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앨 고어, 기후변화에 맞서다 : 중앙대 개교 100주년 기념 특별강연]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 제주평화연구원·한경비즈니스 초청 방한
“세상 바꿀 기후혁명, 청년이 나서달라”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김민지 인턴기자] 정치인이자 환경운동가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석학,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이 한국을 찾았다.

고어 전 대통령은 1박 2일의 방한 일정 중 중앙대(CAU)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서울 동작구 중앙대 서울캠퍼스에서 6월 1일 ‘새로운 미래와 우리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약 1시간 동안 강연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날 주제는 다양했다. 기후변화, 기술 발전과 환경 보존 등 그의 전문 분야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지만 디지털 혁명 시대의 전망 등 미래 사회에 대한 이야기, 기후 환경과 미래 사회를 위한 청년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도 했다.

고어 전 대통령이 힘줘 말할 땐 엄숙한 분위기가, 강연 중간 재치 있는 발언엔 웃음보가 터졌다. 그리고 1시간의 강연이 끝났을 무렵 객석에선 기다렸다는 듯 우레와 같은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700여 명의 청중과 함께한 중앙대 강연에서 그는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
앨 고어의 세 가지 질문 “바꿔야 하나, 바꿀 수 있나, 바뀔 것인가”
(사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6월 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중앙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 /이승재 기자

#. “무모하고, 돈도 많이 들고, 아마 실패할 거야.” 제가 열세 살이었을 때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10년 뒤 달에 사람을 보내고 무사히 귀환시키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른들은 그때 케네디 대통령이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8년 2개월 후 닐 암스트롱의 발이 달 표면에 닿을 때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통제실에서는 큰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이때 NASA 기술자들의 평균 나이는 26세였습니다.

고어 전 부통령의 연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례다. 이날 특강에서도 그의 유년 시절 기억이 어김없이 소환됐다. 그는 1969년 인간의 달 착륙 사건이 우리 인류사의 혁명과 닮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모두가 ‘안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혁명을 청년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다.

◆앨 고어가 던진 ‘세 가지 질문’

고어 전 부통령은 최근 선진국·개발도상국·후진국 등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제3의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혁명이 인류의 역사를 바꾼 ‘산업혁명’의 규모로, 그러나 디지털 혁명의 속도만큼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신재생에너지, 신재생에너지가 가져올 ‘지속 가능한 혁명’에 대한 얘기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인류가 올바른 선택을 하면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 ‘지속 가능한 혁명’을 위해 그는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바꿔야 하나(Must we change), 우리는 바꿀 수 있나(Can we change), 우리는 바뀔 것인가(Will we change)”

① “우리는 바꿔야 하나”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해야 할까요.” 고어 전 부통령은 이 질문을 던져놓고 아주 무거운 주제를 꺼냈다. 지구온난화 등의 기후변화로 닥친 변화, 재난과 재앙에 대한 얘기였다.

“우린 매일 1억1000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이 중 15~20%는 몇 천 년 후에도 대기에 남아 있을 것이죠. 온실가스의 위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현재까지 배출돼 대기에 남은 온실가스의 양은 1년 365일 동안 ‘히로시마급’ 원자폭탄 40만 개가 터지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열을 가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열에너지가 지구 전체를 데우면서 지구온난화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우리는 사상 최악의 더운 여름을 보냈다. 재작년은 그다음으로 더웠던 해였다.

지구온난화의 결과는 처참했다. 먼저 열대성 질병이 확산됐다. 고어 전 부통령은 “열대지방의 세균 질환이 고위도로 전파되고 있다”며 “물론 운송 혁명이 연관이 있겠지만 기후변화 또한 풍토병의 지역 위도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고 말했다.

질병을 전염시키는 모기나 진드기와 같은 매개체의 확산도 가져왔다. 최근 남미에서 북미로 확산 우려가 예상되는 ‘지카바이러스’가 그 예다. 지카바이러스는 뎅기열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를 보유한 모기에 물려 생기는 감염성 질환으로 2015년 이후에만 72개국에서 발병했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단 6개국에서만 발생했던 병이다. 특히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지카바이러스가 발견되면서 남미에서 북미로 확산될 가능성에 전문가들이 깊은 우려를 보내고 있다.

해수면 상승도 문제다. 지난해 그린란드를 방문한 고어 전 부통령은 그가 본 해빙의 속도와 해수면이 과거와 많이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1주일간 비가 내리지 않은 미국 플로리다 주의 마이애미에 갔을 때 강수량이 적었음에도 최근 들어 가장 높은 조수를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해수면 상승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이주할 수 있는 새로운 땅을 구입하는 데 돈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이러한 기후변화의 위협 때문에 우리가 변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또 “첫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쁜 내용을 담고 있을지 몰라도 둘째, 셋째 답변은 굉장히 긍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앨 고어의 세 가지 질문 “바꿔야 하나, 바꿀 수 있나, 바뀔 것인가”
(사진) 고어 전 부통령은 이날 의전 차량으로 현대자동차의 '그랜저 하이브리드'를 이용했다. 그는 환경운동가답게 행사 주최 측에 '친환경차'를 준비해 달라고 미리 당부했다.

