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관 가정의학과 전문의

[special] “도파민, 잘만 쓰면 약…스마트폰 대체할 습관 찾아야”
양성관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창살로 두른 작은 상자 모양의 ‘스마트폰 감옥’을 들고 나타났다. “이렇게 해 두면 휴대전화를 볼 일이 없거든요. 환자들에게 ‘저도 이러고 있습니다’라며 보여드리면 재밌어하시죠.”

양 전문의는 중독 사회의 범인으로 몰리고 있는 도파민이 다소 억울한 입장일 것이라고 표현했다. 도파민을 쉽고 빠르게 유발하는 ‘원인’ 이 문제인 것이지, 도파민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도파민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참 안타까운 부분이 있습니다. 도파민을 잘 조절해서 쓰면 약이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너무 쉽게 독으로 쓰는 거죠. 제가 도파민이라면 조금 억울할 것 같아요.”

양 전문의가 상자에 직접 가둔 스마트폰도 도파민을 ‘독’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도구다. 도파민의 늪에서 벗어나 건강한 몰입을 경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에게 직접 들어봤다.

우선 도파민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달라.
“도파민은 중추신경계 내에서 세포가 신호를 주고 받을 때 나오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다. 의학적으로는 파킨슨 질환과의 관계가 높다. 도파민이 부족할 때 파킨슨병이 생기는데, 행동이 뻣뻣해지고 표정이 굳으며 걷기도 힘들어진다. 반대로 도파민이 많이 나오는 경우는 우리가 즐겁거나 쾌락을 느낄 때다. 특정 행동을 반복하도록 만들기도 하는데, 도파민이 중독과 관련해 꾸준히 거론되는 이유다. 엔도르핀, 세로토닌, 아드레날린 등 다른 신경전달물질은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도록 하는 특성은 없다. 그런데 사실 도파민 입장에서는 (부정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다소 억울한 면이 있다.”

억울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도파민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물질이다. 지금도 우리 몸에서는 극소량의 도파민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도파민이 과도하게 나오도록 만드는 ‘행동’과 ‘약물’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지, 어떻게 보면 도파민 자체는 중립적이다.”

도파민 중독에는 어떻게 빠지는 건가.
“우선 도파민을 떠나서, 우리 몸에 같은 자극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자극이 반복될수록 적응한다. 생물학적으로는 ‘순응’이라고 한다. 경제학에서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있지 않나. 똑같은 액수의 돈이라고 해도 반복해서 쓸 때마다 효능이 떨어진다. 햄버거를 처음 먹을 때는 만족감이 100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두 번째 먹으면 배도 부르고 맛도 좀 없어진다. 100이었던 만족감이 80에서 60, 40으로 점점 떨어진다. 그게 인간의 본능이자 경제학의 원리다.

도파민은 생활에 필수적인 ‘물’ 같은 존재다. 항상 조금씩 흐르고 있다. 그러다 우리가 자극적인 것을 접할 때 조금 더 나온다. 그런 상황이 과도하게 지속되면 우리 몸은 어떻게 될까. 도파민을 가져가는 ‘양동이’ 혹은 ‘손’의 역할을 하는 수용체가 점차 감소한다. 같은 양의 도파민(자극)이 생긴다고 해도 우리 몸은 반응을 안 하게 되고, 점점 더 많은 도파민이 필요해진다. 도파민에 내성이 생겨 버리는 것이다. 과거와 동일한 양의 도파민이 나온다고 해도 우리 몸은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때부터는 도파민이 ‘즐거움’이 아니라 ‘불안’이 된다.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이들은 잠깐이라도 기기를 다른 데 두고 오면 불안해진다. 마치 메시지 알림 소리가 울리는 것 같은 환청도 들린다. 전형적인 금단 증상이다. 디지털 중독, 스마트폰 중독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도파민 과잉은 곧 도파민 결핍을 만든다. 우리 몸에서 ‘도파민이 없다’고 느끼는 상태까지 가면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special] “도파민, 잘만 쓰면 약…스마트폰 대체할 습관 찾아야”
망가진 도파민 시스템으로 인해 현대인의 일상이 망가지고 있다는 경고가 꾸준히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본다. 지금은 물건과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다. 특히 가장 빈번한 자극은 스마트폰으로부터 온다. 영화관에서 2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것보다 집에서 10분짜리 동영상을 보는 것을 선호한다. 더 심하게는 수십 초짜리 콘텐츠를 본다. 자극이 넘쳐나면 일상이 즐겁고 행복할 것 같지만 오히려 심심해진다. 갈수록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된다. 문제는 이처럼 짧고 빠른 자극만을 추구하다 보면 사람이 충동적으로 변한다. 화를 내거나, 공포심을 느끼거나, 웃음을 유발하는 즉각적인 자극 외에는 반응하지 않게 된다. 도파민 중독으로 인해 인류가 퇴화하고, 점점 더 극단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자신이 디지털 중독, 도파민 중독 상태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모든 중독은 의존성, 금단 증상, 내성, 해를 끼치는지 등 4가지 요소로 파악할 수 있다. 어떤 대상에 대해 ‘무조건 해야 한다’고 여기는지(의존성), 일정 시간 멀리했을 때 불안하고 초조한지(금단 증상), 갈수록 더 많은 자극과 시간을 쏟으려 하는지(내성), 개인과 사회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유해성)를 파악해보면 자신의 중독 여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같은 자극이라도 도파민이 분비되는 정도는 사람에 따라 다를까.
“똑같은 초콜릿을 먹었다고 해도 도파민이 50 정도 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30 정도 나오는 사람도 있다. 도파민이 적게 나오는 사람은 그만큼 대상에 대한 의존성이 낮다. 물론 마약류는 어마어마한 양의 도파민이 나오는 물질이기 때문에 예외적이다. 그 외에는 물질의 성향과 개인의 기질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특히 우울증을 갖고 있거나 충동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좀 더 중독에 잘 빠지는 경향이 있다. 충동 성향이 짙은 사람이 무언가에 중독되면 더 많은 불안이 생기고, 그로 인해 충동 기질은 더 커진다. 일종의 악순환이다.”

