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매각 해명하며 ‘연내 호재 2건’ 언급…해외 브랜드와 공동출자 등 추측 무성

[비즈니스 포커스] 차석용 부회장이 예고한 ‘깜짝 이벤트’는
차석용 LG생활건강(이하 LG생건) 부회장의 주식 매각 후폭풍이 거세다. LG생건은 지난 6월 3일 차 부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보통주 2만2000주를 매각했다고 발표했다. 차 부회장은 5월 30일 LG생건 주식 1만1700주를 주당 49만9674원에 팔았다. 6월 들어선 2일과 3일에 각각 8844주(주당 48만8607원에 매도)와 1456주(주당 50만4408원에 매도)를 연거푸 처분했다. 이런 내용은 6월 3일 증시가 마감된 후 공시됐다.

차 부회장의 주식 처분 소식이 알려지자 6월 5일 외국인들이 당장 13만 주를 팔아 치우는 등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6월 3일 장을 마감하며 올 들어 53만7000원으로 최고점을 찍었던 주가는 불과 하루 만인 6월 5일 47만2500원으로 무려 12.01% 급락했다. 6월 3일 기준으로 8조3869억 원이었던 시가총액도 6월 12일 현재 7조5000억 원대로 떨어진 상태다. 며칠 사이 기업 시총의 1조 원 가까이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현재 LG생건의 주가는 40만 원대 후반에서 소폭의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CEO 주식 매각에 시총 1조 증발
이번 주식 매각을 통해 차 부회장이 손에 쥔 현금은 109억 원이다. 지난해 말에도 보유하고 있던 보통주를 매각해 이번과 비슷한 수준의 수익을 올렸다. 1년 사이 몇 차례 주식 매각을 통해 20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 셈이다. 차 부회장은 LG생건 사장으로 부임한 2005년 2월부터 꾸준히 자사주를 사들였다. 당시 매입 가격은 주당 2만8000원 수준. 단순 계산으로도 20배가 넘는 차익을 실현한 것이다.

차 부회장은 “주식 매각으로 번 돈을 모교인 코넬대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그는 6월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공부할 당시 고학(苦學)했다”며 “내가 받았던 것을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것이 오래전부터 꿈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차 부회장은 모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나온 경기고 대신 평소 그가 언급해 온 ‘모교’는 거의 대부분이 코넬대를 가리킨다. 차 부회장은 P&G 최초의 한국인 입사자이기도 하다.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한 그는 오랜 해외 생활만큼 미국적 사고방식이 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시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개인 재산을 과감히 처분한 것도 이런 그의 기질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하지만 개인의 명예가 오르는 것과 반대로 기업의 사정은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당장 기업 가치(주가)가 급락했고 최고경영자(CEO)가 엄청난 매매 차익을 실현하는 동안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은 고스란히 개미들에게 돌아갔다. 증권업계에선 이 같은 차 부회장의 행보가 정상적인 것은 아니라는 데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희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기본적으로 CEO가 재임 중에 보유 주식을 매각한다는 것은 시장에 좋지 않은 사인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며 “당장 주가를 보면 확인되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대개 현직 CEO의 자사주 매각은 퇴임을 앞두고 이뤄질 때가 많다. 한때 증권가에도 “이번 주식 매각이 ‘퇴임설’을 기정사실화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소문이 파다했다. 차 부회장의 퇴임설은 지난 3월 핵심 계열사인 코카콜라와 더페이스샵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부터 불거졌다. 하지만 차 부회장은 인터뷰를 통해 퇴임설을 강하게 부인한 상황이다. 그는 “물러난다는 억측이 계속 나오니 직원들조차 ‘진짜 그런가 보다’고 하는데 직원이 3만 명이 넘는 회사에서 전문 경영인이 그렇게 경솔하게 행동할 수 없다”고 말하며 “코카콜라와 더페이스샵을 책임지고 살린다는 뜻에서 대표이사를 맡았고 이제 상황이 모두 좋아졌으니 빠진 것”이라 해명했다. 회사 측도 “책임 경영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였을 뿐 퇴임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차 부회장의 임기는 2017년 3월까지다. 그가 CEO로 부임한 이후 LG생건은 8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그룹 내 리딩 컴퍼니로 도약했다. 차 부회장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LG그룹 내 최장수(10년째) CEO로 근무 중이고 외부 영입 인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부회장 직함까지 달았다. 구본무 회장 등 오너가의 신임도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장품 분야 제휴 가능성 높아
퇴임 소문만으로 주가가 급락한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CEO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뜻이다. 차 부회장이 처음 사장에 부임한 2005년만 해도 LG생건의 매출액은 9678억 원에 불과했다. 8년이 지난 2013년 현재 LG생건의 매출액은 4조3262억 원, 영업이익은 4964억 원으로 늘었다. 한 해 1조 원대의 매출을 올리던 회사가 한 분기에 1조 원을 버는 회사로 변신한 것이다. 그 사이 순이익은 2005년 매출액의 절반 수준까지 뛰어올랐다.

