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안, 가야문명의 숨결을 품다
2000년 전, 이곳에는 찬란한 문명의 꽃이 폈다. 기원 전후부터 500여 년간 한반도의 남쪽을 다스렸던 아라가야의 도읍, 경남 함안이다. 우수한 토기 문화, 뛰어난 천문관측 기술 등 고대를 빛냈던 아라가야의 숨결을 함안에서 느껴보자.

가야의 숨결을 느끼다
지난 9월, 바다 건너에서 함안으로 낭보가 날아들었다.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함안 말이산 고분군이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은 것. 이는 우리나라를 넘어 모든 인류가 보존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말이산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찬란했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유산이다. 2km에 달하는 능선에 자리한 184기의 봉분은 아라가야 문화의 정수가 담긴 정교한 유물을 전하고 있다. 이 중 13호분에 서는 남두육성과 청룡별자리 등 고대 동양의 별자리를 기록한 천장 덮개석이 발견됐다. 이는 아라가야가 천문관측 기술과 항해술에 뛰어났음을 보여주는 한편 중국, 고구려와 교류했다는 증거로 고대 동아시아 국제사회의 정세를 짐작케 하는 증거다.

노을빛에 사로잡히다
함안이 반전 매력을 드러내는 시간, 해 질 녘. 높고 푸른 가을 하늘과 둥그스름한 고분과 너울지는 산등성이, 너르게 펼쳐진 논밭…. 함안의 풍경이 온통 붉게 변신한다. 이 장관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악양둑방길로 향해보자. 둑길을 따라 하늘하늘 춤추는 코스모스, 하늘을 우아하게 수놓는 경비행기, 엽서 속 한 장면 같다.

둑길과 맞닿은 악양생태공원에서는 4611㎡ 면적에 만개한 핑크뮬리가 분홍빛 물결을 이루며 가을의 절정을 알린다. 뱀이 기어가듯 구불구불 흐르는 입곡저수지의 단풍은 이 계절에만 만끽할 수 있는 장관이다.
경남 함안, 가야문명의 숨결을 품다
선비가 사랑한 운치
함안은 지조 높은 이들이 사랑한 곳이다. 고려 후기 성균관인 진사 이오 선생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함안군에 거처를 마련한다. 그는 산인면에 고려 유민의 거주지라는 뜻의 ‘고려동학’이라는 비석을 세우고 직접 농사를 지으며 충절을 지켰다. 그의 유언에 따라 후손들 역시 19대 600여 년에 이르는 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고 여전히 생활하고 있다. 유적지 입구에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600년 전 심긴 배롱나무가 선비의 절개를 증언한다.

조선시대의 선비 무진 조삼 선생 또한 함안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조정에서 요직을 거친 그는 자신의 호를 딴 무진정을 짓고 여생을 보내기로 한다. 작은 못과 정자로 이루어진 공간이 소박하지만, 이곳을 둘러싼 수목이 사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빛을 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후 치러진 아라가야문화제
500년 아라가야의 찬란한 얼을 계승하기 위한 축제. 올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이후 열리는 첫 축제인 만큼 더욱 성대하게 치러졌다.

축제는 ‘말이산 고분군! 세계의 유산이 되다’를 주제로 문을 연다. 개막식에서는 영상과 무용이 합쳐진 융·복합 공연, 레이저 쇼, 드론 라이트 쇼, 국악 걸그룹, 몽골 초청공연, 팝페라 가수의 공연이 펼쳐졌다.

축제 기간 아라길에서는 다양한 체험·홍보 행사, 버스킹, 줄타기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말이산 고분군 일대는 야간 경관 조명을 설치해 가을밤을 아름답게 장식됐다.

경남 함안, 가야문명의 숨결을 품다
함안연꽃테마파크의 색다른 뷰
2009년 성산산성에서 특별한 씨앗이 출토됐다. 바로 700여 년 전 고려시대 때의 연꽃 씨가 발굴된 것. 더욱 놀라운 것은 오랜 세월을 이겨내고 2010년 다시 한번 꽃을 피운 것. 함안군은 연꽃의 부활을 기념해 이름을 짓고 공원을 조성했다. 고려시대 불교 탱화에 등장하는 연꽃과 똑 닮은 ‘아라연꽃’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함안연꽃테마파크. 공원에서는 아라연꽃 외에 50여 종의 연꽃을 만나볼 수 있다.

카페 식목일은 무진정의 사계를 색다른 뷰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다. 카페 창으로 내다보이는 무진정의 연못과 정자는 엽서의 그림을 보는 듯 아름답다. 계절에 맞게 원두를 바꾸는 스페셜티 커피와 고소한 콩고물을 넣은 식목일 라테가 시그니처 메뉴.


글 김은아 SRT기자 사진 지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