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팔·비트코인·렌딩클럽·대안은행 등 거센 도전…혁신 통해 기회 잡아야

동명의 인기 웹툰을 영화로 만든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큰 인기였다. 특히 영화 말미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김수현이 맡은 북한 간첩 ‘동구’는 죽음을 예감한 듯 남한에 내려와 살던 가겟집 아주머니가 준 통장을 펼친다. 그랬더니 통장에는 ‘우리동구월급…, 우리둘째아들 …, 아들장가밑천…’이라는 문자와 함께 금액이 찍혀 있었다. 그 가슴 절절한 장면에서 동구는 “돌아가고 싶어”를 외친다.
[테크 트렌드] 고대 탄생한 은행업 ‘UX 혁명’으로 기로
은행업의 본질에 도전장
소위 서민에게 은행은 그렇게 사랑과 희망을 저축하는 곳이었다. 은행은 고객의 돈을 받아 안전하게 보관해 주고 차곡차곡 이자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은행은 대출이자 수입 중 일부를 돈을 맡긴 이에게 나눠 주고 그 차액을 남기는 대출 기반의 사업이기에 가능했다.

은행은 단군시대에 나온 함무라비법전에 등장할 만큼 오래된 전통 유통 산업이다. 최근 들어 정보화 기반의 사용자 경험(UX) 기술과 함께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 한 가지 변화는 은행 소비자와의 접점을 관리하는 역할이어서 소비자가 은행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었다.

이를 더듬어 보면 1970~1980년대까지는 주로 통장과 도장을 들고 은행 영업장을 찾아가 돈을 맡기거나 찾았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는 은행 현금카드와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은행을 주로 이용하는 방법이 됐다. 은행에 가지 않아도 여느 길목이나 편의점에 가서 ATM만 있다면 돈을 찾을 수 있었다. 심지어 늦은 밤에도 가능했다. 그 후 2000년대에는 인터넷 온라인 뱅킹으로 변신하더니 이제 2010년대는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뱅킹으로 바뀌었다. 은행 쪽에서 보면 고객이 찾는 동네 영업소를 멋지게 만드는 것 이상으로 웹 사이트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잘 만드는 게 경쟁력이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함께 영화를 보던 아들 녀석은 동구가 통장을 펼치며 울부짖는 장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통장을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의 알리바바와 같이 유동성 자금이 풍부한 기업은 직접 유망 기업을 평가, 발굴해 대출해 준다. 기존 은행이 신용을 평가해 대출해 준다면 알리바바는 사업성을 평가하는 방식을 적용한다.


그런데 최근 은행과 상생하던 정보기술(IT)의 UX 기술이 은행업의 본질에 도전하며 은행을 혁신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 전대미문의 도전을 정리해 본다.

대표적 사례는 15년 전에 탄생한 페이팔(PayPal)이다. 페이팔은 은행의 송·수금 업무에 도전했다. 현재 테슬라 전기자동차의 엘론 머스크가 미래의 은행을 고민하며 만들었던 것으로, 아마존의 원클릭(1-click), 중국 알리바바의 알리페이와 함께 세계 3대 지불 결제 시스템이다. 페이팔은 온라인 쇼핑뿐만 아니라 기부 등 송·수금 서비스 전반에서 사용하고 있고 전 세계 24가지 통화(currency)를 지원하며 3억 개가 넘는 계좌를 가지고 있다. 페이팔은 은행을 거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결제하고 송·수금할 수 있는 간편한 서비스로 확고한 위치에 섰는데, 결제할 때 신용카드 정보를 매번 입력할 필요가 없고 페이팔 버튼을 누르고 비밀번호만 넣으면 된다. 돈을 받을 때도 업체 측에 신용카드 번호나 은행 계좌 번호, 개인 정보를 보내지 않아도 쓸 수 있다. 페이팔 덕분에 돈을 주고받을 때 굳이 은행이 없어도 된다는 의식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은행의 안전 금고 역할에 도전한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비트코인(BitCoin)이다. 비트코인은 개인 간 (P2P) 거래 방식인데, 돈을 발행하고 관리하는 중앙은행이 없다. 더 이상 은행같이 공용 공간에 돈을 모아 보관하지 않고 암호화된 개인별 지갑에 보관한다. 획기적인 개념으로, 개인의 금고가 은행의 금고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사상을 만들어 냈다. 더욱이 연달아 터지는 은행의 보안 사고는 은행의 금고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흔들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디지털 개인 지갑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 .

은행 산업의 핵심인 대출도 마찬가지로 도전받고 있다. 우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이용해 다수의 개인들로부터 조금씩 돈을 모아 투자나 대출을 하는 크라우드 금융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렌딩클럽(lending club)은 개인 간 금융거래 방식으로 돈을 빌리는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금융거래를 한다. 전문 대부업자가 아닌 경우에만 참여할 수 있고 일대일 방식이 아니라 1대 다수의 거래여서 위험을 낮춘다. 흥미롭게도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용 수준보다 낮은 이자율을 받는 경향이 있고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상환율도 97%로 무척 높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은행 대출업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이 밖에 중국의 알리바바와 같이 유동성 자금이 풍부한 기업은 직접 유망 기업을 평가 발굴해 대출해 준다. 기존 은행이 신용을 평가해 대출해 준다면 알리바바는 사업성을 평가하는 방식을 적용한다. 은행보다 높은 이자율이지만 사업의 포트폴리오가 엮이면서 성공률도 높다.

아예 신개념의 대안 은행을 실험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은행권에서는 개인 자산 운용을 미래 은행의 모습으로 여기고 있지만 네덜란드에서 시작한 냅(Knab)이란 은행은 ‘냅 이노베이션 랩’을 만들고 모바일 뱅킹 관련 서비스 기획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소비자와 소통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은행은 사회적 책임을 담아 낸다는 목표 아래 고객들이 자선단체에 쉽게 기부할 수 있도록 은행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인 자산 운용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언제든지 비디오 콘퍼런싱을 통해 은행과 상담할 수 있다.


위기의 은행…UX 역량 갖춰 혁신 주체 돼야
비은행권의 시도인 심플닷컴(Simple)은 전통적인 은행을 대치하고자 한다. 고객 거래 은행의 잔액·입출금 등을 모두 조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크레디트카드 은행처럼 구매 기록 등도 쉽고 직관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사용료는 없다. 이와 함께 ‘냅’보다 진보한 개인 재무 서비스도 무료로 지원한다. 예를 들어 오늘 잔액에 10만 원이 남았지만 며칠 후 휴대전화 요금이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오늘 10만 원을 다 쓰면 안 될 것이다. 과거 이런 재무 관리는 소비자가 알아서 했지만 심플닷컴에선 이를 관리해 준다.

불과 6년 전인 2007년만 해도 한국 은행의 총매출은 약 15조 원이었는데, 2012년에는 9조 원, 작년에는 6조 원으로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경기 침체의 장기화와 금리 인하를 주요인으로 꼽으며 비용을 줄이기 위해 송금·예금 같은 업무는 외주로 돌리거나 수익을 늘리기 위해 다채로운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도 하고 신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해외 진출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와 달리 정보화 기반의 UX 기술은 은행업의 본질에 도전하며 은행을 혁신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은행 스스로 UX 역량을 갖춰 혁신의 주체가 된다면 현 상황은 오히려 은행이 은행업의 리더십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광수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kwangsu.c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