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분야 3대 국정과제로 추진중인 연금 개혁이 다시금 불을 지피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이 2055년에 고갈될 상황에 처해지면서 공적연금에 대한 개혁에도 가속도가 붙게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2055년 고갈 위기에 처한 국민연금의 존립 기반이 크게 위태로울 수 있다며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난 1988년 처음 출범한 국민연금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방식으로 설계됐지만 인구 감소로 인해 향후 30년 후에는 연금 고갈이라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하게 됐다. 이에 연금 고갈을 최대한 지연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험료율을 인상을 하거나, 선진국이 시행하는 부과 방식을 새롭게 도입하느냐에 따라 연금 개혁의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경 머니는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신왕건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장, 김도헌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변화의 기로에 선 국민연금 개혁 방향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①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② 신왕건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장
③ 김도헌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연구위원
[연금개혁]신왕건 국민연금 수책위원장 “연금 보험료율 인상 불가피, 투자 다변화 시급”
신왕건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장은 국민연금은 장기 투자(Long Horizon)가 가능한 대형 기금(Scale)이라는 전략적 경쟁우위가 있으나, 여전히 이를 활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금 운용을 가능하다면 위험 확대와 다변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수익률 증대를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우선,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요.
“크게 2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어요. 우선은 국민연금이 처음 출범한 시기가 1988년이죠. 애초에 ‘적게 내고 많이 받는’ 방식으로 설계됐어요. 가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이기도 했고, 과거 우리나라 경제가 급성장하는 데 애쓰신 노인들에 대한 배려도 녹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할 가입자는 향후 5년간 86만 명 가까이 줄어들고, 국민연금이 현행대로 운영되면 국민연금 기금이 2055년 완전히 바닥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 때문에 젊은 세대들은 국민연금이 충분한 노후 안전판 역할을 하지 못할까 우려하죠.”

또 다른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국민연금의 투자 포트폴리오가 지나치게 안전자산에만 몰려 있다는 점이죠. 이는 우리나라 경제 성장 역사와도 맞닿아 있어요. 연금 초기만 해도 한국은 여전히 이머징 국가였기 때문에 채권 투자만으로도 쉽고, 안전하게 고수익을 얻을 수 있었어요.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 성장률은 그때와 같지 못하죠. 물론, 10년 전까지만 해도 채권 투자가 마이너스는 아니었어요. 가령, 주식과 달리 채권은 가격 변동이 심하지 않죠. 따라서 표면 금리가 높을 때는 채권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표면 금리 자체가 그 부분을 커버할 수 있는 구조였어요.

그런데 2021~2022년엔 그게 잘 되지 않았어요. 국민연금의 약 40% 비중을 차지하는 채권에서 2년 연속 마이너스 수익률이 나온 데다, 2022년엔 주식장도 폭락했죠. 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하락한 2022년 말을 기점으로 해서 올해 발표된 국민연금 제5차 재정추계에서 국민연금 위기론이 더욱 부각됐어요. 우리가 그간 기회비용을 너무 많이 부담한 셈이죠.”

연금 고갈을 막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요.
“연금 보험료율 인상이죠. 장기적 재정 안정화를 위해서는 현행 보험료율을 상향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연금 보험료율은 1998년 9%로 조정된 이후 25년째 그대로 묶여 있어요. 5년마다 실시되는 국민연금 재정추계 때마다 개혁안이 제시됐지만 근원적인 해결책은 대개 차기 정권으로 미뤄지는 양상이었죠. 문제는 이렇게 보험료 인상을 미룰수록 미래 세대의 부담은 더 커진다는 거죠.

우리나라 국민연금 재정 방식은 적립 방식이에요. 적립 방식은 보험료를 모아 기금을 만들고 이를 연금 지급의 재원으로 삼아요. 반면, 부과 방식은 해마다 지급에 필요한 돈을 가입자가 그해에 낸 연금 보험료 수입으로 충당해요. 연금 기금이 고갈된 대부분의 나라가 부과 방식을 택합니다. 우리나라도 이대로 재정이 고갈된다면 부과 방식으로 전환할 수도 있죠. 그런데 연금을 받는 사람보다 보험료를 내는 사람이 턱없이 적으면 큰 사회적 문제가 돼요. 실제로 연금 보험료율 인상을 2030년으로 미루면 필요한 보험료율은 17.95%로 높아지고, 2040년엔 20.93%에 달합니다. 이제는 이 부분에 대해 정치권은 물론 사회적 결단이 필요해 보입니다.”
[연금개혁]신왕건 국민연금 수책위원장 “연금 보험료율 인상 불가피, 투자 다변화 시급”
연금 투자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요.
“이미 해외 주요 연기금은 전 세계 자본시장을 누비며 투자 자산 다변화를 통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어요. 저는 일찍이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사례에 주목했죠. 최근 CPPIB는 올해 2분기 기준으로 10년간 연평균 9.8% 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CPPIB는 일찌감치 다양한 자산에 분산투자를 해 성과를 냈습니다.

현재 국민연금 포트폴리오에서 위험자산과 대체투자 비중은 각각 55%, 15%인 반면, CPPIB의 위험자산과 대체투자 비중은 85%, 59% 수준입니다. 무엇보다 CPPIB는 장기적인 목적을 설정하고 적극적인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안전자산 투자에 머물렀고, 장기적인 호흡으로 이 문제를 논의하지 못했어요. 아울러 전략적 의사결정을 실행하지 못하는 집행 조직과 해외 투자 현지화의 어려움, 기금의 경직적 자산 배분 체계 등도 원인이었죠. 향후 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선 ‘더 높은 위험 감수’와 ‘투자 다변화’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추가적으로 국민연금 기금 운영과 관련해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면.
“국민연금은 장기재정목표가 부재한 가운데 대형기금으로서의 경쟁우위가 약화됐습니다. 자산배분체계 개선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었죠. 물론 그간 정책 부분에서 많은 논의 결과로 기준 포트폴리오 잠정 도입을 결정하는 등 일부 진척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전략 수립 및 운용 차원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 논의는 부족했죠. 저는 ‘통합 포트폴리오 운용체계(TPA)’ 도입이 좋은 대안이 될 것 같습니다.

TPA는 정책 의사결정기구는 장기 위험 선호를 선택하고, 운용 조직은 전체 포트폴리오 차원의 위험 수준을 유지하면서 다변화를 추진하는 거예요. 단순한 기준 포트폴리오에서 시작해 유연성을 기반으로 다변화와 복잡도를 높여 전체 포트폴리오 수익률 증대를 추구할 수 있는 체계인 셈이죠. 이미 캐나다 CPPI는 2006년 기준 포트폴리오 이 운용 체계를 도입했고, 이후 기준 포트폴리오 운용 체계를 도입한 GIC(싱가포르), NZSF(뉴질랜드) 역시 TPA 체계를 적용·운용 중입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체계 도입과 향후 운용 방향 사회적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했습니다.

글 김수정 기자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