② “우리는 바꿀 수 있나”

“재생에너지 기술은 극적인 반전이 이뤄지고 있어요. 1년 동안 전 세계에 공급할 수 있는 태양에너지가 시간마다 지구에 도달합니다. 이는 우리가 1년간 사용하는 에너지보다 태양으로부터 1시간 만에 얻는 에너지가 더 많다는 거죠. 실제로는 1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신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에 비해 연료의 ‘질’이 좋아진 반면 생산비용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생산비용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태양광·풍차의 전기 비용이 석탄과 가스를 태우는 비용보다 저렴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정보기술(IT) 영역에 빗댔다. 슈퍼컴퓨터가 손 안의 작은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는 동안 품질은 향상됐지만 생산비용이 급격히 감소한 것처럼 에너지 영역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를 입증하는 사례는 많다. 고어 전 부통령은 지난해 “16년 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는 2010년까지 국제적으로 30기가와트에 달하는 풍력발전 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우리는 지금 그 예상을 무려 14.5배 뛰어넘었다”고 말한바 있다. 이제 풍력발전 시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그 대신 생산비용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지구온난화의 온상으로 여겨진 중국과 미국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그는 “기존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높았던 중국이나 미국이 석탄 사용률을 몇 년째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기업들도 변화하고 있다. 이는 단지 환경문제에 대한 도덕적인 명령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환경을 바라보는 태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과 산업체가 점점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깨달으면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생산 과정을 훨씬 효율적으로 바꾸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③ “우리는 바뀔 것인가”

“마지막 ‘반대’ 다음에 ‘찬성’이 온다. 그리고 그 ‘찬성’에 미래 세계가 달려 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고어 전 부통령의 답변은 단호했다. 그는 미국의 저명한 시인 윌라스 스티븐스의 시 구절을 인용하며 “비록 많은 사람들이 기후변화가 ‘사기’라고 말했지만 지금 우리는 ‘예’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2015년 12월 유엔 당사국총회 195개국이 채택한 ‘파리기후협정’이다. 이 협정은 2020년 이후 적용하는 새로운 기후협약(신기후체제)으로, 1997년 채택한 교토의정서를 대체한다.

교토의정서에서는 선진국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있었지만 파리협정에서는 참여하는 195개 당사국 모두가 감축 목표를 지켜야 한다는 얘기가 담겨 있다. 이 195개 당사국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고어 전 부통령은 이 협정에 대해 “획기적”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미 많은 나라가 2020년까지 기다리지 않고 오히려 앞서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이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할지 여부를 결정 중’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실제 강연 직후인 6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잘못된 결정”이라며 “왜 어려운 선택을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된 결정’에도 역사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상관없이 미국은 온실가스 오염 물질을 줄이고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진전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진전의 지표는 미국 곳곳에서 나타난다. 글로벌 기업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구글과 애플 등이 신재생에너지로의 100% 전환을 약속했고 애틀랜타와 하와이도 100% 신재생에너지로 가겠다고 공표했다.
앨 고어의 세 가지 질문 “바꿔야 하나, 바꿀 수 있나, 바뀔 것인가”
(사진)고어 전 부통령이 특강 후 청중 및 학생들과 기념촬영 하고 있다. /이승재 기자

강연장을 가득 채운 청중과 학생들을 향해서도 ‘지속 가능한 혁명’을 위한 청년의 참여를 독려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경험이 많은 연장자의 말을 신뢰합니다. 하지만 제가 오랫동안 정치를 하며 느낀 바는 청년들이 편견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거죠. 노예 해방, 여성 인권, 동성애 합법화 등 세계 역사에 남을 만한 운동의 중심에는 항상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1시간의 강연 동안 그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셋째 질문’에 담겨 있었다. 그는 청년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여러 운동들이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던 이유는 그들이 ‘올바른’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기후변화 위기 또한 ‘옳은 것’과 ‘틀린 것’ 중 선택함으로써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옳은 선택을 한다면 이 위기는 극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청년들이 이 옳은 선택이 무엇인지 일깨워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편, 고어 전 부통령은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나흘간 제주에서 열린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의 기조연설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고어 전 부통령의 이번 방한은 제주평화연구원과 한경비즈니스의 초청으로 성사됐다.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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