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후 자치경찰이 근간…“느슨한 규율이 공권력 남용 불러”

[GLOBAL_미국] ‘제2 퍼거슨 사태’에 경찰 개혁론 솔솔
미국 미주리 주에서 발생한 ‘퍼거슨 사태’가 잠잠해지기도 전에 뉴욕에서 다시 ‘인종 갈등’이 벌어졌다. 흑인을 목 졸라 죽인 백인 경관에 대해 뉴욕 대배심이 지난 12월 4일 ‘죄가 없다’며 불기소 결정을 내리자 뉴요커들이 맨해튼 도심으로 뛰쳐나와 “미국의 정의가 우롱당했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도 ‘백인 경찰과 흑인 남성’의 충돌이었다. 지난 7월 중순 백인 경찰관 대니얼 판탈레오는 흑인 에릭 가너(43) 씨를 담배 밀매 혐의로 체포하는 과정에서 ‘목조르기(chokehold)’를 하다가 숨지게 했다. 뉴욕시 스태튼아일랜드 대배심은 체포 시 동영상 분석, 현장에 있던 경찰관 증언 청취 등 3개월간 조사한 뒤 판탈레오 경관에 과실치사·살인 등의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사건은 ‘퍼거슨 사태’를 불러온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의 결정이 나온 지 불과 열흘 만에 나온 것이다.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대배심의 백인 경관 불기소 결정에 대해 “미국 형사 사법 시스템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백인 경찰과 흑인 청년의 ‘오래된 악연’은 뿌리 깊은 인종 갈등 외에도 비효율적인 미국의 복잡한 지방경찰 제도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숨겨진 경찰 폭력’이란 기사에서 “미국 경찰이 평화의 수호자가 아니라 약자와 소수인종을 때려잡는 극악무도한 전쟁 기계라는 인식이 폭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하이오 주의 보울링그린 스테이트대의 범죄학 전문가인 필립 스틴슨 교수의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05년부터 7년간 미 전역에서 경찰관이 업무 수행 중 과실치사·살인 등으로 기소된 것은 41건이었다. 같은 기간 연방수사국(FBI)이 보고한 경찰의 정당방위 살인은 2718건이었다. 경찰의 총기 사살 가운데 1.5%만 기소됐다는 것이다. 한 전직 경관은 “경찰들의 느슨한 규율과 낮은 책임 의식이 공권력 남용을 불러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 경찰은 한국처럼 일관된 지휘 통제 시스템이나 복무 규정 등이 없다.


오바마도 경찰 제도 개혁 약속
미국에는 현재 1만7500여 개의 경찰 기관이 있다. 연방수사국(FBI)·마약단속국(DEA) 등 연방 기관이 75개에 이르고 주정부 경찰(하와이 제외 49개), 3000여 개의 카운티 경찰, 1만2500여 개의 시 경찰, 대학·공항·공원 등을 관리하는 특별 경찰 기관이 1700여 개에 달한다. 이들 기관은 경찰 모집·훈련 등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법 집행 규정도 각각 다르다. 동일 사건을 두고 여러 경찰 기관들이 덤벼드는 중복 수사가 비일비재하다. 로스앤젤레스 경찰관인 서닐 듀터는 “시·카운티·주(州)·연방의 단계로 분권화된 경찰은 서로 권한이 겹치는 등 그야말로 뒤죽박죽 상태”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문성이 떨어지고 비효율적인 지방경찰 제도를 폐지하고 주 단위에서 통합 지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뉴욕 대배심 결정에 대해 “누군가가 법에 따라 공정하게 대접받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문제다. 그것을 해결하는 게 대통령인 나의 의무”라며 경찰 제도를 개혁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미국은 건국 이후 자치경찰 제도가 뿌리 박혀 있어 근본적인 개혁을 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워싱턴 =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