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 김영란법 6개월 : 분야별 수혜&피해 ]
- 대기업 vs 소상공인 “너무 다른 온도 차”
- 화훼·인쇄 소상공인 매출 직격탄
유통·주류 대기업 ‘뚜껑 열어보니 기우’
(사진)대형마트와 주류업체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우려와 달리 크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지난해 9월 28일 시행 이전부터 유독 경제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컸다. 상한액이 명확한 만큼 국민들의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않아도 깊어가는 불황에 소비 심리마저 위축되면 내수 경기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반년이 지났다. 이 같은 우려의 일부는 기우로 드러났고 일부는 현실화되기도 했다. 김영란법 이후 국내 산업별 기상도를 짚어봤다.

◆ 대기업 “김영란법보다 사드가 더 문제”

지난 1월 국내 대표적인 대형마트의 설 선물 세트 코너. 명절 선물 인기 품목에서 늘 빠지지 않던 ‘참조기 선물 세트’가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민어 굴비’와 ‘긴가이석태’다. 김영란법의 영향으로 5만원 미만 가격대에 맞춘 선물 세트가 강화되면서 나타난 변화들이다.

적극적으로 ‘김영란법 마케팅’을 펼쳤던 유통업계는 김영란법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것으로 예상됐던 업종이다. 실제로 신세계 이마트에 따르면 올해 설 명절 선물의 예약판매 매출을 분석한 결과 5만원 미만 선물 세트의 매출 비율은 90%에 달했다. 명절 동안의 선물 문화를 바꾸는 데 ‘김영란법 효과’가 분명히 나타난 셈이다.

하지만 선물의 내용이 바뀌었어도 대형마트의 전체 매출 흐름을 바꿀 만큼 영향력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신세계 이마트 관계자는 “전체 매출의 흐름을 보면 김영란법 시행 직후인 지난해 10월 이마트의 총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6% 늘어나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긴 하다”며 “하지만 이는 최근 1인 가구의 증가 등을 겨냥한 마케팅 상품 등의 영향이 더 컸기 때문에 매출 상승의 원인을 김영란법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영란법의 수혜 업종으로 꼽혔던 다른 업체들도 비슷한 반응이다.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김영란법의 영향으로 ‘고가의 골프 접대’ 등이 제한을 받게 되면서 스크린골프·스크린야구 등의 업체들이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스크린골프 업체 골프존의 박경철 과장은 “김영란법 이후 유의미한 매출 증가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체 고객들 중에서 김영란법의 제한을 받는 공직자나 언론인 등의 비율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외부에서 기대하는 것만큼 눈에 띄는 변화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고가 선물’을 취급하는 백화점이나 고급 주류 업체 등은 어떨까.

이마트와 같은 계열사인 신세계백화점의 올해 설 선물 판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8% 정도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4만9000원짜리 호주산 쇠고기, 5만원짜리 국내산 굴비와 망고 등이 큰 인기를 끌며 5만원 이하 상품이 전년 설 대비 115% 정도 늘어났다.

하지만 동시에 100만원 이상 고가의 선물도 큰 인기를 끌며 총판매액은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를 나타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김영란법 이전부터 백화점에서 대외 선물을 구입하는 분위기가 많이 사라지는 추세여서 관련 품목의 숫자도 줄어드는 흐름이었다”며 “명절 설 선물 세트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개인적인 소비를 위해 백화점을 찾는 고객들이기 때문에 김영란법에 따른 타격은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골프장에 급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CJ프레시웨이 등도 피해 기업으로 언급되곤 했지만 사실상 타격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가의 골프장은 대부분이 자체적으로 식당을 운영해 급식 서비스 기업 매출과 별 관련이 없다. 또 중저가 골프장은 김영란법 이후 이용객 감소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은 덕분이다.

회식 빈도수가 줄어들면서 타격이 예상됐던 주류 업체도 우려보다 영향력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회식 등 접대용 술은 줄었지만 ‘혼술족(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프리미엄 맥주 등 취향이 고급화되는 추세”라며 “김영란법 시행 전후 매출 차이는 1% 내외 수준으로 거의 동일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까지 수치상으로만 봤을 때는 김영란법 이후 산업별로 두드러진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사실상 김영란법보다 국민들의 가계 소득이나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과 같은 변수들이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04년 정부가 접대비 한도를 50만원으로 제한했을 때도 비슷한 흐름을 보인 바 있다. 규제가 시행되기 전에는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컸지만 실질적으로 그 이후 확인된 영향력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 애널리스트는 “다만 지금 당장 직접적인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김영란법의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부패 청산이나 접대 문화 등 관행을 바꾸는 효과를 고려했을 때 ‘사회적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화훼·인쇄 등 소상공인 ‘깊어가는 시름’