LG생건의 성장은 차 부회장의 적극적인 인수·합병(M&A) DNA가 주효했다. 주방·욕실 용품 생산에 머무르던 기업은 코카콜라음료(2007년)·다이아몬드샘물(2009년)·더페이스샵(2010년)·해태음료(2011년), 일본의 긴자스테파니(2012년)·에버라이프, 캐나다 푸르츠앤드패션(2013년) 등을 차례로 인수했다. ‘화장품·음료·생활용품’을 3대 축으로 하는 종합 소비재 기업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시장에선 이를 ‘차석용 프리미엄’이라고 불렀다.

현재 ‘차석용 프리미엄’은 ‘차석용 리스크’로 변질된 상태다. 차 부회장 역시 이런 사정을 의식한 듯 “연내 주가가 오를 깜짝 놀랄 큰 발표가 두 건 정도 나올 예정인데, 그때 팔면 더 문제가 될 것 같아 고민 끝에 지금 주식을 매도한 것”이라며 적극 해명에 나섰다. 그는 이어 “대형 발표가 M&A는 아니고 핵심 사업 부문의 전략적 제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비즈니스 포커스] 차석용 부회장이 예고한 ‘깜짝 이벤트’는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주식 처분만큼이나 시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뜻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소식을 현직 CEO가 ‘연내에 몇 번’이라는 구체적인 팩트까지 넣어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 봤다”며 “매우 드문 사례”라고 지적했다. M&A나 전략적 제휴는 기업의 최고위급 경영진이 아니고서는 예상하기 힘든 이슈다. 그만큼 시장에서의 파급력도 크다. 이런 가운데 ‘주가를 끌어올릴 깜짝 발표’ 같은 표현까지 써가며 해명에 나선 것은 그만큼 최근 자신으로 인해 불거진 리스크를 의식한 멘트였다는 것이다.

발언의 의도야 어찌됐든 업계에선 이미 차 부회장이 언급한 ‘깜짝 이벤트’가 무엇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현재 LG생건은 미국 화장품 기업인 ‘엘리자베스 아덴’ 인수를 위한 실사를 마친 상태다. 인수 금액만 1조5000억 원에 이르는 초대형 딜로, 이를 통해 북미 시장 공략에 힘을 실을 것으로 예상된다. 엘리자베스 아덴 인수 건이 이미 널리 알려졌다는 것을 고려할 때 차 부회장이 말한 전략적 제휴가 이에 관한 내용은 아닐 것이란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소비재 기업이 전략적 제휴에 나설 때는 대개 다국적기업 등과의 ‘공동출자’ 형식이 많다.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현지 기업과 공동출자해 현지 유력 브랜드와 제휴하거나 아예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는 식이다. 차 부회장도 “해외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해 추가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회사의 새로운 먹을거리를 해외에서 찾겠다는 뜻인데, 연내 발표될 이벤트도 이와 연관이 있지 않겠느냐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관련 사업부문으론 ‘화장품’에 무게가 실린다. 생활용품은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단계라는 게 중론이다. 음료 역시 웬만한 대형 M&A는 끝난 상태다. LG생건이 공을 들이고 있는 중국도 이미 자국 보틀러(병입 생산·판매 업체)들이 탄탄하게 자리 잡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중국을 비롯한 해외시장 공략에 나설 수 있는 사업 분야는 화장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해 ‘더페이스샵’의 총 해외 매출 중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40%(450억 원)에 달했다.

LG생건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2.1%나 감소한 1238억 원에 그쳤다. ‘더 이상의 고속 성장은 어렵다’는 예상을 넘을 차 부회장의 승부수에 이목이 쏠린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