라인 간편결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바일·온라인 결제와 인증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애플페이 태풍은 상대적으로 찻잔 속의 바람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글 길재식 전자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