하지만 김영란법에 따른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는 업종들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대기업보다 ‘소상공인’들을 중심으로 한 업종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여신금융협회와 카드업계가 지난 2월 23일 발표한 ‘청탁금지법 시행(2016년 9월 28일) 이후 3개월간(지난해 10~12월) 법인카드 사용액 분석’을 보면 이와 같은 현상이 분명히 나타난다. 김영란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전체 법인카드 사용액은 전년 동기 대비 6.9% 증가했고 개인 신용카드 사용액도 9.3% 늘었다.
유통·주류 대기업 ‘뚜껑 열어보니 기우’
(사진)인사 시즌가 졸업, 입학이 맞물리는 연말연초는 화훼업계의 대목이지만 최근에는 썰렁한 모습이다 / 연합뉴스

하지만 업종별로 따져보면 꽃집(화원)·술집(유흥주점)·노래방 등에서의 사용액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꽃집은 전년 동기 대비 11.4%, 유흥주점은 11.2%, 노래방은 5.4% 줄었다. 가장 타격이 클 것이라고 이야기되던 골프장은 5.2% 수준이었다.

김영란법에 따라 소비 패턴이 달라지면서 나타난 결과다. 연말이면 화훼업계는 으레 대목을 보기 마련이다. 인사철을 맞아 승진 축하난 등의 수요가 많은 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에는 김영란법으로 인해 승진 축하를 위해 꽃을 보내는 관행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 결혼식 등의 경조사에 보내는 화한·조화 또한 줄이는 분위기가 확연하다.

◆골목상권 보호, “보완책 필요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지난 1월 30일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같은 해 12월 31일까지의 소매 거래금액도 전년 동기 대비 28% 급감한 6만3520만원으로 나타났다.

화훼 농가들의 매출이 대략 30% 감소한 것으로 파악된다. 서울 양재동 aT 화훼 공판장은 출하 및 수출 물량이 줄어들고 경매 단가가 떨어지자 경매를 주 2회에서 1회로 줄였다. aT 관계자는 “국내 꽃 소비는 특히 축하 인사나 선물용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김영란법 시행 이후 꽃 소비가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인쇄업계도 마찬가지다. 연말에서 연초로 넘어가는 시기가 되면 달력과 사보 제작 등의 일감이 쏟아지는 시기다. 하지만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사보 제작에서 손을 떼는 기업들이 늘어나며 제작 물량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더욱이 기존의 종이 사보까지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추세여서 인쇄 업체들의 어려움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연말 한국행정연구원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식품 접객업과 농축수산·화훼업 등 업종의 사업체 40.5%가 ‘김영란법 시행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비슷한 시기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6년 10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 역시 ‘음식점 및 주점업’ 종사자 가 1년 전보다 3만 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소상공인의 경영 악화에는 김영란법 외에도 내수 경기 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지만 그만큼 소상공인들이 체감하는 ‘김영란법 이후의 어려움’이 크다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운형 소상공인연합회 실장은 “민간인들을 광범위하게 규제 위주로 관리하다 보니 실질적으로 내수 경제를 떠받치는 소상공인들이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소상공인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김영란법의 상한가액을 현실에 맞게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골목상권에 있는 소상공인 업종으로 확인을 받은 골목상권 업체들에 한해서는 규제의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 소상공인연합회 측의 주장이다. 이 실장은 “농가와 소상공인들의 보호를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도소매 상시 종업원 5인 미만 사업장, 제조업 10인 미만 사업장 등 소상공인의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vivajh@hankyung.com

[김영란법 6개월 커버스토리 기사 인덱스]
- 김영란법 6개월 뭐가 달라졌나
- 시행 6개월…새로운 문화와 서비스 생겼다
- 유통·주류 대기업 ‘뚜껑 열어보니 기우’
- 기업 대관업무는 사실상 올스톱
- ‘신고 대란’ 우려했지만 하루 평균 한건 그쳐
- 헷갈리는 ‘유권해석’보다 알기 쉬운 ‘가이드라인’ 필요
- 김영란법 개정안 11개 계류…차기 정권 때 개정될까
-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 “청탁금지법, 미래 세대 위해 우리 세대가 불편함 감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