악순환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둘 중 하나를 끊으면 된다. 우울증 때문에 폭식을 한다면, 음식을 끊는 게 아니라 우울증을 치료하는 게 핵심이다. 물론 치료가 쉽지는 않다. 병원에서 약을 처방해주는 것은 쉽지만, 근본적으로 환자의 생활습관을 바꾸는 게 어렵다. 담배 중독의 경우 금연약을 처방받은 환자 중 효과를 보는 비중은 24%에 불과하다. 4명 중 1명이다. 약을 처방해준다고 해도 환자의 50%는 먹지 않는다. 스스로 먹지 않기로 결정하는 거다. 자신의 의지로만 중독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경우라면 더 힘들다. 의지만으로 금연에 성공하는 사람은 100명 중 4명이다. 그만큼 중독이라는 사이클에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도파민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없을까.
“마약, 담배 등 강력한 중독성을 가진 물질은 의지만으로 교정하기가 힘들다. 스마트폰 중독은 시간을 두고 변화를 시도해볼 만하다. 가장 핵심적인 방법은 중독의 대상을 잘 고르는 것이다. 안 좋은 물질이나 행동에 빠지면 ‘중독’이라고 하지만, 일이나 취미에 빠지는 것은 중독이 아닌 ‘몰입’이라고 한다. 운동선수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수년간 노력한 끝에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크게 터진다. 그때 터진 강렬한 쾌감의 기억은 운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도파민 중독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참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사실 도파민은 발전의 기름과 같은 역할을 한다. 결국은 어떻게 쓰느냐에 대한 문제다. 잘 쓰면 약이 되지만 못 쓰면 독이 된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도파민을 너무 쉽게 독으로 쓴다. 도파민을 잘 이용하면 장기적으로는 훨씬 다양하고 재밌는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성공의 경험을 하면 도파민은 무조건 나오게 돼 있다. 물론 스마트폰, 커피, 술처럼 1~2초 만에 도파민이 나오지는 않지만, 노력과 고통의 시간을 참은 후 쏟아지는 도파민의 쾌감은 그보다 훨씬 강력하다.”

디지털 기기 중독에 대한 유혹은 떨치기 어려울 것 같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가 더 생각난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참으려고 해도 금단 증상으로 인해 더 하고 싶어진다. 그럼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제일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대체재를 만드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하는 습관이 있다면, 그 습관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루틴을 마련해 두는 게 좋다.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스마트폰을 했을 시간대에 차를 마시는 식이다. 단순히 ‘휴대전화를 안 해야지’라고 생각만 하는 것으로는 참기 힘들다. 습관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또 다른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야 한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도파민이라는 물질 자체가 안 좋은 게 아니다. 중독의 대상이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각자의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되는 일, 운동, 취미에 몰입해 도파민을 현명하게 이용하면 된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ㅣ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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